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외면한 무상보육정책

“집에서 키우면 무상보육 지원 못 받아”

보육시설에 맡겨야 지원 … 시설 부족으로 보육 질 저하 우려

지역내일 2012-02-13

지난 1일 정부가 발표한 무상보육정책에 대해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의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부모들의 양육부담을 덜어주겠다고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한 일. 그러나 정책 방향과 우선순위에 있어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경우 국가가 무상 지원을 하지만, 집에서 아이를 키울 경우 양육수당 지원이 적어 반발을 사고 있다.


엄마보다 보육시설을 믿는 정책=
우선 보육시설을 많이 이용하는 만 3~4세보다, 보육료를 만 0~2세 영유아에게 먼저 지원하는 점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김미희(32·두정동)씨는 “올해 만 4세인 큰 아이는 보육료 지원에서 제외됐고, 돌도 안 된 둘째 아이가 보육료 지원을 받는다”며 “왜 실제 보육시설을 많이 이용하는 연령이 아니라 만 0~2세가 먼저 지원을 받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만 0~2세는 부모와 애착형성이 중요한 때인데 이 시기의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맡겨야 보육료를 지원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라고 말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만 0~2세 아동을 보육시설에 보낼 경우 39만4000원에서 28만6000원까지 보육료를 지원받는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키울 경우 차상위계층이 아니면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정부의 무상보육 지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겨야 하는 것이다.  
만 0~2세 영유아를 보육시설로 몰아가는 정부 정책에 대해 어린이집 측에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아산 ㄱ어린이집 김유정(가명) 원장은 “현재 어린이집의 교사 대 영유아 비율을 생각할 때 만 0세 영아에 대한 보육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걱정”이라며 “갑자기 늘어난 수요로 인해 보육의 질 저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 보육료 지원 위한 예산 확보 비상
지자체도 당황하고 있다. 만 0~2세 보육료 지원을 소득 하위 70%에서 전 계층으로(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확대하는데 필요한 예산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천안시의 경우 만 0~2세 영유아 1만9448명 중 현재 보육시설에 다니고 있는 영유아를 제외하면 약 9000여명이 보육료 지원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비용은 155억 원으로 이 중 국·도비를 제외하고 54억 원을 시에서 부담해야 한다. 천안시 여성가족과 담당자는 “현재로서는 추가비용 54억 원을 마련할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충남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536억 원의 추가비용 중 도에서 부담해야 할 액수가 80억 원. 하지만 “5월 추경에서 최대한 예산이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답변만 내놓고 있다.
전국 광역 지자체들은 이미 올해 예산 편성이 끝나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까지 추가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전국 16개 광역시·도 단체장들은 지난 1일 여수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만 0~2세 무상보육 확대에 따라 지자체의 재정 부담이 큰 만큼 국고 보조율을 90%이상 올려 달라”고 요청했다.    


국공립어린이집 확충이 우선
충분한 논의과정과 준비 없이 발표된 무상보육 정책에 대해 천안여성회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지난달 19일 성명을 통해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서비스부터 확충하라’고 주장했다.
천안여성회는 “개인에게 돈을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공립어린이집이 대폭 확충되는 방향으로 무상보육이 진행돼야 한다”며 “일하는 부모의 자녀를 위한 좋은 보육시설 확충, 가정에서 양육하는 아동들도 필요할 때 보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보편적 보육서비스’의 실현이 국가의 책무”라고 주장했다.


서다래 리포터 suhdr1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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