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집안 망신, 요상한 논리

지역내일 2001-11-28
박남 시인의 꽁트칼럼(57)
‘형부한테 미안해서 혼났다.’
언니와 통화를 할 때마다 가슴 한 켠이 아려 옵니다. 뭐든지 못마땅한 일만 생기면 ‘형부’를 팔아 댑니다. 이래서 ‘형부한테 미안’ 저래서 ‘형부 얼굴보기 민망’ 요래서 ‘집안망신’ 하면서 화를 냅니다. 언니의 세계에서는 형부가 대통령입니다. 그러니 대통령의 비위를 거스르면 안 된다고 철떡 같이 여기고 있는 모양입니다.
내가 어찌 사는지, 어린 조카가 잘 크는지, 학교는 잘 다니는지 아랑곳없고 오로지 자기 가족 일에만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언니와 나는 18년 차이가 납니다. 언니가 결혼할 때 내 나이 겨우 10살이었답니다. 자매간이라고 하기보다 모녀간으로 보입니다. 자매간의 정이 채 생기기도 전에 언니의 결혼으로 헤어졌으니 무슨 정이 새록새록 하겠어요.
“정말 형부한테 더 이상 할말이 없더라. 나는 일가친척도 없냐? 내참 더러워서. 그래, 너는 방구석에서 뭘 하느라고 안 왔냐? 어디, 입이 있으면 말해봐라?”
재작년에 남편이 실직을 당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내 사정을 모르는 언니는 고래고래 소릴 질렀습니다. 어떻게 친정 쪽에서 아무도 안 왔냐는 거지요. 형부 생일에 아무도 안 올 수 있냐면서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반 울음 섞인 소리로 악을 쓰더군요.
“그랬겠네, 어떻게 한 명도……” 겨우 말을 이으며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요. 정말 생각하면 눈물나는 기억이었습니다. 조카 녀석 졸업식에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어 못 갔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 허덕이다 보니 알면서도 못 갔지요.
“더러운 년 같으니…. 니가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 형부가 ‘처가 것’들 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 이, 무슨 집안망신이냐? 너라도 와야 하는 거 아니야?” 언니는 쌓였던 감정이 폭발하는 모양입니다. 내가 사정을 말하려고 하자 ‘됐다! 끊어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내던졌던 일입니다. 언제나 만만한 내게 화를 쏟아 냅니다.
하루는 하릴없이 지나간 내 사진첩을 보다가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 동안 수 많은 입학, 졸업식에 언제나 쓸쓸한 표정을 한 내 얼굴이 뎅그마니 있더군요. 어디 그뿐입니까. 내 개인적인 행사는 물론이고, 우리 식구들의 행사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언니가 언제나 당당하게 큰 소릴 칩니다.
매사 언니는 자기만 챙기고 자기만 쳐다보라고 앙앙댑니다. 그간 언니의 부름에 가지 않은 건 아닙니다. 가면 또 호통이 기다립니다. ‘어쩐 일이냐? 니가 다 오고?’ 하면서 비아냥댑니다. 참석하면 비꼬고, 못 가면 왜 안 왔다면서 난리를 칩니다. 이래저래 꼬인 심사도 좋고, 삐딱한 심정도 다 좋습니다.
어째서 언니는 자기 일에만 관심을 가지라고 강요를 하는지 생각할수록 가슴 한 켠이 쓰립니다. 내가 뭔 말이라도 하려면 ‘됐다, 끊어라’면서 화만 냅니다. 전화벨이 울리면 언닌가 해서 가슴이 다 뛰니 이 일을 어쩌지요?

<편집자 주=""> 그 동안 삐딱빼딱을 애독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다음 호부터 박남 시인의 ‘여자×여자’ 이야기를 새롭게 선보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따뜻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칼럼으로 탈바꿈합니다. 변함없는 독자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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