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이혼 둘러싼 부모 속마음

''강남 부모들'' 이혼한 자식과 함께 하기

지역내일 2011-08-29

"우리 집안에 이혼은 없다"며 자식의 이혼을 집 안의 수치로 여기고 결사반대했던 시절이 있다. 그때는 자식들이 이혼을 원해도 부모가 걸려 부모 살아생전에는 이혼 하지 못한다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변해 이혼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자식의 이혼을 권장하지는 않지만 차라리 이혼하는 것이 낫겠다 싶으면 이혼하게 내버려 둔다. 심지어 다 큰 자식을 어쩌겠냐며 자식의 일에 개입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라도 이혼하고 고생하는 자식을 지켜봐야하는 부모는 심정이 편할 리는 없다. 그들이 갖고 있는, 남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속사정을 한 번 들어보자.
 
 
 
 
"측은하지만 도와 줄 수 없는 형편이에요" 
 
 사위가 주식으로 집을 날리면서 딸과 사위의 갈등은 시작됐고, 급기야 사위에게 여자가 생겨 딸이 이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혼하면서 아이 둘을 양육하는 조건으로 살고 있는 집의 전세금과 매달 양육비로  아주 적은 돈은 받기로 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랑 살려면 턱없이 부족해 앞으로 전업주부로만 살았던 내 딸이 어떻게 살아갈 지 막막하다. 
 
 딸의 이혼 과정을 다 지켜본 남편은 딸의 처지가 너무 딱하고 안쓰러워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딸에게 함께 살면서 살길을 찾아보자고 말하며 외손녀들의 장래도 일부 책임지고 싶어 했다. 이것은 아버지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현실적으로 우리의 형편이  딸네 식구까지 부양할 수준이 아니란 것이 문제다. 
 
 내 딸은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했다. 나도 딸의 팔자를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나 역시 어떻게 해서라도 딸을 번듯하게 살 수 있게 도와 싶다. 하지만 우리의 노후도 생각해야 하고 아직 결혼 시켜야할 아들도 있다. 또 결혼한 아들도 경제적으로 자리 잡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처지다. 만약 이혼한 딸을 데리고 살면 단순히 함께 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딸을 책임져야 할 것 같다. 또 딸의 뒷바라지를 하다보면 아들에게도 보호는커녕 대접도 받지 못할 것만 같다. 그리고 남동생들도 이혼한 누나 때문에 이래저래 손해를 볼 일이 생길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앞으로 무조건 딸을 돕다가는 온 식구가 다 같이 망할 것 같았다. 그래서 혹시 딸이 기댈까봐 냉정하게 이야기를 했다. 너 때문에 다 같이 어려울 수 있으니 부모나 형제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그 말을 들은 딸은 "어째 부모가 남보다도 더 심하냐"고 섭섭해 했다. 그러면서 만약 아들이 이혼했다면 부모로서 이렇게 했겠냐며 울면서 집을 나갔고 한동안 발길을 끊었다. 처음엔 남편도 이혼해 상처 입은 자식에게 그렇게 모질게 할 수 있냐며 내게 몹시 화를 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도 딸의 이혼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며 딸의 처지를 부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자식의 이혼이 집안 망신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식의 이혼이 나의 노후에 직간접적으로 경제적으로나 심정적인 면에서 피해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자식의 이혼으로 내 인생의 마지막이 이상하게 꼬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숨길 수 있으면 평생 감추고 싶어"
 
 인물도 좋고 공부도 잘해 늘 나의 자랑거리였던 막내딸은 사위가 바람을 피워서 결혼 3년 만에 이혼 도장을 찍고 말았다. 딸의 장래를 생각해 한 번만 참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위의 바람기는 도를 지나쳤다.  또 사위나 사돈의 처사를 보니 딸의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딸은 이혼하자마자 두고 온 자식도 잊을 겸, 또 결혼 전에 포기했던 공부도 계속하기 위해 외국으로 떠났다. 딸이 이혼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부모로서 맘고생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주변에는 일체 알리지 않았다. 
 
 딸의 결혼은 주위 사람들에게 늘 화제였다. 사돈집은 이름만 대면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아는 부자였고, 사위도 그만하면 나무랄 데 없어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혼사였다. 딸은 결혼 전부터 시댁에서 대접을 많이 받았고 결혼 후에도 호사스럽게 살았다. 나는 부잣집에 시집간 딸을 자랑스러워했고, 주위에서 부러워하는 것에 으쓱했다.
 
 막상 자랑거리였던 딸이 이혼을 하게 되니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이런 사실이 저절로 알려지면 모를까 내가 일부러 남에게 말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이혼 후에 밖에 나가 도통 딸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자 속도 모르는 사람들은 딸의 근황에 대해 궁금해 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다고 딸이 늘 잘 사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혼한 사실을 밝힐 기회를 놓쳤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이혼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인데 결국은 속이게 된 꼴이 되었다. 
 
 처음엔 딸이 이혼하는 과정이 너무 경황이 없었고 그 다음엔 내 자존심이 상해 말하지 않았다. 핑계 같지만 정말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친구들과 만나면 자연스레 이혼에 관한 화제가 많았다. 그럴 때 마다 난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았고 입장이 무척 난처했다. 심지어 자식이 이혼의 위기에 처해 있는 친구가 어쩌면 좋으냐는 말을 했을 때도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내 동생은 처음부터 주변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이혼한 사실을 말하라고 충고했다. 그런 동생에게 "내가 이혼 한 거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지만 자식일이라 더 말하기 어렵다"며 "너도 네 자식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말라"고 퍼부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자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네 체면 때문에 숨겼다. 어쩌면 내 가까운 친구들은 이혼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워낙 시치미를 떼니 친구들도 나를 위해 모르는 척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제 딸이 이혼 한지 4년이 넘었다. 아직도 자식의 이혼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자식의 이혼이 뭐라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가식적인 태도를 보였고 그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이래저래 자식의 이혼은 부모에게 큰 시련이다.  

 
 
청천벽력(靑天霹靂)에서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언제나 당당하고 자기일 만큼은 똑 부러지게 해서 어려서부터 큰 걱정 없이 키웠던 둘째 딸이 10년 전 어느 날 결혼하겠다고 잘 생긴 한 청년을 데리고 왔다. 최고는 아니어도 웬만한 직장에, 집안도 어지간해서 일단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는 합격점을 주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눠보고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자 사람이 진중하지 못하고 가볍게 느껴지면서 신뢰가 가지 않았다. 내심 못마땅했지만 ''내 자식은 뭐 그리 잘났나''하는 겸손한 마음도 들었고 그때까지 딸을 믿고 키울 수 있었던 만큼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그런데 빗나가길 바랐던 불길한 예감은 2년 후 이혼이라는 청천벽력으로 찾아왔다. 요즘 애들이 툭하면 이혼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내 딸이 거기에 포함될 수 있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던 터라 충격이 컸다. 처음엔 "결혼생활이 다 거기서 거기다. 웬만하면 참고 살아라. 네가 좋아서 선택했잖니"하며 어르고 달래봤지만 딸의 생각은 확고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딸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친척이나 이웃 등 은근히 주위의 이목도 신경이 쓰였다. 구설수에 오를 것을 생각하니 어떡하든 이혼만은 막고 싶었다. 
하지만 자존심 강했던 딸아이가 그동안 함구했던 2년간의 결혼생활을 털어 놓는 순간 더 이상 만류할 수 없었다. 결혼 후 6개월 만에 사위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고, 사업을 한답시고 친구들과 어울려 한탕주의와 주색잡기에 빠져 흥청망청 지내며 딸의 수입은 물론 부모, 형제의 돈까지 끌어다 쓰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혼을 허락했다. 합의가 되지 않아 재판과정을 거치며 딸이 야위어가는 모습을 보니 정말 마음이 아팠다. 언제나 칭찬만 받고 컸던 딸이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아픔은 더욱 커졌고 견디기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다.
시간이 약이라고 이혼 후 반년 정도 지나자 딸과 나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딸이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지속했던 것도 시련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바쁘게 생활하면서 예전의 활기 찬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5년 전 딸은 재혼하겠다고 한 청년을 데리고 왔다.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참 성실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이혼한 딸이었기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염치없지만 이것저것 꼼꼼히 물어보는 데도 불쾌한 내색 없이 예의를 다해 대답하는 청년의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청년이 초혼인데다가 딸보다 세 살이나 어려 걱정은 되었지만 결혼을 허락했다. 둘은 지금 네 살 된 손자를 키우며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처음에 내키지 않아했던 사돈댁에서도 아이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자 딸아이를 살갑게 대해준다. 전화위복이 된 딸의 삶에 지금도 늘 감사하며 살아간다. 


아들과 손자의 행복 사이

일찍 장가를 갔던 아들은 덜컥 아이 하나만 낳은 채 이혼을 했다. 어려서부터 엄마를 실망시켜 본 적이 없는 아들이었다. 언제나 우등생이었고, 언제나 자랑거리였기에 이혼 결정도 믿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에게 여자가 생겼다. 이혼이 먼저였는지 아들이 여자를 알게 된 것이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둘의 재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유일한 문제는 하나 있는 손자. 초혼이었던 새 며느리에게 아이는 부담스러운 존재였고 나 역시 아들의 신혼을 위해 손자는 잠시 떨어져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손자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던 터라 전직 교사 출신이었던 내 밑에서 자라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는 잘 자라주었다. 아들을 닮아 영특했고,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깨우치는 자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부터 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매일 하던 아빠와의 통화를 피했고, 학부모 모임에 할머니가 나오는 것을 꺼려했다. 여기저기서 우리 손자에게 맞았다는 민원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상담을 요청해왔다. 아이가 친구들과 다른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되었는지 학교생활을 힘들어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
솔직히 사내아이가 친구들과 맞고 때리며 자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어 무시했다. 요즘의 젊은 엄마들은 아이가 종이에 손가락만 베어도 호들갑을 떨어대니 맞고 오는 건 대형사고 수준이었겠다 싶어 이해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증상이 심해졌다. 이유 없이 지나가는 아이를 때리기도 하고, 여자 아이의 가슴을 발로 차는 경우도 생겼다. 저러다 말겠지 하던 내 가슴에도 스멀스멀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결국 아이에게 아빠와 엄마를 찾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주말이나 방학이면 아이를 아빠 엄마 집에 보냈다. 마침 동생도 태어난 때라 귀여운 아기 재롱에 오순도순 잘 지내겠다 싶었다. 그런데 손자는 조금도 나아지질 않았다. 오히려 아빠를 만나고 오면 더 신경질을 부리는 것 같았다. 학교 행사에 새엄마가 나타난 날은 히스테릭한 증상까지 보였다.
어디에선가 실타래가 단단히 엉켜버린 느낌이었다. 큰 손자만 빼면 아들과 새 며느리는 아주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손자는 외로워졌다. 새 엄마와 동생에게 아빠를 빼앗겼다고 느끼는지 할미도, 친구도, 세상도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는 말수가 적어지고, 웃는 일이 적어졌다. 어쩌다 입을 열면 신경질을 내고 화내기 일쑤였다. 다행히 성적은 우수했지만 선생님들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았다.
아빠와 있어도 할머니와 있어도 행복하지 않은 손자. 아들의 행복을 위해 내가 맡았는데 잘못한 일이었나 고민이 되었다. 잘 기를 자신이 있었는데 아들 기를 때와 세상이 너무 달라진 건가 조바심도 났다. 어떻게 하면 손자가 행복해 질 수 있는지 답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저 손자가 새 엄마와 동생을 받아들이고 마음속에 평화를 키울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



이혼도 결혼처럼 즐겁게 할 수 없나

딸아이가 이혼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이런 일이 내 인생에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사위가 원칙적이고 고집스러운 성격이라 좀 힘들게 산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도박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 힘든 일쯤은 여자 누구나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나도 이혼하고 싶다. 나도! ?60평생을 참기만 하고 산 나도 있는데 겨우 10년 안팎을 산 딸이 헤어진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런데 딸은 절박했다. 이혼 후 닥칠 경제적 위험도, 세상의 따가운 시선도, 해일처럼 몰려올 외로움도 감옥 같은 결혼 생활 보다는 나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섣부른 판단은 아니었다. 병원과 상담센터를 전전하며 극복을 위한 노력들도 쉼 없이 해온 터라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이제 더 참으라고 하면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받고도 바로 딸을 찾아가지 못했다. 뭐라고 말을 할까, 어떤 위로를 해야 할까, 난 뭘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며칠이 지나자 마음이 달리 먹어지면서 딸 결정에 응원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참고 살았다고 딸도 참고 살라는 법이 어디 있나. 수명도 길어진다는데 남은 60~70년을 어찌 살 맞대고 살 수 있을까. 잘 생각했다. 힘들겠지만 어렵겠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을 거다. 그런 맘이 생겼다.
대문을 열며 날 반기는 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엄마…" 밤새 걱정과 눈물로 잠을 못 이루었는지 눈은 충혈 되어 있었다. 이러면서 무슨 이혼을 한다고. 난 무슨 소풍을 앞둔 소녀처럼 높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 왔다. 집이 이게 뭐니 우중충하게. 남들이 혼자 살면서 집도 예쁘게 안 해놓는다고 흉본다 흉봐. 내일은 당장 커튼하고 가구 좀 보러 가자"
다음 날부터 우리 모녀의 즐거운 쇼핑이 시작되었다. 가구도 바꾸고, 주방그릇들도 싹 바꾸고, 함께 마사지를 받거나, 화장을 하러 다니고, 옷도 쇼핑했다. 영화도 보고, 멋진 곳에 가서 차도 마시고.
부모의 이혼에 숨죽이고 있던 손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듯 했다. 이혼 직전 매일 부모의 싸우는 소리만 듣고 지내던 아이가 오랜 만에 웃음소리, 먹는 소리, 수다 소리를 듣자 생기를 되찾는 듯 했다.
"안하면 좋은 거지만 하게 되면 해야지 뭐. 기왕 하는 건 제대로 하자. 우울하고 슬프게 하지 말고. 새로운 출발이니 각오도 다지고, 계획도 세우고, 전에 못해본 것도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가지면서. 딸! 힘내. 그리고 자꾸 처지면 엄마 불러. 다른 건 몰라도 너의 엔도르핀은 확실하게 되어줄 테니까 말이야. 우리 딸, 우리 손녀. 이혼했다고 풀죽는 일 없이 잘 살기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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