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문명의 상징인 불과의 접촉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날 것은 자연이며 익힌 것은 문명이라는 대응 관계 즉, 생식(生食)과 화식(火食)으로 구분 된다. 특히 서양(西洋) 요리의 체계는 익힌 것과 날 것의 대립항을 심화해 가고 있으나 한국 요리는 화식과 생식의 대립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융합하거나 매개하는 제3의 체계를 만들어 냈다.
배추를 날 것으로 요리(料理)하면 샐러드가 되고 불에 익히면 스프가 된다. 그러나 그것을 삭혀 먹으면 김치가 된다. 그 맛은 샐러드와 같은 자연의 맛이나 야채스프와 같은 문명의 맛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미각. 그것이 날 것도 익힌 것도 아닌 ‘삭힌 것의 맛’, 바로 ‘발효식’이다. 발효식은 인공적인 것도 아니고 자연이 준 것을 그대로 누리는 삶의 방식도 아니다. 자연과 문명이 조화를 이루어 생성(生成)되는 ‘통합한 맛’이라 할 수 있다.
불의 요리에서 익히고 지질 때의 화력(火力)처럼, 소금과 양념은 야채를 발효시키는 연료라 할 수 있다. 불에서 익히는 것은 폭력적 방법으로 자연을 바꿔놓은 것이지만, 발효식의 익힘은 효모균을 이용한 ‘상생(相生)의 방법’에 의한 변용이다. 그래서 우리 ‘절임음식’은 만든다고 하지 않고 ‘담근다’고 한다.
우리 음식은 사람 손으로 만들지만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은 하늘과 땅의 힘이다. 사람은 담그는 역할만 하고 나머지는 독을 품은 ‘하늘과 땅의 지열’과 ‘바깥의 기후’에게 맡겨진다. 그래서 우리 전통 음식은 천지인(天地人)의 조화인 빨갛고 파랗고 노란 ‘삼태극(三太極)’ 즉, 삼재사상이 낳은 우주의 조화물이며 한국적 정신과 미(美)가 담긴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옛날 부도(婦道)의 중요한 조건으로 ‘손맛깔’ 또는 ‘맛깔손’이라는 어머니의 정신을 오늘날의 기성세대는 보고 자랐으며, 가문마다 미각도 서로 달랐다. 어머니나 아내의 ‘손맛깔’로 결속된 미각으로 그 존재 가치가 한결 돋보였고, 향수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체질화된 어머니의 ‘손맛깔’대로 먹어야 생리(生理)나 정서가 안정된다고 한다. 양복과 양옥집, 아파트에 저항을 못 느끼고, 사고(思考)도 서양의 사고에 곧잘 적응하고 동화(同化)되면서 왜 유독 먹는 것만은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일까?
퐁피두 전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인의 생활 향상을 위한 ‘카르테 드 비이’ 정책을 펼 때 이상적(理想的)인 가정으로 ‘특유한 맛을 내는 요리 한 두 가지를 가진 가정’을 얘기했다. 또 미국에서는 견실한 중류 가정의 조건으로 ‘그 가정이 자랑하는 요리를 하나 이상 갖는 것’이 통념화 돼 있다. 한국 사람이 중국 음식을 먹을 때 예외 없이 간장에 찍어 먹는 것도 김치나 젓갈의 삭은 맛처럼 한국적인 맛의 동질성 때문이다.
집집마다 담아내던 장류, 김치가 젊은층 심지어 기성세대로부터 점점 인기를 잃어가고 신선한 재료 대신 가공식품에 식탁을 점령 당해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세계적인 햄버거체인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대량 생산, 규격화, 산업화, 기계화한 음식에 대항해 지역 특성과 수공업적 생산 유통, 전통적인 맛과 문화를 살린 우리 음식과 식생활 양식을 즐겨 볼 여유를 찾았으면 싶다.
효율과 이윤의 극대화를 미덕으로 삼는 산업화의 산물이 ‘패스트푸드(fast food)음식’이다. 적은 비용에 더 많은 쇠고기를 얻기 위해 인공사료를 먹였다가 광우병 파동을 맞고 있는 것이 바로 패스트푸드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다. 속도와 효율을 무시해 버린 전통적이며 자연친화적인 식생활 양식을 되살려야겠다. 우리 음식은 속성 상 ‘슬로푸드(slow food)''가 많다. 된장, 간장만 해도 일단 발효시켜야 하고, 신선한 재료로 필요한 만큼 시간을 들인 ‘진짜음식’이다.
특히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숙성된 우리 음식을 권장하는 것은 사회 질서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요소다. 어머니의 정성과 향수로 다져진 가정의 결속력은 최소한 불량 청소년을 양산하지는 않을 것이다. -숙성된 발효음식 한국적 정신과 미(美)가 담긴 중요한 ‘문화유산’-
촬영협조 토속음식전문점 산에들(054-456-9292)
글 에스코드스쿨 조헌구 원장(054-458-8887)
사진 전득렬 팀장 papercup@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