평소 코미디·오락영화를 별반 좋아하지 않는데다 ‘댄싱퀸’이라는 영화 제목도 가볍게 느껴져 한참 관람을 망설였다. 하지만 연기파 배우 황정민과 만능 엔터테이너 엄정화라는 두 명품 배우가 실망을 안겨주진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영화관에 들어섰다. 그런데 막연한 기대는 저절로 터지는 웃음과 가슴 먹먹한 감동으로 이어졌다.
작위적인 스토리 설정을 상쇄하는 속도감과 유쾌한 웃음
초등학교 동창인 황정민(황정민)과 엄정화(엄정화)는 대학생이 되어 우연히 버스에서 성추행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난다. 오해는 풀리지만 곧 둘은 거리의 시위대에 휩쓸려 뜻하지 않게 공인된 민주투사로 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한다.
이 일이 인연이 되어 ‘신촌의 마돈나’라 불리며 가수를 꿈꿨던 정화는 정민과 결혼해 평범한 아줌마로 살아가고, 어린 시절 대통령을 꿈꿨던 정민 또한 7년의 고시공부 끝에 겨우 사법고시에 합격해 실속 없이 인정만 넘치는 찌질한 변호사 생활을 이어간다.
이 평범한 부부에게 비슷한 시기에 꿈에 대한 도전의 기회가 주어진다. 꿈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한 정화는 우연한 기회에 댄스가수로 데뷔할 기회를 얻게 되고, 정민은 얼떨결에 철로에 떨어진 술에 취한 시민을 구하면서 서울시장후보가 된다.
이때부터 고상한 시장후보 아내와 끼 흘러넘치는 댄스가수 연습생이라는 정화의 다이내믹한 이중생활이 시작된다. 지나친 우연과 이색적인 설정은 누가 보더라도 작위적이지만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와 명품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대사는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가슴 먹먹한 카타르시스 선사하는 감동의 두 장면
영화 ‘댄싱퀸’이 단순한 코미디 영화로 유쾌한 웃음으로만 일관했다면 소박한 기대를 넘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속에는 순간적으로 감정의 응어리를 정화시키는 감동의 두 장면이 있다.
그 하나는 정민이 소속된 민진당 서울시장 경선 후보들의 대국민토론회 장면이다. 촌스러운 경상도 사투리에 어눌하기 그지없었던 정민은 ‘저출산 문제 해결’에 대한 안건에서 이율배반적인 다른 후보들의 발언과는 달리 서민들의 애환을 이해하는 진정성 어린 발언으로 진실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한 장면은 정화의 이중생활이 폭로되면서 정민의 정치 생명뿐만 아니라 가정까지도 위기에 처하는 전당대회 장면이다. 폭로 장면에 당황하던 정민은 “집안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서울시를 다스리느냐”는 경쟁 후보의 질타에 “가족과 시민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라고 응수한다. 달걀과 밀가루 세례를 받아가면서도 아내의 꿈을 지지하는 연설 장면 속에 닳고 닳은 중·장년 정치인의 모습은 없다. 순수한 청년 시민의 모습만이 그 자리에 있었다.
중년들이여, 아직 꿈꾸고 있는가
웃고 울면서 영화를 보는 동안 인생의 중반기를 살아가며 잊고 있었던 꿈을 되새겨 봤다. 결혼해서 아이 낳아 키우고, 집안일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직장 일까지 하며 바쁘게 살아가다보면 꿈이 있었던 것조차 잊을 때가 많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에게 꿈이 있었던가’ 생각해보고, ‘다시 꿈꿀 수 있을까’ 의구심을 품어 보고, ‘너무 늦은 것 아닌가’ 두려워하거나, 심지어 ‘이제 와서 다시 꿈꿔서 뭐해’라고 까지 생각한다.
영화 ‘댄싱퀸’은 이러한 일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비록 서울시장이나 댄스가수와 같은 거창한 꿈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작고 소중한 꿈을 다시 떠올려보고 ‘그래, 꿈을 포기하기엔 중년은 아직 한창이지. 자, 이제 내 꿈을 위한 여행 다시 시작!’이라고 다짐해본다.
이선이 리포터 sunnyyee@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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