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포증, 백어맹황’. 2012년 시무식 때 정용기 대덕구청장이 강조했던 말이다. 정 구청장은 포증(송나라 때 관리)과 황희보다 청렴한 공직 자세로 업무에 임해달라며 직원들의 발을 직접 닦아 주었다. 강직한 성품과 소탈한 웃음으로 대덕구민들에게 두 번이나 선택 받은 구청장. 정용기 구청장을 만나보았다.
대덕구 하면 ‘배달강좌제’가 떠오른다. 주부들의 호응이 좋던데.
역발상이 성공을 거둔 사례다.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는 구민들은 넘치는데 정작 학습할 수 있는 전용건물이 없었다. 건물 설립비와 유지비를 따져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때 ‘짜장면처럼 학습도 배달해 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 전국 최초로 시작해 ‘최우수 평생학습도시’ 3연패를 달성했다. 또한 국비 2억4000만원을 2014년까지 창조지역사업비로 지원 받는다. 지난해 1년간 7000여명의 주민이 강의를 들었으며 600개 이상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수강자가 자격증을 취득해서 일자리를 구한 사례가 많다.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이 배달강좌제를 통해 사회에 다시 자리매김하는 것을 보면 보람이 크다. 1000여건의 강좌를 운영하고 있지만 강의의 질적 향상을 위해 더욱 힘을 기울일 계획이다.
예산이 삭감된 사업들이 많다. 올해 사업비가 0원인 항목도 있던데.
구정소식지발간(대덕&라이프) 대청호마라톤대회 등 4가지 사업비가 0원이다. 그 외 4억 1000여만 원이 삭감됐다. 23년간 지속적으로 발간해 오던 구정소식지를 구민들에게 묻지도 않고 불필요하다고 단정 짓는 대덕구의회가 답답하기만 하다. 대청호마라톤대회는 아름다운 코스로 유명해 전국에서 마라토너들이 운집하는 대회다.
구청장 현장행정에 필요한 사업비는 다른 구에 비해 턱없이 적다. 대부분 재선 때 공약을 내건 사업들이다. 기름 없이 차를 운전해야 하는 꼴이다. 그래서 행정 시찰용 자전거를 구입했다. 구민과의 소통은 구정운영의 핵심이기 때문에 예산이 없다고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대화동 천변이나 보행이 어려운 지역을 순찰할 때 좋다.
재정 위기, 어떻게 극복할 계획인가.
기름이 없다면 차를 끌고라도 갈 생각이다. 정말 중요한 사업을 위해선 다른 사업을 포기할 결심이다.
예를 들면 대덕구를 전국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대청호마라톤대회 같은 경우 꼭 유치를 해야 한다. 난항이 예상되지만 나는 대덕구민의 힘을 알고 있다. 다른 구에 비해 열악한 재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주민들이 앞장서서 모금을 하거나 바자회를 해서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4기 구청장 때 ‘학풍캠페인’을 위해 무려 20억을 모아 준 일도 있었다. 진심은 통한다.
투자 사업비 비율을 높게 평가하는 ‘어린이 안전 대상’ 수상, 지방에서 유일하게 대덕구만 받았다.
안전 취약 계층을 위한 복지 사업에 욕심이 많다. 2008년부터 아이사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등·하교 시 아이의 위치가 보호자의 휴대폰에 표시되는 시스템이다.
2009년부터는 인프라에 집중 투자했다. CCTV를 설치하고 안·실·련과 공조해 시민들의 안전의식 순회 교육을 시작했다. 교통사고율과 범죄발생률이 눈에 띄게 떨어져 구민들 반응이 좋았다. 또 다른 취약 계층인 독거노인을 위해 가스 노출 탐지기 설치를 실시하고 있다.
대덕구의 복지현황 어떤가. 지향하는 복지 정책은.
우리 지역에는 도움과 나눔의 손길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가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하고 있다. 저소득 취약 계층에 대한 복지대상자별 맞춤형 복지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
노인복지사업확대(15억6000만원) 장애인 자립재활(37억7000만원) 영유아 중심의 보육 환경개선 등을 추진했다. 올 해는 다문화가족의 지원 영역을 확대해 안정적인 정착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무엇보다 나눔과 기부문화의 확산으로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 축제가 많아 진 것이 눈에 띈다. 초등4학년 사회 시험에서 지역 축제 쓰는 문제가 있었는데 대덕구 아이들은 무리 없이 답을 썼다고.
고무적인 일이다. 애향심은 지역 발전에 근본이 되는 거름과 같다.
송촌동 동춘당 축제를 중심으로 대덕학 운동을 전개 하고 있다. ‘대덕학 (大德學)운동’이란 대전의 발원지인 대덕의 찬란했던 천년의 역사와 인물 등 과거를 바르게 알림으로써 정체성과 애향심, 자긍심을 심어줘 다가올 희망찬 미래를 함께 준비하자는 운동이다.
또한 주민들이 계획하고 진행하고 참여하는 동별 학습마을 축제는 우리 구의 자랑거리다. 축제 중 댄스스포츠 실력을 뽐내는 어르신들은 우리 구민만 보기엔 아까울 정도다.
대덕구민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지난 해 재래시장을 순찰하고 있을 때 어느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우린 괜찮으니까 이제 그만 싸워. 그러다 몸 상하면 어쩌누”라고 몇 번이고 말씀하셨던 것이 내내 마음 아프다. 누군가에게 구청장이 외롭게 싸우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모양이다. 본의 아니게 ‘투사’의 이미지로 비춰진 한 해였다.
올해는 그동안 추진해 온 로하스금강프로젝트가 결실을 보는 해이다. 대청댐 주변과 대전천 갑천 등 3대하천이 되살아나고 계족산에 스토리가 있는 3개의 녹색길이 열리는 해이기도 하다. 좋은 결과로 구민들이 대덕구에 살고 있음을 자랑하는 해이길 바란다. 민선4기에 이어 5기, 믿고 지지해 준 구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조차 부족함을 느낀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행정으로 보답하겠다.
안시언 리포터 whiwon00@hanmail.net
“내가 투사? 남들 앞에서 노래도 못했던 학생”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고 투사 이미지라고 해요. 명분 있는 싸움이라면 물러서지 않지만 사실 저는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은 성격입니다. 초등학교 때는 앞에 나가서 노래 한 소절 못 했을 정도였어요.”
한나라당 최연소 지구당 위원장(2003), 민선 4기·5기 최연소 기초 단체장인 정용기 청장의 의외의 고백(?)이다. 실제로 그는 초등학교 시절 반장이나 회장으로 추천을 받아도 손사래를 치며 고사하곤 했다. 몸도 약해 600m 달리기를 할 때면 선두와 한 바퀴 이상 뒤처졌다. 그리곤 운동장 한 쪽에 쓰러져 숨을 헐떡거리며 한동안 정신을 잃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던 소심남이 ‘정치’를 결심한 것은 중학교 입학 무렵이었다. 엄마들의 치맛바람으로 아이들의 성적이 조작된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때 정 구청장은 부조리한 세계를 바꾸기 위해 정치를 꿈꾸기 시작했다. 우선 체력 단련부터 시작했다. 성적은 상위권이었지만 부실한 체력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아침 조깅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다.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기 위해 누구에게든 먼저 다가갔다. 그러면서 자신의 꿈을 위해 한발자국씩 전진해 나갔다. 그 결과 2010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전지역 현직 구청장 중 유일하게 한나라당으로 구청장에 당선됐다. 더욱이 재선이었다.
정 구청장은 2006년 민선 4기 대덕구청장으로 당선될 때부터 매주 목요일 구민들과 민원 현장에서 만난다. “대화와 참여, 어렵지~않아요”라고 구민들은 말한다. 구민들이 예산위원회를 꾸려 구정에 직접 참여하고 부지런히 바자회를 열어 마을 살림을 도모했다.
정 구청장은 ‘2008년 대한민국 공공행정서비스부문 대상’과 ‘2011년 다산 목민대상 행안부장관상’으로 구민에게 보답했다.
그는 말한다. “(정)용기에게 용기란 난관을 뚫고 신념을 지켜내는 것”이며 “구민들이 용기의 원동력”이라고. 여린 소년의 감성과 뚝심 있는 용기가 공존하는 사람. 정용기다.
안시언 리포터 whiwon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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