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기획 1/ 송편에 담긴 추석 이야기

송편 한 접시엔 추석의 정과 넉넉함이 가득

지역내일 2011-09-05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가 송편이다. "추석에 송편 먹었냐"고 묻는 것은 추석을 잘 보냈냐는 말이기도 하다. 또 "올 추석엔 송편 구경도 못했다"라는 말은 추석을 만족하게 지내지 못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일년내내 온갖 떡이 넘치는 세상이지만 아직도 송편은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이며 정서이다. 올 추석은 너무 일러 추석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 성화다. 이럴 때 일수록 떡이라도 넉넉하게 나누어 먹자. 온 가족이 만들어도 먹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맛있는 떡집에서 사먹어도 그만이다. 송편 한 입에 추석이 성큼 다가온다. 송편에 담긴 추석이야기를 들어보자.




"송편이 없는 추석은 상상 할 수 없어요"


우리 집에서 추석 전날 둥근 달을 보며 차례상에 오를 송편을 정성스레 빚던 것은 벌써 옛일이다. 시어머님의 용단으로 조상에 대한 차례를 성당의 미사로 대치한 이후 송편은 추석 당일에 빚는다. 


아침을 먹고 난 후에 시어머님 시누이 시동생 동서 조카 등 20명이 넘는 가족들이 송편 만들기에 돌입해 각자 역할 분담을 하고 자리를 잡는다. 처음 서너 개 까지는 누가 더 예쁘게 빚나 살피기도 하고, 송편을 예쁘게 만들어야 예쁜 딸 낳는다며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송편다운 송편을 만든다. 하지만 금방 시들해진 식구들은 한 입에 쏙 들어갈 수 있는 크기여야 한다는 원칙만 고수한 채, 각자 자신이 원하는 모양의 송편을 만든다. 뱃속에 콩을 숨긴 눈사람도 만들고, 도넛과 꽈배기 모양의 송편도 만든다. 콩이나 깨가 동시에 들어간 송편도 있고, 다진 밤을 가득 넣어 만든 만두 모양도 있다. 원통형, 공모양, 피자 형태 등 각자 작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송편 빚기가 ''창의적 체험 학습''이 되면서 식구들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 떡을 보며 하하 호호 침이 튀도록 웃고 또 웃는다. 옛날에 골백번도 더 들었던 이야기가 나오고, 요즘 복잡한 세상사도 나눈다.  모처럼 식구들이 모여 시공간을 초월한 이야기가 난무하는 사이에 한쪽에서는 솔향기 폴폴 떡 찌는 냄새가 시장기를 자극한다. 솥 안에 김이 설설 나는 떡을 꺼내면 떡은 솔잎 범벅이다. 그 솔잎을 하나씩 떼어내며 참기름을 바르면 송편은 완성이다. 하지만 급한 마음에 솔잎을 떼어내자마자 참기름을 바를 새도 없이 바로 입으로 들어가는데 그 맛은 정말 꿀맛이다. 아무리 유명한 떡집에서 파는 송편도 이 맛을 따라가지 못하리라. 


어느 해인가 추석 때 집안에 사정이 있어 송편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하루 종일 할 일 없는 식구들은 내리 먹기만 하다가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본 적이 있었다. 식구들은 텔레비전의 내용이 좀 지루하다 싶으면 "아 심심해, 송편이 먹고 싶다"고 투덜댔다. 또 채널이 바뀌는 짧은 순간에도 "다음부턴 무슨 일이 있어도 송편을 만들어요"라며 볼멘소리를 해댔다. 우리 집에선 추석에 송편이 없으면 온 가족이 마음을 못 잡는 모양이다.


어찌 보면 송편 빚기처럼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자 손녀까지 온 가족을 일사불란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은 흔치 않다. 만들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이야기 하면서 정도 나누고, 먹으면서 추석 기분도 만끽하고. 송편은 추석에 온 가족을 한 마음 한 뜻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올 추석에는 송편을 넉넉히 만들어야겠다. 추석에 송편 구경도 못했다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 집에선 송편도 만들어 먹어요"라고 자랑하면서 한 접시 건네고, 또 한 보따리는 냉동시켰다가  송편이 생각날 때쯤에 꺼내 먹어야겠다.


송편이 없는 추석을 보내는 것은 가족 없이 추석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송편이 없는 추석은 정말 상상할 수도 없다.  



엄마표 송편’, 오래오래 맛보고 싶어

추석이 다가오면 동네 떡집들마다 색색의 송편을 만들어 내느라 분주하다. 단호박, 흑미 등의 재료로 색을 낸 앙증맞은 크기의 송편은 보기도 좋고 맛도 좋다. 미리 색깔별로 골고루 사 두었다가 추석날 다시 쪄서 내놓기만 하면 되니, 요즘 주부들에게는 어느 떡집에서 송편을 구입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만 남는 셈이다.
비록 이런 식으로 간편하게 송편을 맛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추석 때 만큼은 ‘엄마표 송편’이 기다려진다. 추석 하루 전날이면 친정엄마는 전이나 나물 등 차례상에 올릴 음식 준비를 서둘러 마친 후 송편을 만드셨다. 이때는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각자의 실력대로 송편을 빚으며 웃음꽃을 피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엄마가 멥쌀가루를 익반죽해서 여러 번 치댄 후 한 덩어리씩 떼어주면 우리는 그것을 꾹꾹 눌러서 뱀처럼 길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다시 알맞은 크기로 떼어 양 손바닥으로 둥글게 만든 후 손바닥 끝으로 꾹 눌러 거기에 팥이나 밤으로 만든 소를 넣고 반달 모양으로 빚었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시집가서 예쁜 딸을 낳는다는 엄마의 말씀에 남동생들은 언니와 나에게 “딸 낳으면 큰일 나겠다”라며 놀리곤 했었다.
엄마가 마술처럼 똑 같은 크기로 빠르고 예쁘게 빚어 둔 송편 옆에 어린 우리들이 만든 울퉁불퉁한 모양의 송편이 쌓이면 엄마는 하나하나 정성껏 쪄주셨다. 찌고 보면 비록 크기도 제각각이고 터진 것도 있었지만 우리는 각자 자신이 만든 송편을 들고 아버지께 자랑을 하러 달려갔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작품들을 일일이 맛보시며 매번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이런 정겨운 추석 풍경은 이제 추억 속에만 남아있다. 그 대신 엄마는 자식들에게 나눠줄 송편을 혼자서 다 만드신다. 맨 먼저 쪄낸 송편을 맛보시던 아버지도 안 계신 집에서. 맞벌이를 하며 바쁘게 살다가 명절 때 찾아오는 며느리들을 행여 힘들게 할까봐 추석 일주일 전부터 조금씩 빚어서 냉동실 가득 송편을 채워두신다. 이렇게 이제 엄마표 송편은 꽁꽁 언 덩어리인 채로 우리들에게 전해진다.
이 송편은 우리가 어렸던 시절 엄마의 화려한 손놀림을 흉내 내며 조몰락조몰락 만들어 그 자리에서 쪄 먹던 그 맛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의 사랑이 가슴 찡하도록 물씬 풍기는 바로 그런 맛이다. 온갖 맛난 것들에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 입맛에는 다소 밋밋한 느낌이겠지만 나에게는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맛이다. 그러니 이제 나도 내 가족을 위해서 헌신하는 엄마가 되었지만 내 엄마가 만들어주신 송편만큼은 아이들도 남편도 모르게 나 혼자서 아껴먹을 수밖에.
올해 추석 역시 엄마는 자식들에게 나눠 줄 송편을 미리 만드실 것이다. 갈수록 점점 기력이 약해지시면서 예전보다 송편의 모양도 투박하고 맛도 덜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엄마의 송편은 엄마가 여전히 우리 곁에 계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자식들에게는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맛이다. 우리 엄마표 송편을 오래오래 맛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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