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원자력의학원
김민석 암예방건강증진센터장/병리과장
전 세계적으로 하루에 25억잔의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커피문화는 고종 황제로부터 비롯되었다.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 위베르의 처형이었던 손탁 여사가 고종 황제께 처음으로 커피를 대접하였다. 덕수궁으로 환궁한 후 고종은 손탁 여사에게 이층 양옥집을 선물했는데 이 집이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 “손탁 호텔”이고, 이 호텔 1층에 있던 “정동구락부”가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전문점이다. 최근 웰빙 붐을 타고 원두커피를 선호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커피전문점 매장 수가 3천개를 넘어 섰고, 올 연말쯤이면 4천개를 넘을 전망이다.
‘커피는 좋지만 프림은 걱정된다’라고 표현한 커피믹스 제조업체의 광고문구가 시정명령을 받았다. 우리나라 국민 한 명당 1년에 220잔 이상의 커피믹스를 마신다고 한다. 커피가 우리의 생활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커피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졌다. 커피에 대한 연구 논문은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2만개 이상 발표되었다. 워낙 많은 연구가 있었고 연구결과 또한 다양하기 때문에 ‘커피는 이렇다’고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비교적 최근 연구 중에 흥미로운 것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의학연구의 기본이 되는 생각은 ‘연구의 대상이 되는 모든 사람이 마치 실험실의 생쥐처럼 체질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엘-소헤미 박사팀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체질에 따라서 커피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고 보고하였다.
사람들 중에는 커피를 잘 마실 수 있는 체질을 가진 사람과 잘 마실 수 없는 체질을 가진 사람이 있다. 잘 마시는 사람은 CYP1A2*1A라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카페인을 빨리 분해한다. 이런 사람이 커피를 마셨을 때에는 건강에 좋은 작용을 한다. 이에 반해서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CYP1A2*1F라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카페인을 매우 천천히 분해한다. 이런 체질의 사람이 커피를 마셨을 때에는 건강에 나쁜 작용을 한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결론이다.
커피를 잘 마시는 체질인지 못 마시는 체질인지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알아 볼 수 있다. 유전자 검사를 해 보면 사람 중에 절반가량은 잘 마시는 체질이고 나머지 절반은 못 마시는 체질이라고 한다. 하지만, 굳이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더라도, 커피 한 잔으로 어느 정도 체질을 감별할 수 있다. 저녁 늦게 커피를 마시고도 잠을 편하게 잘 수 있는 사람은 잘 마시는 체질이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을 잘 자지 못하면 못 마시는 체질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평소에 커피를 잘 드시던 분들(커피를 잘 마시는 체질)에게는 커피가 건강에 좋다는 점이다. 기억력 향상, 간암예방, 심장병예방, 제2형 당뇨병예방, 음주로 인한 간손상 보호 등에 효과가 있다. 하지만 커피를 즐기지 않던 분들(커피를 못 마시는 체질)이 굳이 건강을 위해 억지로 커피를 드실 필요는 없다. 특히 커피를 한두 잔만 마셔도 잠을 들지 못하고 불안한 증상이 나타나거나, 위식도 역류가 있는 경우에는 커피를 피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커피를 잘 마시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루에 여섯 잔을 넘는 것은 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정도가 지나치면 안한 것만 못함)’ 자신의 체질에 따라 적당히 마시는 것이 가장 현명하게 커피를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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