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 울리는 주택 분양시장

지역내일 2011-12-05
중도금 대출 안되는데도 '묻지마 분양' … 피해 속출




가리봉에 살고 있는 중국 동포 A(48)씨는 주말이나, 공사일이 없는 날이면 구로구의 한 도시형생활주택·오피스텔 견본주택에 나간다. 그 곳에서 방문객들에게 "내가 계약한 도시형생활주택을 싸게 넘길테니 계약하자"는 얘기를 반복한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A씨는 10년전 국내에 들어왔다. 올해 초에는 아내도 한국으로 와 식당과 모텔 청소일을 하고 있다. 10년간 틈틈이 돈을 모아 지난해 말 단칸방도 마련했다. 중국에 남은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내면서 저축도 상당히 했다.

그러던 중 지난 10월 "계약금 수천만원만 내면 아무런 문제없이 도시형생활주택을 소유할 수 있다"는 말에 계약했다. 현재 단칸방보다 나을 것 같았고, 월세라도 받을 경우 한국 생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중도금 대출을 받으면 계약금만 갖고도 오피스텔이나 도시형생활주택을 소유할 수 있고, 나중에 전세나 월세를 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계약을 했다. 각종 아파트 건설현장을 다닌터라 부동산에 대한 지식도 있다고 자신했다.




도시형생활주택이나 오피스텔은 아파트와는 달리 청약통장이 없어도 된다. 게다가 A씨는 국내에 체류할 수 있는 증명서인 '거소증'도 갖고 있다. 거소증이 있으면 은행계좌는 물론, 증권계좌도 만들 수 있고, 주택을 소유할 수도 있다.

하지만 A씨가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을 납부한 뒤 문제가 생겼다. 구로구에 자주 오가던 은행을 방문해 중도금 대출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거소증 소지자들에게는 중도금 대출이 아예 안 되기 때문이다. A씨는 이달 말부터 매 분기마다 2000만원이 넘는 중도금을 내야 한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면 사채를 동원해야 한다. 분양대행사에게 계약해지를 요구했지만 대행사는 "본인 잘못"이라며 거절했다.

A씨는 결국 소유를 포기하고, 전매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도시형생활주택이 과잉공급된데다,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상태라 전매도 거의 실종된 상태다.

A씨는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계약했으니 계약금보다 500만원이라도 싸게 넘기려고 하는데도 매입자가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A씨의 내집마련의 꿈도 산산이 깨질 위기에 처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A씨와 같은 사례가 최근 들어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서부권 구로나 금천, 영등포, 강서구 지역은 외국인 노동자나 중국 동포들이 많은 곳이다. 또한 도시형생활주택이나 오피스텔 등 소형주택 공급이 활발한 곳이기도 하다.

A씨처럼 돈을 조금이라도 모았거나 거소증이 있는 경우 '내집 마련' 유혹에 흔들리기 쉽상이다.

한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구로나 금천, 영등포, 강서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곳에서 간혹 벌어지는 일"이라면서 "그러나 계약을 한 이주노동자나 중국 동포중에 1년 넘게 중도금을 수천만원씩 내면서 소형 주택을 소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실제 대림동의 한 도시형생활주택에는 10명 미만의 외국인 계약자들이 있다. 이들 모두 거소증을 갖고 있는 동포들이지만 국적은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이다. 이들은 재테크를 위해 투자한 예다. 모두 중도금 납부에 문제가 없고, 현재 통장에 잔고도 넉넉하다.

문제는 취약계층인 중국 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김기돈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국장은 "중도금 대출이 안되는 중국 동포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신규 분양을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이주노동자들이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제도도 문제지만 법과 제도에 취약한 이들을 노린 악덕상술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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