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10일 수능일 풍경. 2012학년도 수능이 치러진 지난 10일 학생, 학부모, 대학 입학처 관계자, 교과부·평가원 관계자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학생들은 수능 시험지를 받는 순간까지 ‘쉬운 수능이라는데 제발 실수하지 않기를’, 학부모들은 집에서, 시험장 가까이에서, 혹은 제각기 의지하는 절대자 앞에서 ‘우리 아이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기를’, 대학 입학처 관계자들은 ‘우리학교 수능반영방법이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출제됐기를’, 교과부·평가원 관계자들은 ‘영역별 만점자 1% 난이도와 EBS 70% 연계가 적중했기를’ 각각 기도하지 않았을까. 여기에 학원 관계자들은 또 어떤 생각이었을까. 수능학원은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 어렵게 출제됐기를’, 내신학원과 논술학원은 ‘쉽게 출제돼 다음날로 학생들이 몰려오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 수능이 끝난 후의 풍경. 지난해에 비해 상당히 쉽게 출제된 ‘쉬운 수능’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울상일까.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영역별 난이도로 인해 학생들은 수능시험 중에도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문제를 풀었을 것이다. 가채점 후 간혹 기대 이상의 성적으로 들뜬 학생도 있었지만,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에 당황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등급은 형편없는 것. 수능대박으로 논술의 부담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했던 학생들도 바로 다음날부터 걱정스런 표정을 지은 채 논술학원을 드나든다.
입시전문학원들은 가채점 분석결과를 가지고 경쟁적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서둘러 가지 않으면 자리를 차지하기도 힘들어 설명회장 근처의 거리는 바쁜 걸음들로 분주했고, 배치표를 들고 설명을 듣고 있는 설명회장내의 학부모들 표정은 모두 심각했다. 수시 최저학력기준에서 벗어나 논술을 볼 기회조차 잃어 한숨짓는 학부모, 논술을 보러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학부모, 복잡한 학교별 정시전형기준으로 과연 아이의 점수로는 어떤 학교가 유리할지 연구하는 학부모, 이런 학부모들에게 알찬 강연을 마친 강연자가 마지막에 던지는 한 마디는 “유료 온라인 배치표 돌리고, 컨설팅 받으세요.”
논술학원들은 어떠한가. 논술의 변별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몰려드는 학생들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고1, 2 학부모들의 상담까지 쇄도한다. 강남의 유명 논술학원의 경우 전화 상담이 힘들어 직접 뛰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수시가 대세, 그럼 수시는 공정한가. 정확히 수능이 치러지는 날 서울대는 2013학년도 입시에서 수시모집을 79.4%(현행 60.8%)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것이 이유이다. 하지만 수능이 변별력을 잃어 가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할 것이다. 정시 논술을 치르는 서울대도 이러한데 오로지 수능으로 우선선발을 하는 학교들이야 어떨까. 예를 들어 정시 수능우선선발에서 몇 명밖에 뽑지 않는 연·고대의 상위권 학과에 만점자가 몇 곱절씩 몰려든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할 것인가. 대학별고사 중심의 수시가 대세로 흐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과연 수시는 학생들을 공정하게 선발할 수 있을까? 교과부가 대입자율화와 입시선진화를 내세우며 실시하는 대입정책은 크게 ‘입학사정관제 정착’과 ‘수능부담 완화’이다. 입학사정관제의 확대는 반드시 공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입학사정관제 찬반에 대해 38.4%가 반대했고, 반대이유로 불공정성(43.6%)과 입시부담가중(35.8%)을 들었다. 수능부담 완화 정책은 어떠한가. 지난 10월 실시된 수시 2-1 논술에서 대학들은 쉬운 수능을 예상해 발 빠르게 대학별 고사에서 변별력을 확보했다. 어려운 논술이 우려되자, 대교협은 공교육 범위 내에서 출제해 줄 것을 대학에 권장했다. 하지만 대학이 변별력이 확보된 평가를 통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대입자율화를 내세운 마당에 언제까지 강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생들 입장에서 어려운 논술은 어려운 수능보다 준비하기가 더 힘들다.
# 학생들은 이중고(二重苦), 삼중고(三重苦). 서울대 수시(특기자 전형)가 내신, 스펙, 대학별고사, 수능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하다는 것은 수험생을 둔 학부모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상위권 대학의 경우 별반 다르지 않다. 수시의 확대는 수능부담을 줄여주는 대신 내신, 스펙, 논술을 모두 잘해야 함을 의미한다. 고교 3년간 잠시도 한눈팔지 말고 준비하든가 아니면 포기하든가 하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지나친 것일까. 전국고사인 수능을 통해 선발하는 정시는 그래도 학생들에게 잠시나마 곁눈질을 허용한다. 1, 2학년 때 운동도 하고, 영화나 공연도 보고,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다가 3학년 때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대학에 간다는 생각은 이제 꿈 꿔서도 안 되는가.
교육열이 뜨거운 대한민국에서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수능일’을 전후로 각자의 입장이 아니라 힘들게 공부한 학생들의 입장에서 진정으로 옳은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열심히 공부한 수험생들이 정책 앞에서 좌절하는 일이 없도록 일관성과 공정성이 확보된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선이 리포터 sunnyyee@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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