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인] 창덕여고 2학년 권수연

고교생 문화기획자, 내 삶을 기획하다

지역내일 2011-12-11 (수정 2011-12-11 오후 12:09:56)

 좌우명이 ‘웃자’라고 했다. 첫인상이 지나치게 진지해 말붙이기 어렵다는 소리를 친구들로부터 귀 따갑게 들어 늘 ‘방실방실’ 웃으려 애쓴다는 권수연양.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눠보니 또래 수준을 뛰어넘는 튼실한 인문학적 토대가 돋보였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음악·미술·문학은 ‘내 친구’
 수연 양은 <영웅> <원효> <노틀담 드 파리> 등 국내 무대에 올려진  입소문난 뮤지컬을 두루 섭렵했다. “최근 대학로에서 본 창작뮤지컬이 기억에 남네요. 작은 무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 엿보였어요.” 권양의 감상평이다. “공연을 볼 때는 스토리, 무대장치, 배우, 음악을 분야별로 쪼개 디테일하게 보려고 해요.” 그러면서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과 달리 소극장 공연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어 색다른 매력이 있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문화기획자를 꿈꾸는 그는 음악, 미술, 문학에 애정이 깊다. 때문에 세 장르가 고루 녹아있는 공연을 교과서 삼아 장래 진로를 향한 ‘기초 체력’을 기르는 중이다. 물론 예비 고3생으로 살인적인 공부 스케줄도 착실히 소화하고 있다.
 수연 양은 유학 간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서 지낸 5년을 ‘보석 같은 유년의 추억’으로 떠올린다. “발도로프 유치원을 다녔는데 숲이 놀이터이자 교실이었고 흙, 풀, 나뭇조각이 장난감이었어요. 2년간 다닌 외국인학교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아이들과 뒤섞여 지내며 ‘다문화’를 온몸으로 배웠지요. 공부가 아닌 ‘소통 수단’으로서 외국어, 문화에 대한 관심이 그 때에 길러졌어요.”
 그는 영어, 독일어, 일어 3개 국어를 한다. 특히 일어는 중학교 때 혼자서 익혔다. “일본 만화에 푹 빠져 <이누야사> 같은 만화를 보고 또 보며 뜻도 모른 채 대사를 몽땅 외웠어요. 내가 좀 ‘오타구’ 기질이 있거든요(웃음). 주먹구구식으로 일어를 배우다 나중에 원어민선생님에게 정식으로 배웠고 공부한 김에 일본어능력시험(JLPT) 2급까지 땄어요.” 권 양은 최근 송파구에서 열린 리브컴어워즈 국제대회에서 일어와 영어 통역봉사활동도 펼쳤다.




 ‘문화기획자 권수연’ 색깔 만들기
 ‘그림은 말 없는 시’라고 말하는 수연 양은 짬짬이 ‘미술’과 논다. “국영수 공부에 치이다 보니 숨 쉴 ‘틈’ 필요했어요. 그래서 방학 때마다 미술학원에 다니며 그림을 그려요. 운 좋게 미술심리를 전공한 선생님을 만나 머릿속 메시지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데 꽤 재미있어요.”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백설공주> 같은 동화 9편을 테마로 그림을 그리고 여기에 본인만의 독특한 해석을 담은 글을 한데 엮어 곧 아트북을 펴낼 예정이다. “글과 그림이 하나씩 쌓이다보니 책 한권으로 묶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났어요. ‘예비 문화기획자 권수연’만의 색다른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보고 싶었죠.” 야무지게 속내를 밝힌다.
 이처럼 ‘콘텐츠 제작’에 관심 높은 그는 창덕여고 교지 편집부 활동에 애착을 보인다. “아이템 기획, 섭외와 취재, 레이아웃까지 우리 손으로 200페이지 분량의 책을 완성해요. 만화가 강풀, 작곡가 방시혁 같은 유명인을 섭외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리뉴얼한 교지가 꽤 반응이 좋았어요.” 공들여 만든 교지를 보여 주는 그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사람’을 향하는 따뜻한 실천
 새로운 도전에 적극적인 그는 교내외 각종 프로그램에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뭐든지 일단 부딪혀 보는 성격이에요. 성공하든 실패하든 꼭 배우는 것이 있으니까요. 학생 명예교사도 마찬가지예요.” 창덕여고에는 학생들 끼리 그룹을 짜서 ‘학생이 학생을 가르치는’ 명예교사제도가 있다. 1학년 때 수연 양은 골프 명예교사로 활동해 동급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사실 제 골프 실력은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을 통해 짬짬이 익힌 게 다예요. 그걸 밑천삼아 용감하게 명예교사로 자원했는데 반응이 괜찮았어요.” 올해는  고문(古文) 명예교사로 활동한다. “친구들이 어려워하는 <관동별곡>을 주제로 수업을 했어요. 교수학습 지도안까지 쓰며 학생이 아닌 ‘교사’ 관점이 돼 보니까 새로운 게 보였어요. 지식을 ‘아는 것’과 ‘전달하는 것’의 차이를 생생하게 경험해본 셈이죠.”
 지난 여름방학 때는 호비(HOBY) 재단이 주최하는 청소년리더십 프로그램에 참여해 굶주리는 개발도상국가 아이들을 돕는 자선활동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학을 공부하신 아빠 덕분에 어릴 때부터 문화, 예술 분야 폭넓은 지식을 접하며 자랐어요. 내가 누린 혜택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막연한 부채의식이 있어요.” 깊은 속내를 털어놓는 그는 매월 용돈을 아껴 결연을 맺은 미얀마 소년을 후원하고 신망애복지재단에서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에 나서며 ‘작은 실천’을 행하고 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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