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서울 탐방 때 워낙 떨었던 기억이 남아서였을까? 다들 중무장을 하고 서해안으로 떠났다. 그런데 고맙게도 날이 풀려 다니기에 한결 수월했다. 얼마 전 내렸던 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어 아이들과 함께 신나하며 눈을 밟고 다녔다. 고인돌도 채석강도 내소사도 아름다웠지만 하얗게 쌓여있는 눈 덕분에 더욱 낭만적인 겨울 여행이었다.
고창 고인돌유적지
고창 고인돌 박물관
고창에 도착해 처음 들른 곳은 ‘고인돌 박물관’이었다. 고인돌은 판석이나 지석을 이용해 상석을 받치고 있는 거석문화의 일종으로 대부분 무덤으로 쓰였다. 전 세계 고인돌 중 우리나라에 60% 이상이 남겨져 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박물관에는 청동기시대의 각종 유물과 생활상 등 고인돌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상당히 잘 만들어진 박물관으로 미슐랭 그린가이드에서 최고점인 3점을 받았다고 한다.
박물관 외부 야외공간에서는 선사인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선사마을, 고인돌끌기 체험 마당, 청동기시대의 묘제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접할 수 있었다. 박물관에서 5분 남짓 걸어가면 실제 고인돌유적지를 볼 수 있다. 고인돌인지 모르던 시절에는 단지 큰 바위에 불과했던 터라 마을 사람들에 의해 많이 훼손됐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리포터 눈에도 그저 큰 바위같이 보였으니까.
고창읍성
고창 읍성과 판소리 박물관
오후 탐방 코스는 고창 읍성이었다.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석성으로 성벽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성밟기놀이가 전해오는데, 여인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돈 다음 성 입구에 그 돌을 쌓아뒀단다. 이렇게 쌓아놓은 돌은 유사시에 좋은 무기가 되기도 했다고. 성내에는 대원군 척화비가 서 있고, 읍성 앞에는 조선 후기 판소리의 대가인 신재효의 생가가 있다.
아이들이 제일 재미나 했던 것은 탐방 뒤 눈싸움. 열심히 눈을 뭉친 뒤 편을 가르고 던지며 놀았다. 폭삭한 눈 위에 드러눕는 아이도 있었다. 한바탕 신나게 즐긴 뒤 읍성 앞에 있는 판소리 박물관에 들렀다. 실제 판소리 선생님께서 설명을 해주시고 춘향가의 한 대목도 들려주었다. 폭포수 그림 아래서 득음을 할 수 있는 체험관도 있었는데 딸아이는 부끄러운지 작은 목소리로 “제비 몰러 나간다”를 연발해 애를 태웠다. 딸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는 거니?
내소사 전나무길
변산반도 채석강과 내소사
탐방 이틀째에는 변산반도로 향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변산반도 채석강. 채석강은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졌다는 채석강과 흡사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끝에 ‘강’자가 붙어서 가끔 오인 받는 경우도 있는데 강이 아니라 바닷가 절벽이다. 멋진 채석강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은 뒤 내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소사가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는 ‘아름다운 숲’과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선정된 내소사 전나무 숲길 덕분이다. 하루로 쭉 뻗은 아름드리나무들이 울창하다. 흰 눈이 내려앉아 더욱 운치 있어 보였다.
내소사에 도착해 대웅전부터 찾았다. 내소사에 얽힌 전설 때문이었다. 내소사는 선우 스님이 나무토막 한 개를 숨긴 연유로 부정 탔다 하여 목침 하나를 박지 않고 대웅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대웅전에서 목을 빼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목침 중에서 대체 어디가 빠져있다는 것일까. 결국은 찾지 못해 보살님께 여쭈었더니 손가락으로 가리켜준다.
계속해서 목을 빼고 이리저리 둘러봤다. 이제는 단청 중에서 빠져있는 부분을 찾을 차례다. 쉽사리 발견할 수 없었다. 또다시 보살님께 부탁했다. 한 부분을 가리킨다. 아하~저 곳이로구나. 나무토막을 숨긴 선우 스님이 또다시 사고를 쳤단다. 단청을 그리는 백 일 동안 대웅전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일렀건만 99일째 되던 날 참지를 못하고 빼꼼이 들여다보는 순간, 단청을 그리던 새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단다. 그래서 단청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나 뭐라나.
법당 삼존불을 모신 불단 후불벽면에는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는데 이 좌상의 눈을 보고 걸으면 눈이 따라온다. 그 눈을 마주치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열심히 걸었다. 딸아이는 소원 비는 걸 깜빡했다며 다시 돌아갔다. 무슨 소원이었을까. 아이는 답 대신 배시시 웃어 보였다.
내소사
고창 선운사
원래 계획은 미당 서정주 시인의 생가에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선운사로 방향을 틀었다. 붉은 동백이 지천으로 피어있을 무렵이면 정말 좋았겠으나 지금은 쓸쓸히 나무만 남아있었다. 다들 봄에 다시 와야겠다며 허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송창식의 ‘선운사’를 들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움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바람 부는 어느 서러운 날, 진정 선운사로 떠나야 하는 걸까?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하길 빌었으니 선운사에 다시 와도 서러움 때문은 아닐 게다.
이수정리포터 cccc09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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