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새벽에 일어나서 앉아 있으면 우울합니다. 늦어도 5시면 일어나는데 할 일이 없어요. 시집 읽은 것 또 읽고. 결국 혼자 앉아 있다가 아침 식사 시간이 돼요.”
전국어르신백일장대회에서 입상한 문정조 씨의 말이다. 그는 ‘뭔가 할 일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쓸쓸한 일요일 아침을 시를 쓰는 창작의 시간으로 바꿨다. 틈틈이 글을 쓰다 백일장대회에 공모, 상을 받았다. 이처럼 번잡한 사회생활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노년기의 어려움을 문학으로 극복하는 이들을 만나 보았다. 일산노인종합복지회관에서 주최한 2011전국어르신백일장대회 수상자 대상 정윤원, 최우수상 유동근(이상 백일장 운문부문), 대상 장춘옥, 우수상 문정조 (공모 운문부문) 씨다.
정윤원 유동근 문정조 장춘옥 씨(왼쪽위부터 시계방향)
남편 떠난 나는 민달팽이, 슬픔을 문학으로 승화
남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지 3년이 되어가는 장춘옥 씨. 준비되지 않은 이별로 가슴에 구멍이 생겼다. 허전함에 쇼핑을 하러 다녔다. 쓰지도 않을 물건을 사들이는 자신이 우울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어느 날 텔레비전의 생활정보프로그램을 보면서였다. 그길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봇물 터지듯 글이 쏟아졌다. 어떤 일이 생겨도 경치를 보아도 모두 글이 되어 나왔다. 그러다 나온 글이 ‘민달팽이’라는 시다. 언제나 곁에 있을 것 같던 든든한 남편을 잃은 자신을 집 없는 민달팽이에 비유했다. 글을 쓰면서 얼굴이 밝아지고 우울증도 사라졌다. 더 이상 슬픔에 잠겨 지내지 않는다.
“남편이 가시고 나서 이런 길을 열어주셨구나 생각해서 감사해요.”
백일장에서는 ‘징검다리’라는 시를 썼다. 삶의 걸어온 여정을 징검다리 놓는 것에 비유한 시로 대상을 받았다.
노년기의 쓸쓸함을 창작의 원천으로
행복, 가을, 우리나라가 이번 백일장의 주제였다. 참가자들은 이 중 한 가지를 선택해 글을 썼다. 대상을 받은 정유원 씨는 ‘행복’을 선택했다. 고교시절부터 틈틈이 일기를 써오던 그는 해병대 대령으로 지내면서 자연과 교류하는 기쁨을 느꼈다. 밤이면 관사 뒤 숲에서 우는 뻐꾸기와 대화를 나누던 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은퇴한 후에는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 백석도서관에서 백일장 공지를 보고 소풍가는 기분으로 참석했다.
“행복의 상징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젊을 때부터 앞으로 마지막 살아갈 날 까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써내려갔죠.”
그는 이번 백일장을 계기로 문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 노인대학에서 문학이론 강좌를 신청했다.
유동근 씨는 직장에서 문화 기획 분야 일을 하다 퇴직 했다. 무미건조한 생활이 계속됐다. 그러나 생각은 반대로 깊어졌다. 이번 백일장에서 선택한 주제는 ‘가을’이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가을 풍경을 꾸며 소외받는 친구들을 다 불러오고 싶다는 내용이다. 그는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등 활발한 창작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문정조 씨는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귀국 후 고양문화원을 알리는 글을 썼다. 주로 수필을 쓰던 그가 시에 관심을 돌린 것은 ‘쉽고 길지 않고 줄거리가 있는 글이 인기를 끈다’는 뉴스를 본 다음부터다. 시를 쉽게 쓰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호수공원을 주제로 20여 편의 글을 썼다. 앞으로도 호수공원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글을 쓸 계획이다.
배려하는 마음과 취미활동, 노년기에 필요해
수십 년 동안 몸담은 직장에서 퇴직하고,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 애써 키운 자식들은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쁘다. 어쩌면 노년기는 상실의 시기다. 그러나 아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자는 60세에는 남의 말을 들으면 이치를 깨달아 이해한다고 했고 칼 융은 노년기는 죽음 앞에서 삶의 본질을 이해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늙는다는 것은 결국 혼자 사는 즐거움이거든요. 죽을 때도 혼자 가니까. 그만큼 혼자 가는 길이 가까워졌다는 이야기죠.”
유동근 씨의 말이다.
“나이가 들면 배려 없이는 추해져요. 그 다음은 뭔가 자신이 할 일을 하나 결정해야 합니다.”
문정조 씨는 나이 들기 전에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를 정하라고 조언했다.
“집안에 문 다 닫아도 먼지는 쌓이거든요. 그게 몇 십 년 쌓이면 뭔가 됩니다. 글 쓰는 일이든 한 가지 이상은 아무리 바빠도 해놓으세요. 젊을 때 아무리 바빠도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한두 가지 정도는 미리 해놓으면 노후에 큰 자산이 됩니다.” (정유원 씨)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행복
정윤원
(2011 전국노인백일장대회 운문부문 대상)
Ⅰ
행복이란
내 마음의 호수를 가득채운
계절의 빛과 바람이
넌지시 보내주는 잔잔한 미소 같은 것....
그것은
어린 나를 키워주었고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었던
삶의 동반자였네.
Ⅱ
여렸던 시절에는
일곱빛 무지개를 보면서
신미함에 감탄하며
얼굴에 머금었을 그 미소를
이제는 손자와 손녀들의 얼굴에서
매일 매일 볼 수 있으니
정말 행복하다네
소년시절에는
여름 내내 땀흘리시던 할아버님이
황금빛 물결치는 들판에서
막걸리 한 대접을 단숨에 드시고는
빙긋이 지으시던 그 미소를
지금은 꿈에서나마 뵐 수 있으니
이 또한 행복하다네.
나이가 더 많이 들어서는
온몸을 적시는 땀과 열기로
시간과 씨름하며 지내던 시절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서
내려오던 그윽한 미소가
이제는 인생의 보람으로
새삼 감사 할 수 있으니
또한 행복하다네.
Ⅲ
겨울하늘에 흩날리는 눈을 막을 수 없듯이
백발이 되어가는 머리카락들을 아쉬워하며
다가오는 인생의 끝자락을 가늠해야하는
이쯤의 위치에서도
저녁노을이 서글프지 않고
겨울바람도 삭막하지 않음은
그와 같은 행복의 미소들이 있었음에
가능했으리라.
이제
또 하나 욕심내는
행복의 꿈이 있다면
전설에 등장하는 신선처럼
푸른 소(靑牛) 타고 하늘을 거니는
미소를 머금은 하얀색 노인이 되어
내 마음의 호수를
거닐어보는 행복을
꿈에서나마 한번 느껴 볼 수 있다면....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