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반죽이 나무 도마 위에 놓였다. 반죽을 잡은 손은 빠른 속도로 반죽 덩어리를 때리고, 접고, 늘리고 꽈배기처럼 빙빙 꼰다. 엿가락처럼 늘어난 반죽을 나무 도마 위에 몇 번을 내리치자 반죽 덩어리에서 국수 가닥이 생긴다. 네 가닥이 여덟 가닥이 되고 다시 열여섯 가닥이 된다. 국수 가닥은 세포분열을 하듯 순식간에 실타래처럼 변한다. 속도와 힘의 싸움. 이것이 수타면이다.
이병철(39)실장은 아침에 출근 하자마자 밀가루 속에 손을 넣어 본다. 밀가루 입자를 섬세하게 느껴보며 그날 반죽할 물을 가늠한다. 습한 날은 물의 양을 조금 더 잡는다. 때문에 사계절 모두 물의 양이 다르다. 수타면은 반죽부터 까다롭다.
그의 나이 열 살 때 부모님은 부도 때문에 4남매를 두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실장의 누나는 1급 지체장애인이었고 막내 누이는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그는 아침마다 바가지를 들고 보리쌀을 얻으러 다녔다. 힘든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사립 중학교에 입학했다. 한 달 뒤에 그는 자퇴서를 냈다. 공납금 3만 7000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공납금 때문에 지독하게 맞았어요. 더는 못 견뎌 자퇴서를 내고 버스비가 없어 두 시간 반을 걸어오는데 어린 나이지만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때부터 이 실장은 거제도의 ‘남성관’이란 중화 요리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양파 껍질을 벗기는 일부터 갈탄으로 화덕을 데우기까지 온갖 일을 다 하며 화교 출신 주방장 밑에서 정통 중국 음식을 배워갔다.
처음 수타면을 배울 때 하루에 반죽한 밀가루 양이 160㎏. 하루 종일 면을 뽑고 나면 몸을 가눌 수조차 없었다. 수시로 코피가 쏟아졌다. 매일 1000 그릇씩 수타면을 뽑았다. 그래도 남들보다 일찍 나와 준비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 실장은 최고가 되고 싶었다.
울진 ‘영덕대게 축제’에 인삼과 대게로 만든 깐풍기를 출품해 장려상을 받았다. 거제도에서 서울까지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식은 천직이었다. 원양어선을 탔던 95년에도 그의 일터는 어선의 주방이었다.
정통성과 개성이 공존하는 음식 만들어야
라스팔마스를 왕복했던 어선의 선원들은 모두 40명. 그들의 세 끼 식사와 세 번의 참을 준비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한정된 재료로 먹성 좋은 바다 사나이들의 여섯 끼를 맛깔나게 준비해야 했다. 이 실장에게 배를 탔던 18개월의 시간은 식재료에 대한 존중과 활용성을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생선 껍질 한 쪽도 낭비할 수 없어 젤라틴을 만들어 활용했다. 참치 하나로 수 백 가지의 요리를 만들었다. 지금 이 실장이 보유한 레시피는 400개가 넘는다.
“정통성 속에서 요리사 각각의 개성이 들어간 음식은 찬사를 받기 마련이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중국 음식처럼 한식도 곧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음식만큼 강력한 외화 벌이 수단이 없습니다.”
이 실장은 ‘수타전문학원’을 여는 게 작은 꿈이다. 초벌 반죽부터 기계에 의존하는 지금의 세태를 걱정스러워한다. 기본기부터 끈기 있게 쌓아 놓아야 험한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치대고 접고 때리는 지루한 반죽의 과정처럼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시키기를 당부한다. 이 실장은 오늘도 밀가루 포대 속으로 손을 넣는다.
미스터왕 태평점(중구 유천동 307-1) 042-320-9999
안시언 리포터 whiwon00@hanmail.net
순식간에 수타면을 뽑아 짜장면을 만든 이병철 실장.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