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_겸재정선기념관 이석우 관장

인생을 빚어서 예술을 담그다

지역내일 2011-12-04

지난 11월 19일 토요일 오후, 겸재정선기념관 3층 다목적실에는 30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스크린에 비친 모네의 그림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모네의 그림을 말하기 전에 인상주의 미술에 대한 언급이 필요합니다. 모네 이전 즉, 인상주의 이전에는 하늘은 파랗고 사과는 빨갛게 정해진 색채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인상주의는 사물에 주어진 고유한 색 보다는 화가가 사물을 볼 때 느껴지는 인상과 감정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자유로우며 순간의 이미지를 포착하기 때문에 모네의 그림을 보면 밝고 경쾌하고 옷자락을 스쳐가는 바람조차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모네의 작품 ‘왼쪽을 향해 선 우산을 든 여인’을 보며 화가인 ‘모네’와 그 시대적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사람은 겸재정선기념관의 이석우 관장, 서양 미술사의 주축을 이루었던 위대한 거장들의 작품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장장 2시간 동안 풀어내면서 서양의 미술문화와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다.


역사학자이자 화가, 정선기념관 관장이 되다
가양동 궁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겸재정선기념관은 그곳의 역사적 터전만큼이나 고즈넉하고 편안함이 느껴진다. 현대적인 외관에 전시물 하나하나가 첨단과학이 결합되어 시대를 뛰어넘는 역사적인 현장을 느낄 수 있다. 겸재 정선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이곳을 이끌고 있는 이석우 관장, 단순한 기념관이 아닌 시민들과 소통하는 다이내믹한 공간으로 만들어 내려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지역 주민의 참여를 기다린다. 겸재의 그림에 담겨있는 우리의 풍경 우리의 삶 우리의 정서에 살짝 포개어지는 이석우 관장, 인자한 인상 겸손한 태도 미술과 역사에 대한 열정과 끊임없는 배움의 자세를 통해 오랜 연륜만큼이나 그의 인품이 느껴진다.
겸재정선기념관의 이석우 관장은 서양사를 전공한 문학박사이다.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평생을 보낸 그가 겸재정선기념관장으로 부임한 것은 우연은 아니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이 관장은 목포중학교 시절 미술부에서 활동을 했는데, 그 곳에서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중 한명으로 알려진 양수아 화백을 미술선생으로 만났다. 게다가 극작가 차범석이 국어교사로 재직하고 있어 예술적 혼을 불사르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화가가 되기 위해 미술실과 양수아 선생의 아틀리에를 오가며 그림에 심취했다. 3학년 때는 전국미술대회 입선 등으로 실력도 인정받았다. 주말마다 야외 스케치며, 한 달에 한 번씩 그림 품평회 등 그림에 대한 열정을 그렇게 쏟아냈다. 그러나 인연도 잠시 스승이 광주사범학교로 전근가면서 그림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림을 마음에 품은 채 역사학도가 됐다.
그러다가 다시 그림에 빠지게 된 것은 80년대 초 경희대학교 교수 시절, 광주민주화운동의 시대적 아픔과 절망 속에서 대학의 강의실에는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과연 행동하는 지성인인가’에 대한 회의감과 자괴감으로 힘든 시기를 버티기 위해 돌파구를 찾아 간 곳이 인사동 화랑. 그 곳에서 시대를 넘나드는 작품을 접하면서 그림을 이해하고 위로도 받았고 그러면서 작품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신문사의 편집장이 양수아 선생에 대한 글을 써보라고 권유했고 신문사에 글을 기고한 것이 인연이 되어 전환기 한국 미술가 13인의 삶과 예술을 풀어낸 ''예술혼을 사르다 간 사람들''을 펴내게 된다. 그 뒤로 역사와 미술의 학제간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저술을 해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 ‘역사의 들길에서 내가 만난 화가들’ ‘명화로 만나는 성경은 새롭다’ 등을 저작해 내면서 색다른 미술평론의 경지를 개척해 냈다.
이 관장은 ‘역사’와 ‘미술’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 주장한다. 역사를 보면 미술을 알 수 있다는 것. “그림은 역사 속에서 시대를 반영하여 나온 것입니다. 인상파가 빛을 의식한 것은 광학에 대한 연구가 그 시대에 있었던 때문인 것처럼 그림은 추상이든 뭐든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림을 봐야 그 시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전 ‘역사의 숨소리, 시간의 흔적’(2006)에 이어 지난 해 12월 ‘박물관에 가면 그림이 그리고 싶다’를 열었다. 식지 않는 열정으로 2006년 정년퇴임 후 겸재정선미술관 관장을 맡아 조선시대 진경산수화풍을 완성한 정선의 예술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미술과 역사의 통합을 이루어 낸 결과물, 겸재정선기념관
우리나라 지폐 천 원권 뒷면을 보면 우리 모두가 무심코 지나쳐 버렸던 산과 나무, 그리고 한 채의 집이 어우러져 있는 그림이 바로 ‘겸재 정선’이 그린 ‘계상정거도’이다. 그러나 이 룰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겸재 정선은 우리에게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그런 겸재를 알리기 위해 세운 겸재정선기념관, 거기에 초대 관장을 맡고 있는 이석우 관장. “조선시대 화가들은 중국화법을 담은 산수화나 그림이 대부분이었는데 중국의 화법은 물론이고 실제의 모습을 담는 실경 산수화법이 아닌 그만의 생각을 담고, 우리민족 정서에 맞는 독창적인 기법을 화폭에 담는 ‘진경산수화’를 최초로 실현한 분이 정선이기에 그의 시대적 가치는 기념관을 만들고 연구하기에 충분합니다.”
이 관장은 앞으로 겸재의 작품 전부를 영인화 할 계획이며 수준 있는 정선논문집을 출간하고, 학회결성은 물론 논문현상공모도 할 예정이다. 또한 겸재미술대전, 겸재오름전, 겸재사생대회 등 유수한 대전을 통해 미술인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여 미술작가들에게 힘을 보탤 것이다. 더불어 개인 기념관이지만 서울시가 출연한 공공기관으로서 전시뿐만 아니라 문화체험교육, 학술, 행사, 자료제공 등 다방면에 걸쳐 시민들의 문화적 삶에 기여하는 문화센터의 기능에도 충실할 계획이다.
요즘 기념관 프로그램 중에 가장 인기 있는 것이 ''어린이 겸재진경교실'', ''명사.석학과 함께하는 미술, 인문학강좌 대학'' 겸재문화예술아카데미대학, 겸재정선기념관 영상으로 보는 서양미술 퍼레이드,  2? 4주 토요휴업일 체험프로그램, 문화예술인문교실 등이 있다.
‘겸재를 한 번 이라도 만나면 겸재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이 관장은 “미술학도를 꿈꾸는 청소년들은 꼭 겸재정선기념관에 들러 봉사활동을 하면 입학사정관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 권한다.

송정순 리포터 ilovesjsmo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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