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음식 만드는 게 재미있어요. 동그랑땡도 부치고, 송편도 만들고, 산적도 하고, 나물도 볶아요. 사촌 동서가 많이 도와줘서 힘들지 않아요.”
노로나 줄이아노(36·용곡동)씨의 얼굴에서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결혼과 함께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온 지 6년째. 노로나씨는 벌써 한국 사람이 다 된 듯 했다. 농사짓는 남편과 살고 있어서인지 추석 준비하는 모습이 여느 한국 주부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평소에 먹는 김치찌개 등은 잘 하지만 아직 명절음식은 어려워요. 제사 지내는 것도 복잡하고. 그래도 배우는 재미가 있어서 좋아요.”
착한 시댁 식구들 덕분에 한국 생활이 즐겁다는 노로나씨에게서 명절 스트레스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을수확기가 따로 없는 필리핀에는 한국의 추석과 같은 명절이 없다.
11월에 있는 만성절(All Saint''s Day)이 그나마 가장 유사한 날이다. 이날 필리핀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과 친척을 만나 조상의 묘지에 가서 초를 꽂고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집에 가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놀곤 한다.
노로나씨의 고향 집에서는 이날 ‘칼라마이’라는 떡도 만들고 ‘판싯’이라는 필리핀 잡채도 만들어 먹는다. 돼지고기, 샐러드 등의 음식도 빠지지 않고 상에 올라온다. 노로나씨는 특히 찹쌀에 코코넛 크림, 설탕을 넣고 저어서 만드는 필리핀 떡 ‘칼라마이’를 좋아한다.
‘명절이면 고향 음식도 그립고 친정어머니도 보고 싶지 않냐’는 물음에 노로나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통화를 하기 때문에 괜찮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한국 생활에 만족하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게 남편 정재철씨의 설명이다.
노로나씨는 아는 언니의 소개로 남편 정재철(53)씨를 만났다. 나이가 많아서 친정어머니가 걱정했지만 노로나씨는 남편의 선한 얼굴이 마음에 들어 2주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노로나씨는 한국에 와서 혜진(5), 다은(2) 남매를 낳고 뇌졸중으로 투병중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시어머니는 5년째 병상에 누워 거동을 못하고 계신다.
아직 어린 아이들 돌보랴, 병중의 시어머니 모시랴 하루가 바쁘지만 친구들은 노로나씨가 불평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친구 이리나(러시아·36)씨는 “노로나가 친구들과 놀다가도 시어머니 밥 차려드릴 생각에 계속 시계를 본다”며 “참 열심히 사는 친구”라고 칭찬했다.
남편 정재철씨는 이런 노로나씨가 사랑스럽다.
“시어머니 끼니 잘 챙겨드리고, 목욕 시켜드리고, 아이들 열심히 키우고, 한국 음식도 잘하고…. 더 이상 바랄게 없죠. 제 인생에서 노로나와 결혼한 지금이 제일 행복합니다.”
다문화가정의 공통적인 고민거리인 교육문제만 해결되면 걱정할 게 없다는 노로나씨와 남편의 모습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서다래 리포터 suhdr1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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