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이제 운동을 넘어 건강한 삶을 즐기기 위한 생활 레포츠다. 길 위에서 도시인들은 걷기 미학에 푹 빠졌고 걷는 도중에 만나는 풍경과 사람들도 좋다. 때문에 전국각지에 수많은 걷기 코스가 만들어졌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된 둘레길, 올레길이 적지 않다.
우리 지역에도 풍경이 아름다운 걷기 좋은 길이 존재한다. 이번 호 ‘내일이 만난 사람’의 주인공은 광진구 느루길 순례를 이끌고 있는 김용한(55세‧구의2동) 씨다. 그는 2010년부터 광진느루길 추진위원회를 조직해 걷기코스를 기획 구성하고 사람들을 모아 정기적으로 순례를 이끌고 있는 이다.
자연의 길에서 ‘쉼의 미학’ 느껴라
둘레길, 올레길, 그린웨이 등 다양한 이름의 걷기코스가 있는 가운데 ‘느루길’이라는 이름이 생소하지만 참신하면서도 정감어린 기분을 준다. 그래서 김 회장을 만나자마자 느루길의 의미부터 물었다. “한걸음에 몰아쳐서 가지 않고 길게 늦추어 쉬엄쉬엄 가는 길이라는 뜻이에요. 우리가 사는 현실은 스피드, 경쟁의 시대지만 길을 걸으면서 느림의 미학을 느껴봤음 하는 마음이죠. 길 위에서 자기성찰도 할 수 있고 여유를 가질 수 있거든요.” 한 템포 늦게 천천히 가는 삶을 살아가는 김 회장의 평소 가치관을 짐작하게끔 하는 답변이다. 곧바로 느루길을 만들게 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광진구는 어린이대공원과 한강, 그리고 아차산의 원‧강‧산(園江山)이 조화된 천혜의 환경을 지닌 땅이에요. 각기 다른 것을 융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통섭의 흐름에 맞춰 공원, 강, 산으로 나뉘어 단절된 길을 잇고 이야기와 문화 콘텐츠를 불어넣어 외부에 알려보자는 생각이었죠. 사람들이 찾아오면 광진구의 가치도 높아질 것이고 경제를 살찌울 수도 있으니까요.”
광진느루길 순례코스는 자연 그대로의 길이다. 느루길 추진위원회에서 한 일은 여러 차례 답사를 통해 3개 구간으로 나뉘어 구간마다 이름을 붙이고, 로고를 만들어 홍보해 사람을 모아 이끄는 것이 전부. 구간마다 붙인 이름 또한 역시 아기자기하면서 예쁘다. ‘간조롱길’ ‘늘솔길’ ‘물비닐길’이다. 이들 구간을 모두 걷는데 3시간 30분이 족히 걸린다. 이 시간동안 사람들은 풍요로운 소나무와 햇살이 잔잔한 물결에 비치는 한강, 가지런히 정돈된 길을 만나게 된다. 구간별 이름은 이런 뜻을 담았다. 구간마다 만나는 숲속의 무대나 소나무 광장 등 녹색 강의실에서 지식을 나누거나 음악에 취할 수 있는 시간도 있다.
꿈꾸고 실천하는 시민운동가
직접 걷고 있지 않지만 이야기만으로 광진느루길의 매력에 푹 빠져들 무렵, 김 회장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광진느루길이 광진구의 관광 마케팅에는 도움을 주는 것이 분명하지만 개인의 이익을 보장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광진느루길 추진위원회 회원들의 회비와 재능 나눔 형식으로 사무실이 유지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 회장은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전력이 있다. 사회에 나와서는 출판사를 운영했고 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 갖고 사회 변화에 꾸준히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3년부터는 아예 시민운동가로 변신해 시민단체 활동을 해왔다. 고구려연구재단설립 추진위원을 거쳤고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한 책을 내기도 했다. 현재는 ‘복지사회를 위한 4050연대’ 상임대표를 겸하고 있다.
평소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반대해 처음으로 중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했던 인물이다. 이 사건은 2004년 당시 신문 1면을 장식했을 만큼 큰 파장을 일으켰던 문제로 동북아역사재단의 모태인 고구려연구재단 출범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사람들의 생각이 변화된 만큼 시민단체 활동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화를 접목시켜서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주는 방식이 옳다고 봅니다.”
사람이 가면 길이다
지금까지 광진느루길 순례에 동참한 이는 950여명. 온라인 걷기모임이나 지역 온라인 신문, 홍보물 등을 통해 접한 가족이나 회원들이 참여했다. 순례에 초대되는 대학교수나 의사, 역사학자들은 자연강의실에서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강의형식으로 나눠주기도 한다.
매달 떠나는 순례 중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당연지사. 물론 수많은 순례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도 많다. 그 중 한 가지를 들려줬다.
때는 바야흐로 가정의 달 5월. 마음으로 잘 모시면 되겠다는 순수한 마음에 노인대학 어르신을 초대해 순례에 나섰다. 그런데 걷다가 쉬고, 조금 걷다가 쉬기를 반복하더니 그 때마다 김 회장에게 심심하다며 놀아달라고 하소연하기 일쑤. 결국 그날 김 회장은 동요부터 시작해서 노래만 20곡 이상 불러야 했다. 수줍음 많은 그로서는 당혹스러웠지만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기억이 있다. 결국 그날 순례는 중간에 돌아와야 했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김 회장의 계획은 광진느루길을 널리 알리고 광진느루길 재단을 설립해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주도하는 기관으로 위상 정립하는 것. 이를 발판으로 역사책 보내기 운동이나 문화유산해설사 양성교육 등을 하고 싶다. 또한 지역에 있는 건국대와 세종대, 장로회신학대학과도 연계해 ‘광진느루길축제’를 열고 싶은 소망도 있다.
광진느루길 구간 중 ‘아차산 대성암 솔밭기슭’과 ‘광진 리버뷰 8번가’를 가장 아름다운 길로 추천한 김 회장. 그는 ‘사람이 가면 길이다’는 평범한 진리를 품고 지역의 자연이 가진 보물을 알리고 가꿔가는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김소정 리포터 bee4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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