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사

다큐 만화 <내 어머니 이야기> 작가 김은성

아날로그 감성으로 ''만화작가’ 길 꼿꼿하게 걷다

지역내일 2012-02-15

물장수로 유명한 함경도 북청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한 만화 <내 어머니 이야기>. 작가 김은성(47세)은 자신의 엄마를 주인공으로 1백 년 전 ‘이 땅의 엄마들’ 이야기를 리얼하게 재현해 낸다. “판화 분위기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네요.” 만화가 실린 홈페이지 훅(hook)에 올라온 댓글처럼 그의 그림체는 디테일을 과감히 생략한 단순한 선과 흑백의 대조가 도드라진다. 내용도 ‘만화’하면 흔히 연상되는 과장된 판타지, 멜로, 액션을 찾아보기 어렵다. 처녀시절 엄마의 풋풋한 첫사랑, 일제강점기 강제로 땅을 수용당한 후 겪어야 했던 외갓집의 고초, 성미 고약한 홀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신 외할머니 사연 등이 소박하면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엄마 인생 80년’을 만화에 담다
 “일제 강점기 때 어린 시절을 보낸 엄마는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억지 결혼을 하고 전쟁으로 부모와 생이별을 하는 고통스런 삶을 살았어요. 이건 책에서 배운 대로의 역사지요. 또 한편으로는 결혼한 지 닷새 만에 해방이 되어 정이 없던 남편이 군대에 끌려 나가지 않게 됐다는 이유로 해방된 게 싫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줘요. 이건 우리가 아는 역사 상식과는 모순된 ‘당시 보통사람들의 삶’이죠. 이런 기록도 남길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향, 가족의 정을 다룬 그의 만화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물씬 배어난다. ‘다큐 만화’란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 가고 있는 그의 작품에 일반 독자 보다는 외려 만화가들이 주목한다. “디테일이 강한 그의 작품은 개성이 뚜렷해요. ‘대안 만화’라고 할까. 유럽 쪽에서도 관심 갖고 있죠. 스페인에서 그의 만화가 출판되기도 했어요.” 출판사 ‘새만화책’의 김대중 대표의 설명이다.


디자이너에서 만화가로 늦깎이 데뷔
 김은성은 다소 늦은 마흔에 만화가로 데뷔했다.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았기에 고려대 심리학과에 입학, 민주화 욕구가 봇물처럼 터졌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고 졸업 후에는 사회단체에서 몸담았다. ‘그림’과 별 인연 없이 살다가 문득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품게 되었다.
 중고교 시절 미술대회 단골 수상자였고 틈날 때 마다 낙서하듯 즐겁게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저 없이 화실로 달려갔고 서른 살에 홍대 미대 대학원생이 되었다. “원 없이 디자인을 공부한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대학원생이지만 모든 학부 강의까지 청강하며 공부의 깊이와 넓이를 채워나갔죠.” 신이 나서 몰입하니 디자이너의 생명인 아이디어가 샘솟듯 나왔다. 졸업 후에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실험영화제작소에서 평소 관심 많았던 영화를 공부했다. “그래픽 디자인은 ‘한 컷’에 모든 메시지를 담아야 해요. 디자이너로 일하면서도 ‘스토리텔링’에 대한 갈망 때문에 영화판을 기웃거렸죠.”
 그러다 부천만화정보센터 웹마스터로 일하면서 만화의 매력에 눈 떴다. 국내는 물론 일본, 유럽의 만화까지 섭렵하고 만화가들과 교류했다. “창작에 대한 갈증을 만화로 풀면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죠.” 곧바로 남산의 서울 애니메이션센터 만화전문교육 과정에 등록하고 1년간 치열하게 공부했다. 박재동 화백 등 쟁쟁한 만화가들로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박 화백이 면접 당시 나의 합격 여부를 놓고 고민이 많았데요. 기획안 아이디어는 독특한데 만화의 기본기가 없어서요.” 만화 작법의 ABC부터 독하게 배웠고 ‘김은성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다.  


‘이야기꾼 열정’ 만화로 풀다
 가진 걸 몽땅 내려놓고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든 그의 두둑한 배짱의 정체가 궁금했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을 일을 찾고 싶었어요. 돌고 돌아 여기까지 힘들게 왔지만 만화가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여러 군데서 일한 경험이 작품의 토대가 되니까 인생을 허비한 것도 아니지요.” 김 작가의 담백한 답변이 돌아온다.
 ‘스토리가 빈약한 만화’를 용납할 수 없어 한컷 한컷 그리기 위해 그가 쏟는 공력은 상당하다. “엄마가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를 녹음해요. 테이프를 반복해 들으며 스토리를 짜 그림을 그리죠. 대사에 이북 사투리 특유의 맛을 살리기 위해 고심해요.” 꼬박 9년째 이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작업도 컴퓨터 대신 수작업을 고집한다. “여든살 노인네의 간결한 한마디에서 인생의 진리를 발견할 때가 많아요. 어찌 보면 만화를 그리며 두 사람 인생을 사는 셈이죠.”
 독신인 그는 20년 넘게 방이동에서 엄마와 함께 산다. 작품이 막힐 때마다 올림픽공원을 산책하며 스토리의 실마리를 찾는다. “<내 어머니 이야기>를 올해 안에 탈고할 예정이에요. 후속 작품으로 여성문제나 사회성 짙은 주제를 다뤄보고 싶어요. 만화로 풀어낼 수많은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서 뱅뱅 돌아요(웃음).” 상업성에 휘둘리지 않고 ‘만화 작가’의 길을 줏대 있게 걷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엿보였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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