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째 마을 사랑 실천하는 토박이
50여 년을 한동네에서 살았다. 백현동 주민자치위원회 정우삼(53) 위원장은 조상 대대로 백현동에서 터 잡고 살아온 토박이. 16대째 이곳은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다. 판교의 변모 과정을 지켜봐 온 산증인이자 마을지기로 그가 들려주는 고향이야기는 구수하고도 정겨웠다.
조상님과 느티나무 보호 속에 행복했던 유년시절
“기록에 의하면 뒤 고개에 큰 잣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해서 잣나무 백(柏)에 고개 현(峴)자를 붙여 백현이라 지었답니다. 저 어릴 땐 잣나무는 다 없어지고 산자락에 커다란 느티나무 한그루만 있었죠. 그 인근으로 조상님 묘소가 60기쯤 있었어요.”
학교에 가려면 매일 넘던 고개. 변소 갈 때도 손위 누나를 대동해야 할 만큼 겁 많던 그는 초입에 접어들면 벌벌 떨기 일쑤였단다.
“희한한 건 산 뒤쪽의 남의 동네에선 사시나무처럼 떨던 내가 고개만 넘으면 씩씩해졌다는 거예요. 어린나이였는데도 조상들이 지켜준다 생각하니 안 무서웠던 모양입니다.(웃음)”
여름마다 운중동, 판교동 친구들과 어울려 멱 감던 탄천은 홍수가 나면 드럼통과 돼지가 둥둥 떠다니기 일쑤. 눈부신 탄천의 변모가 더러는 실감 나지 않는다.
“참외를 껍질째 먹어도 흙을 주워 먹어도 병 한번 걸린 적이 없었어요. 근데 서울에 가니까 바로 맹장이 터져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사랑방에서 족보를 펴놓고 한자를 배운 덕에 학교가면 선생님은 앉아있고 저보고 다 가르치라고 하던 일도 생각나네요.”
종손이라고 귀히 대접(?)받은 탓에 딱지나 구슬 한번 변변히 만져보지 못했다는 그. 집 옆의 느티나무는 좋은 벗이자 놀이터였다. 그의 유년을 아낌없이 채워주던 나무는 판교 개발과 함께 본래 있던 곳에서 10미터쯤 아래로 옮겨졌다. 이전하면서 가지가 잘리고 6미터정도 올린 지반에 이식되는 등 적응여부가 걱정이었는데 해가 갈수록 좋아지고 있어 다행이라고. 300년 수령의 느티나무는 이제 마을의 보호수 같은 존재다.
“개발기간 동안 다른 곳으로 이전한 주민들한테 상사(喪事)가 많이 생겼어요. 건강했던 60대가 갑자기 돌아가시기도 하고. 다시 입주한 뒤에 토박이 어른들을 모시고 느티나무 고사부터 지냈죠. 다들 미신이라고 하지만 저는 효험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까지 별일 없는 것만 봐도 그렇고요.(웃음)”
‘저 동네 때문에 분당이 발전을 못한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조상님들 때문에 차마 떠날 수가 없었다”는 종손의 정성은 지금도 지극하다. “판교가 개발되면서 어쩔 수 없이 묘소를 이전하게 됐어요. 죄송한 마음에 모든 제사 장은 제가 직접 다 보고 있죠. 과일도 제일 좋은 걸로 고르고 삼색 나물도 빼놓지 않고. 참, 포는 카트 앞쪽에 얹어놔요. 조상님한테 올리는 건데 행여 바닥에 닿으면 안 될 거 같아서요.(웃음)”
주민화합의 구심체 역할 톡톡히 할 터
백현동의 현 세대수는 4042세대. 그중 남은 원주민은 40세대에 불과하다. 그는 이들과 함께 백현동 향우회를 만들고 체육대회를 열었다. 타지로 나간 30여명이 부모님을 모시고 그리운 고향을 찾는다.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은 2010년부터는 마을대청소와 등산대회 등을 실시해 화합의 기회를 제공하고 단독 주택지와 공사가 많은 곳 중심으로 마을 순찰과 방범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신도시는 아파트가 동시에 입주하는 형태라 주민화합의 구심체 역할을 할 인적 구성이 오래 걸리는 편. 원주민 자치위원장인 그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 그는 잘 알고 있다.
“백현동은 삼평동이나 판교동에 비해 원주민 비율이 높은 편이에요. 아는 분들껜 지역 주민들의 화합을 강조하고 신 주민들께는 잊혀져가는 우리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도록 노력해야죠. 아직 공사하는 데가 많고 어수선한 편이라 집 주변 청소로 일과를 시작하고 있어요. 저의 고향 백현동이 살기 좋은 동네, 화합과 융합이 잘 되는 동네가 될 수 있게 기여하고 싶습니다.”
박신영 리포터 jump104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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