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이 대홍수로 국가 전체가 마비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지난 여름이 떠오른다.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일을 우리도 겪었기 때문이다.
시간당 40㎜이상의 폭우가 쏟아진 전북 정읍으로 통하는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니었다. 주택은 쓰러지고 살림살이는 흙투성이가 되어있고 꼿꼿이 서있어야 할 벼는 산발한 머리카락처럼 흐트러져 있었다.
낮에는 지붕 위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주민들을 구명보트와 로프를 이용해 구출했고, 밤엔 범람위기를 맞은 섬진강댐 하류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국민과 함께 해 온 소방
물이 빠진 후 광경은 자연의 무서움을 여실히 보여줬다. 겨우 살아남은 오리 한 마리만 주인 없는 외양간에서 목을 축이고 있는 장면을 보고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실감하였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흙투성이에서도 희망의 싹이 보였다. 발목까지 빠지는 진흙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소방대원, 의용소방대원, 도내 전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 군인, 경찰 등 복구활동을 하는 주민들로 어느새 정읍은 절망의 지역에서 희망의 지역으로 바뀌고 있었다.
11월 9일은 소방의 날이다. 필자 역시 지난 30년을 소방공무원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다. 우리 같은 소방가족에게 119는 숫자만으로도 설레는 날이다. 자신의 생일은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겨도 소방의 날 만큼은 왠지 잘 다려진 정복을 입고 뭔가 뜻 깊은 일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시대나 정부 수립 초기에도 소방의 중요성은 강조돼 왔다.
정부수립 전엔 12월 1일을 ''방화일''로 정해 기념했고, 1948년 정부수립 후에는 11월 1일을 소방의 날로 정하기도 했다. 지난 1991년 소방법을 개정하면서 119를 상징하는 11월 9일을 소방의 날로 정하면서 공식화 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소방은 국민들께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고 있다. 어떤 교수는 119를 ''단군 이래 최고로 성공한 집단''이라고 평가해줬고, 유치원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순위가 ''삐요삐요 아저씨''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뛴다. 국민들의 마음속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나 달려와 주는 ''119''가 있고 나아가 119라는 세 글자는 이제 수백 가지가 넘는 상품명과 상호, 서비스 등에 사용되는 브랜드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지금까지의 화재진압, 구조, 구급서비스는 당연한 임무이고 국민들이 원하는 생활민원과 더불어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안전 파수꾼''이라는 소방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섬김과 어울림 한마당으로 차린 생일상
올해 소방의 날에 전북에선 소방가족과 주민이 어울리는 잔칫상을 준비했다. ''섬김과 감사의 119 어울림 한마당''이라고 이름 붙였다. 도민을 하늘같이 섬기겠다는 약속과 그간 119의 가치를 소중히 지켜온 소방가족들을 위한 생일상인 셈이다. 나아가서는 전북소방본부가 시작한 ''현장맞춤형 119안전복지 서비스'' 사업을 더 잘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도내 소방공무원, 의용소방대원 등 소방가족이 지난 8월부터 2개월 남짓 다양한 공연을 준비해 왔다. 도민과 함께 부르는 합창을 통해 도민과 소통을 도모하고, 119패션쇼에서는 현장 활동 대원의 멋있는 복장들을 선보이게 된다. 또한, 건강한 근육을 자랑하는 몸짱 소방관, 다재다능한 소방가족들의 악기연주도 준비했다.
소방가족 뿐 아니라 다문화가족, 지역아동센터, 119수혜도민 등 그간 119와 함께 해온 도민들을 초대해 함께 어울리는 소통과 화합의 한마당을 펼칠 계획이다.
올해로 벌써 49주년, 사람으로 말하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을 앞두고 있다. 국민의 신뢰로 성장해 온 소방이 안전파수꾼으로 국민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날이 되길 바란다.
전북소방안전본부 심평강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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