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문제가 있는 사람의 가족들은 그의 인생 역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가족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알코올 문제가 있는 본인은 가족들의 반응 유형을 빤히 파악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가족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든 거기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어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들은 자신의 역할이 얼마나 비생산적인 결과를 불러오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 단지 눈앞에 벌어진 사건과 문제에 압도되어 어떻게든 이를 빨리 해결하려는 데에만 급급하다. 가족들의 역할이 미래의 음주 행동에까지 미칠 영향이라든가, 가족들의 행동에 대한 그의 감정적 영향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역할이 바람직한가? 역설적이게도 그 사람의 술 문제를 고치려 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고치려고 하면 할수록 그의 병태적 삶에 말려들어 이를 더욱 조장하고 악화시키는 데에 기여할 뿐이다.
가족은 의사가 아닐뿐더러, 그의 배우자나 부모 이전에 먼저 한 인간이다. 인간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에서 너무나 힘들어 하는 가족이라면, 우선 자신을 위한 일을 먼저 하여야 한다. 알코올 문제를 가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자신과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술 끊는 일은 그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말이 자신의 처지와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야속해 하는 보호자들이 많다. 그러나 가족 모임에 참여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보내 생각이 깊어지면, 이 말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그래야만 그 사람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
알코올 문제가 있는 사람을 대신하여 술과 싸워 이길 수는 없다. 외상 술값을 갚아주고, 거짓말로 직장을 지켜주고, 훌륭한 제수 준비로 집안 체면을 세워주고, 대신 돈벌어온다고 단주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뒤로 물러나 있다가, 그가 준비가 되어 도움을 요청할 때에 돕는 것이다.
회복의 관건은 공고한 가족 지지 체계다. 해결과 지지는 다르다. 안정적인 지지 구조를 잘 유지시키려면 보호자가 먼저 정서적으로 충분히 강인해야 하고 그러자면 끝까지 자신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자기를 잃고서도 남을 붙들려고 하면 함께 무너질 뿐이다. 자신도 추스르지도 못하는데 누구를 붙잡겠다는 것인가.
신 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무료 상담: 강원알코올상담센터 748-5119 ww.alj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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