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醫를 만나다- 참산부인과 신명철 원장

지역내일 2011-09-19 (수정 2011-09-19 오후 12:55:46)

아기가 울지 않고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 아세요?



조용한 병실, 어두운 조명 아래 산모는 아기를 낳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 옆에서 차분하고 침착하게 산모와 태아를 돕는 산부인과 의료진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가 태어나고 담당의사는 탯줄도 자르지 않은 채 아기를 엄마의 맨 가슴 위에 얹어준다. 뱃속에서만 듣던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아기는 엄마와 눈을 맞춘다. 잠시 후 조심스럽게 탯줄을 자른 아기는 탯줄호흡에서 자연스럽게 폐호흡을 하게 되고, 엄마의 양수처럼 따뜻한 물 속에서 첫 목욕을 한다. 그때 분만실 가득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 엄마 뱃속에서 매일 저녁 아기가 들었던 친근한 아빠 음성의 태교 노래다.
 
‘폭력없는 탄생’ 지향하는 인권분만
2001년 개원 초기부터 인권분만을 시행하고 있는 분당 수내동의 참산부인과 신명철(54) 원장은 “인권분만은 출산의 과정에서 아기에게 폭력적인 환경을 최소화함으로써 태아의 인권을 보호하고 신생아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철학”이라고 소개했다.
“인권분만에 대해 지금은 많이들 알고 계실 거예요. 인권분만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산모와 태아를 배려하는 출산문화’를 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이 2001년부터 쓰이기 시작했는데, 프랑스 르봐이예 박사의 <폭력없는 탄생>이라는 책에서 비롯됐죠. 분만의 한 방법으로 구분하기보다는 분만에 대한 철학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기의 첫 울음을 ‘무사하게 이루어진 탄생’의 신호로, 아기의 기쁨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다. 태어나는 아기는 엄마의 자궁과는 너무 다른 환경으로 인해 산모의 10∼13배가 넘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보고가 있으니 말이다. 암흑과도 같은 자궁 속 아기가 세상에 나온 순간 만나게 되는 강렬한 조명과 날카로운 금속기구들의 소리, 수술용 장갑과 알루미늄의 차가운 감촉은 그 자체로 폭력이며, 고통일 수 밖에 없다.


태어남과 동시에 엄마 손길 느끼게 해줘야
인권분만으로 불리는 르봐이예 분만법은 우선 태아의 시각을 고려해 엄마 자궁 밝기로 조명을 낮춘다. 민감한 태아의 청각을 배려해 분만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소곤소곤 대화하는 것도 특이할만한 점. 신 원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태어남과 동시에 엄마의 손길을 느끼게 해주는 것으로 ‘캥거루 케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캥거루 케어는 엄마와 아기가 서로 피부를 맞대고 아기를 가슴에 감싸 안는 방법입니다. 처음엔 미숙아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쓰였지만 지금은 만삭아들에서도 엄마와의 애착 관계나 모유수유 성공 확률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캥거루 케어는 아기에게 좋을 뿐 아니라 엄마에게도 심리적 안정을 얻게 해준다. 특히 미숙아를 낳은 엄마들의 건강한 아이를 낳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낮아진 모성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효과적이라고. 캥거루케어를 통해 분만 직후 아기와 접촉한 엄마 역시 아기를 잘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분만은 마지막 태교라 불릴 정도로 태아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르봐이예 분만을 통해 산모와 아기가 안정을 느끼면 자연분만 할 확률도 그만큼 높아지죠.”


생명의 탄생 돕는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와 
연세대의대에서 산부인과를 전공한 후 강남차병원과 분당차병원 산부인과를 거쳐 지금의 참산부인과까지 신 원장이 분만장에서 받은 아기만 만 명이 넘는다. 한 생명 한 생명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고, 기억에 남는 환자들도 너무 많단다. 안타깝게 산모와 아이를 잃는 아픔도 있었는가 하면, 엄마와 아기 둘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기로에 서기도 했다.
“난산 끝에 결국 가족들조차 ‘산모를 살려달라, 아기는 포기하겠다’ 했던 적이 있는데, 제가 아기를 포기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산모에게 조금 무리가 가는 걸 감수하고 분만을 진행했어요. 다행히 산모와 아기 모두 무사해 한시름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럴 때 정말 보람이 있죠. 제가 생명의 탄생을 돕고 있다는 그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구요.”
그렇다면 산모들은 그를 어떤 의사로 바라보고 있을까. 
“웃음기를 거두고 나직한 목소리로 얘기할땐 간혹 무뚝뚝하고 성의없어 보인다는 오해를 받기도 해요. 하지만 목소리를 좀 크게 내려고 해도 그게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더라구요. 그래도 저한테서 첫 아이 낳은 엄마가 둘째 때도 또 찾아오는 거 보면 세월을 겪으면서 제 진심이 전해지는 것 같긴 합니다.”
내향적인 성격의 신 원장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바쁜 진료 속에서도 시간 날 때마다 만나 탁구와 여행으로 친목을 다지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그의 딸이 졸업한 이우학교 학부모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이 아이들이 졸업한 이후 지금까지 벌써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병원에서는 매일 새 생명과 만나는 기쁨이, 병원 밖에서는 오랜 벗들과 만나는 즐거움이 있으니 그게 바로 행복이겠죠.”
홍정아 리포터 tojounga@hanmail.net
 
인권분만연구회에서 제시하는 이상적인 분만법 
자연스런 출산을 위해 진통 중에 산모의 운동을 제한하지 않는다. - 편안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분만실을 가급적 집과 같은 환경으로 꾸민다. - 어두운 자궁 안에 있던 아기가 갑자기 밝은 빛에 노출돼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분만 중 아기의 머리가 보이고 의학적으로 위험이 없다고 판단되면 조명을 최대한 줄인다. - 아기를 거꾸로 들거나 엉덩이를 때리지 않는다.- 아기가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안정할 수 있도록 탄생하는 즉시 엄마의 가슴에 엎어준다. - 아기가 자연스럽게 폐호흡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탯줄은 맥동이 멈춘 후에 과격하지 않게 서서히 자른다. - 탯줄을 자른 후 37도의 물에 넣어 아이가 양수로 돌아온 느낌을 갖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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