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하는 걸로 봐서는 90점 이상 나올 것 같은데 시험만 치면 70점대니... 이해가 안가네요” 공부방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면 듣기에 좋으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닐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가볍게 응수하고 넘길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이의 실력은 90점 정도인데 문제를 읽고 풀어야 하는 시험에서는 읽기가 걸림돌이 되어 성적을 70점으로 끌어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난독증 끼가 있는 아이들은 시험문제를 혼자 풀면 틀리고 엄마가 읽어주면 정답을 딱 맞춘다. 그런 아이의 경우 읽고 시험을 치는 대신 문제를 불러주고 답을 맞추게 한다면 성적이 더 좋게 나오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없다. 읽기 능력이 떨어지면 읽고 나서도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 이해가 잘 안되는데 누군가가 읽어 주는 것을 듣기만할 경우 읽는 과정의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듣는 순간에 문제의 내용이 이해가 간다.
‘옛날에 한 나그네가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쉭, 쉭, 쉬이익.”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구렁이가 꿩을 잡아먹으려고 하였습니다. 나그네는 재빨리 구렁이에게 활을 쏘아 꿩을 구하여 주었습니다. 날이 저물었습니다. 나그네는 외딴집의 헛간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를
이렇게 읽으면 어떻게 될까?
‘옛날에 한 난 그네가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시, 씩, 스익.” 어디서가 이상한 송이가 들려 주위를 살펴봅니다. 구렁이가 궁을 잡아먹습니다. 난 그네는 재빨리 구렁이에게 활을 쪼아 꿍을 구했습니다. 날이 저물었습니다. 나그네는 외갓집의 헛간에서 집을 자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현장에서 필자가 아동이 소리내어 읽는 것을 실제로 기록한 것이다. 읽기가 힘든 아이들은 문장의 단어를 틀리게 읽는 것이 허다하다. 읽기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질 경우 전자의 문장을 후자와 비슷하게 내용이 전혀 연결 안되게 읽고 정도는 덜하더라도 본래의 문장과 동떨어지게 읽는 부분이 생기다보면 읽고서도 문제가 이해가 안되어 다시 읽게 된다. 농악을 농약으로 잘못 읽었다고 하자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유산인 농악’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유산인 농약’으로 읽게 되면 어떻게 될까? 또 ‘다음 중 불꽃 같은 사랑을 주제로 한 책은 어떤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음 중 풀꽃 같은 사랑을 주제로 한 책은 어떤 것인가?’로 잘못 읽으며 로미오와 줄리엣 류의 에로스적 사랑 대신 아가페나 필로스적인 사랑 이야기에 낙점할 것은 뻔한 일이 된다. 이렇게 잘못 읽으면 글의 흐름을 놓칠 뿐만 아니라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안된 상태에서 문제의 핵심을 뚫고 정답을 맞추기란 기대를 안하는 편이 속편하다. 이때 한번 더 읽어 바로 이해가 되면 그래도 다행인 축에 속한다. 서너번 읽어도 의미 파악이 안되면 지문이 긴 문장만 보면 짜증이 나거나 불안해지고 나중에는 머리가 지끈거리고 조바심이 나게 마련이다. 또 시험을 망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는데 이런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시험불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읽기 능력이 떨어지면 문장 속의 단어만 공감을 공간으로, 다음과 같다를 대답과 같다로, 도덕을 도적으로, 그림자를 밟다를 그림을 밟다로 잘못 읽는 것 뿐만 아니라 더듬거리며 읽기도 하고 같은 어구를 3~4번 까지 반복해서 읽는다.
“비탈진 산골짜기에 핀 강아지풀”을 ‘비비비탈진 산산산골짜기에 핀 강강강아지풀’식으로 더듬거리며 읽고 거기다가 읽는 속도까지 떨어지면 정상적인 읽기속도를 기준으로 나온 시험 분량을 다 소화할 수 없어 시험시간이 항상 모자랄 수 밖에 없다. 읽기 능력이 떨어져 아는 것도 틀리다 보면 나름대로 생존방식이 생기는데 지문이 짧은 문제를 먼저 풀고 문장제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요령으로 다행히 시간이 남으면 남겨 놓은 문제를 풀지만 시간이 모자라면 알아도 틀리게 된다. 또 조사를 빼먹거나 다른 것으로 대치하는 것도 다반사이다보니 부사의 어미나 조사의 변화에 따른 문장의 미묘한 뉘앙스를 눈치채지 못하고 기존 양식에서 살짝만 틀어놓은 문제를 여지없이 틀린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아는 문제도 틀리기 때문에 ‘정신을 안 차려서 그렇다’ ‘왜 맨날 실수를 하냐’고 몇 년을 채근해봤자 해결이 나지 않는다. 읽기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신력의 강화로는 변화가 없을 수 밖에 없고 읽기 유창성을 끌어올려야 비로소 해결이 된다.
어느 난독증인 대학생은 IQ도 좋고 공부하려는 의지도 강해 성적이 안 나올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 한만큼 성적이 안나오자 원인을 찾다가 찾다가 마땅한 원인을 찾지 못한 모친이 혹시 ‘조상귀신이 씌여 그런 것 아닌가’해서 천만원 가까이를 들여 굿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예상하셨겠지만 굿을 하고 2~3개월은 심기일전한 덕에 공부가 좀 되는가 싶더니 결과는 도루묵이 되어 다시 그 성적으로 안착, 원하는 대학을 접어야 했다. 혹시, 그 모친의 생각이 ‘난독증’으로 인한 읽기에 문제가 있어 아는 것도 틀려서 올 가능성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원하는 대학에 갔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공부하는 것이 훨씬 덜 힘들고 적어도 아는 것을 틀리는 일은 드문 일이 되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난독증 아동들을 위해 읽고 시험을 보는 대신 듣고 시험을 보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난독증에 대한 인식이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경우 그런 법적인 제도가 갖추어져 아이의 두뇌 특성에 따른 시험방법이 채택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내 아이에게는 사후약방문처럼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시험을 치고 오답노트를 정리하면서 이걸 왜 틀렸냐고 물어보면 그때는 멀쩡하게 다 알고 있어요. 이게 어찌된 일인지…제발 정신 차리고 시험을 보도록 수없이 말을 해도 알고 있는 문제도 시험만 보면 틀려 가지고 와요. 모르는 문제를 틀리는 것 보다 더 속 상합니다.” 엄마의 속상하는 맘도 십분 이해가 가지만 아이도 정신을 차리고 시험을 볼려고 무진 노력을 하는데도 결과는 항상 비슷해 엄마의 폭포같은 잔소리를 들어야 되니 아이로서도 이만저만한 스트레스가 아니다. 아는 문제를 자주 틀리는 경우는 실수를 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몰라서 틀린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에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고질적인 문제이다. 읽기란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는 미국의 연구결과가 10여년 전에 이미 나와 있다. 읽기의 질이 달라지지 않으면 초등학교 때의 그런 양상이 중학교 때와 고등학교 때에도 그대로 승계될 뿐만 아니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글밥이 많아지기 때문에 점점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아이가 시험시간이 모자란다고 하거나 시험을 보면 틀리는데 엄마와 문제풀이 할 때는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 집중력의 문제가 아니고 읽기 능력을 점검해 봐야 할 문제로 인식전환이 필요할 것 같다.
노원HB두뇌학습클리닉 이명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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