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와 함께한 인생 2막의 행복
파티쉐(Patisserie)로 제2의 인생을 펼치고 있는 이숙경(60·판교 운중동)씨.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쌉쌀한 커피와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이 어울리는 완연한 가을이었다.
그녀에게 2000년은 특별한 해였다. 인생에 안주하기 쉬운 49살 나이에 프랑스 르꼬르동블루로 제과 제빵 유학을 감행한 것. 국내에서 케이크의 다양성이 없던 시절, 이 씨의 정직하고 섬세한 손길은 이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새 삶의 동력이 됐다.
평범한 주부에서 40대 후반에 유학길 올라
IMF로 인해 가정 경제가 휘청 이고 인간관계에 상처 받던 어느 날,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서류 한 장 떼 본적이 없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흔히 50이면 여자 인생은 끝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문득 남편한테 의지 안하고 살 수 있는 힘이 있을까, 이제부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됐지요.”
언제나 그랬듯 실타래는 책을 통해 풀렸다. ‘파리에 가면 남대문 민박집이 있다’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읽으며 요리 유학을 결심한 것. 보호본능을 일으킬만한 가냘픈 체구지만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은 없던 성격. 마침 두 아들은 건축과 대학원생과 군인으로 여건도 괜찮았다. “평소에도 요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혼자만의 시간이 갖고 싶었고 요리라면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이니 유학을 가보면 어떨까 싶었죠. 제 자신에 대한 치유이자 남은 인생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나 테스트 하는 심정이었어요.”
꿈은 이루어진다
촉망받던 항공사 직원에서 결혼과 양육으로 일을 접어야 했던 그녀, 아쉬움 속에 사회생활을 항상 꿈꿔왔다고. 실제 불어와 영어 등 꾸준했던 어학공부는 유학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돌발적인 행동이라 하겠지만 저에겐 오랜 생각의 실천인 셈에요. 마음속 불씨가 키워졌다고나 할까.(웃음) 막연한 생각이라도 항상 품고 그려 본다면 어느 순간에는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르꼬르동블루 학생 중 최고령. 더욱이 제과 제빵 분야는 문외한이었기에 초기에는 어려움이 컸다. “연수도 받지 않고 백지상태로 온 사람은 저밖에 없었어요. 기본적인 재료도 구별 못 할 정도였죠. 그곳에서 케잌을 처음 봤을 때…, 맛도 맛있지만 예술적인 기막힘에 뒤통수를 맞은 듯 했어요. ‘이런 거라면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서 스펀지처럼 빠져들었죠.”
귀국 후 그녀는 케이크 레슨으로 자연스럽게 일을 시작했고 주변의 권유와 재촉에 힘입어 ‘쉐무아’란 카페를 열어 현재에 이르렀다.
“강남에서 카페를 운영할 때 몸이 나빠져 갑작스레 문을 닫았어요. 이후 분당으로 이사왔고올 초 이곳에 오픈했는데 전화 한통을 받았죠. ‘10년 전 맛을 잊지 못하고 있는 데 그때 그 쉐무아가 맞냐’는. 8월 무더위에 찾아오시더니 지금까지 강남에서 2~3일에 한번 씩은 들르세요.(웃음)”
쉐무아는 ‘우리집에서’란 의미의 불어. 집에서 먹는 대로 정성을 들이겠다는 의미 그대로 카페 내 제빵실에서 빵을 만들고 소스와 샐러드 등 모든 메뉴는 핸드메이드로 판매한다. 여기에 무염버터와 국산 밀가루 등 모든 식재료는 최상의 것을 쓴다는 원칙. 강남에서 판교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고 이어온 고집이다.
요리와 자연이 주는 치유력에 관심 커
여행과 걷기가 취미인 그녀에게 유럽의 평지는 아기자기한 한국 길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요소. 거기에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믿기에 휴일에는 산길을 걸으며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공들인 케이크에는 치유의 효과가 있어요. 정확성이 생명이라 몰두하지 않으면 제 맛을 내기 어렵거든요. 사고로 아이를 잃은 수강생 한 분이 집중을 통해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걸 보면서 이 같은 힘을 느꼈지요. 자연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시골에 약이 되는 음식을 만드는 집이 있다면 지금도 꼭 찾아가 봐요. 친구들은 “얻어먹을 나이에 또 뭘 하려고 그러느냐”고 하지만 의욕이 있다는 거, 아직도 꿈꾼다는 건 좋은 게 아닐까요?(웃음)”
박신영 리포터 jump104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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