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를 결심한 뒤로 술을 잘 끊어가는 사람들을 중에는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보다는 조금은 우직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우직하다는 말은 결코 미련하다거나 멍청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말의 숨은 뜻은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멀리 바라보고 회복의 본질과 기본에 충실히 따른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독단적으로 나서서 어떻게 해보려고 이리저리 궁리하기보다는 자신을 도와줄 가족이나 선배들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는 자세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에 회의가 드는 일생일대의 위급한 상황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막연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알코올중독이라는 딱지를 받자마자 겪는 충격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유별난 집단주의적 우리 사회문화에서 사회적인 체면과 명예를 잃는다는 상실감과 사회로부터 당하는 탄핵과 기피에 대한 두려움은 후유증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보다 더 크다. 죽음 직전에서도 끝까지 이 병을 인정하지 않고 치료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우직해 보이는 사람들이 사실은 생각을 깊이 한 사람들이다. 생각을 깊이 해야 본질에 대해 사고가 가능하다.
위기에 닥치면 누구나 자신이 가진 가장 힘센 기관을 동원하여 대처한다. 뱀이나 개와 사자는 입을 쫙 벌려 송곳니를 드러내고, 침팬지나 곰은 앞발을 치켜들어 가슴을 치고, 말은 발길질을 한다. 사람이라면 머리를 써 생각하기 마련이다. 위기에 닥쳐 사람들은 생각을 더 골똘히 한다.
이것이 철학이다. 철학은 인생의 비극과 긴장을 핵심으로 인생을 다루어낸다. 위기에 처했을 때 명확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지혜로운 선택과 판단을 하게 한다. 그래서 기존의 체계를 넘어 새로운 체계로 생각을 발전시킨다. 철학은 생각과 상황을 더 복잡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위험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한다. 자신에 대해 실천하는 이상적인 철학은 자아를 한계상황에서 구해준다. 술을 끊으려면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알코올은 그 화학적 특성으로 인해 머리를 쓰지 않게 한다. 과음을 자주하면 습관적으로 머리를 쓰지 않으므로, 위험에 닥쳐서도 아무 생각 없이 고정관념에 따라 맹목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판단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단주를 과거에 수없이 실패해 왔던 그 방식 그대로 답습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자면 무엇보다 생각을 깊이할 일이다.
신 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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