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스물일곱, 짧고 불행했던 삶을 살다간 여인. 고통과 슬픔을 시로 달래며 섬세한 필치로 노래한 시인. 호는 난설헌(蘭雪軒). 자는 경번(景樊). 이름은 초희(楚姬).
‘난설헌’은 16세기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삶에 대해 쓴 책이다.
소설 속에서 허난설헌은 단지 빼어난 재능을 가진 시인으로 박제된 채 머물지 않는다. 그녀의 뛰어난 시편들 뒤로 드리워졌던 삶의 질곡이 작품 안에 오롯이 박혀 있다. 그녀의 빛나는 시들은 한없이 고단한 삶의 고통을 디뎌가는 과정 속에서 멍울져 나온 것임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결혼 이전의 초희와 결혼 이후의 난설헌. 그 선명한 대비는 이 작품에서 단연 이채로운 대목이다. 결혼 이전 딸도 아들처럼, 아니 아들보다 더 귀한 존재로 존중해주었던 극히 예외적인 집안에서 성장해 마음껏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하던 초희의 삶은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엄정한 시대와 현실 질서에 갇혀 급전직하한다.
뛰어난 문리(文理)와 천재적인 시재(詩才)는 불온시되고 금기시되고 만다. 아니, 오히려 시대를 넘어서는 재능은 난설헌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장막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삶이 고단할수록 고통러울수록 그녀의 시는 더욱 깊어지고 처연해진다. 급기야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작품이 되어 한 편 한 편 피어난다.
‘난설헌’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허난설헌의 일대기를 중핵으로 남근중심적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한편, 위대한 문학의 발생과정을 심도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소설에는 그렇게 스러져간 여인의 가슴 시린 삶과 눈물이 그대로 배어있다. 재색을 겸비한 며느리에 대한 미움을 떨쳐낼 수 없는 시어머니의 날선 감정도, 아내를 볼 때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낄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아내를 아끼면서도 밀쳐내어 버리는 양가감정에 시달리는 남편 김성립의 괴로움도, 시를 나누고 마음을 나눈 여인이지만 신분의 차이라는 벽을 넘어설 수 없기에 먼발치서 아파하는 사내 최순치의 안타까운 마음도 스며들어 있다. 그 저마다의 모습들이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지금 여기 우리에게로 다가온다.
교보문고 천안점
북마스터 여현희
558-3501~5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