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점이면 고3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서울로 대학 가야지’라는 말이다. 큰 소리로 자신감 있게 대답을 하는 아이도 있지만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서울로 가겠다는 아이의 대답과 표정에는 어쩐지 모르게 자신감이 있어 보이고 당당해보이기까지 한다. ‘부모님은 서울로 가는 거 허락하신거야?’, ‘생활은 어떻게 할 건데?’ 여기까지 물으면 아이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당연한 것을 왜 묻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뀐다.
남의 일이 아니다. 주변의 모든 아이들이 성적만 뒷받침이 된다면 모두가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고 말한다. 부모들 역시 ‘여건’만 허락한다면 서울로 대학을 보내겠다고 말한다. 서울의 무엇이, 대체 어떤 마력이 있어 전국의 수험생들을 불러 모으는 걸까. 언제부터 아이들이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는 것을 꿈꿨을까. 하지만 사실, 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속은 탄다. 아이가 하나인 집도 마찬가지이고 둘, 셋이 있는 집은 더 암담하다. 서울로 대학을 간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돈’하고 연결되기 때문이다.
서울로 대학을 보낸 엄마들의 진실대담
홍대 조치원 분교로 큰 딸을 보낸 이은경(가명·48) 씨는 복잡한 심경을 이렇게 전했다. “처음, 대학을 서울로 가겠다고 말할 때 안 된다고 했어야 했다. 물론 미술을 전공하는 아이에게 홍대는 꿈이었고, 나 역시 당연히 홍대를 가야한다고 생각했던 건 사실이다. 합격이 되어 등록금을 준비하며 사실은 겁이 덜컥 났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비싼 사립대 등록금이었고, 한해에 1400만 원 정도의 돈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것을 4년이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단지 합격을 축하하고 좋아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셋인데 둘째인 고2에게는 지방대학의 국립대를 진학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왜 누나는 서울로 보내주고 저는 안 되냐며 난리도 아니다.”
아들이 건국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가 지난달 군대에 간 강선숙(46) 씨는 “예전의 대학이미지가 있어서 남편은 진학을 반대하는 대학이었지만 결국은 내가 우겨서 보냈다. 건국대 갈 정도면 지방의 국립대는 너끈히 들어갈 수 있는데 비싼 등록금에 생활비에 힘에 부치도록 살고 싶지 않다고 반대했던 남편의 말이 아들이 대학 2학년이 되면서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입학 전 누구나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기숙사는 B학점 이상의 성적유지를 해야 겨우 2∼4인실을 구할 수 있었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장학금 역시 하늘의 별 따기였기 때문이었던 것. “둘째인 딸이 내년이면 대학을 진학해야 해서 아들은 지난 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갔다. 시간을 벌고 들어가는 돈에 대한 융통을 좀 하려고 한 것이지만, 이것도 아들이어서 가능한 것이지 딸만 있는 집이라면 둘 중 하나는 예정에도 없고 기약할 수도 없는 휴학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생활비와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
최근 뉴스에서 처연한 죽음이 보도됐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이 가스중독으로, 또, 피자배달 중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였다. 더구나 이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건실했으며 성적 또한 상위권’이었다.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은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앞서가는 선진국도 아닌데 대학 등록금이 비싼 이유는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방의 아이들이 물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수도권으로 갔을 때 느끼는 절망감은 더 크다. 대학에 진학해서야 아이들은 제법 큰 사고를 쳤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고 아르바이트 현장으로 찾아들게 된다.
여름방학 동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김성준(20·상명대2) 씨는 “장학금도 못 받고 너무 많은 등록금을 매번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도 미안해서 시작한 알바인데, 시급이 4300원 정도여서 사실 얼마 벌지도 못한다”며 “아무래도 2학기를 마치면 군대를 가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알바를 한다고 방학인데도 집에 오지 않은 딸을 둔 신미경(50) 씨는 “사실은 많이 걱정이 된다. 물난리를 겪고 있는 반 지하 방도, 늦은 시간의 귀가도 걱정이 되지만 휴학을 하지 않는 한 달리 해결할 방도가 없다. 이렇게 살아도 달마다 꼬박꼬박 월세와 각종 공과금 등 최소한 70만 원 이상의 생활비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왜 서울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반대로 지역에 남은 아이들은 왜 남아있다는 이유로 상대적인 자괴감을 느껴야 하는 걸까.
좀 더 멀리, 폭넓게 생각해야 스스로 편안해질 수 있어
서울입성을 꿈꾸는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보가 빠르다’ ‘취업을 위해서다’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 ‘새로운 인맥을 만들고 싶다’ ‘독립하고 싶다’를 이유로 말한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묻게 되면 사실은 이 이유가 모두 허상임을 알게 된다. 새로운 인맥 만들기는 어느 대학을 가도 만들어지며 궁극적으로는 부모로부터 벗어나서 대학생활을 좀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취업의 문제는 맞을 수 있지만 현대는 글로벌 시대이다. 취업을 서울에서만 하려 한다면 문제가 있다. 정년도 없고 비정규직이 난무한 상황에서 지역대학들은 세계로 눈을 돌려 인턴십 프로그램과 홀리데이를 운영하며, 지역대학의 한계를 세계로 돌리고 있는 상황이고, 서울권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취업이 더 잘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작가 SEO는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다. 언어가 된다면 세계 어디에도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고, 나 역시 독일로 오기 전, 언어에 전심전력을 다했다”고 충고한다. 더불어 “20대는 꿈을 만들어가는 시기이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면 사실은 대학의 소재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좀 더 도전의식이 필요하고 창조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세상은 내게로 다가와 손을 잡아준다”고 말한다.
서울입성.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는 건 혼자지만 가정경제라는 전체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금호고등학교 정대중 교사는 “신방과를 가려했던 내 아이도 사실은 경희대나 중앙대를 꿈꿨다. 하지만 서울생활은 녹록치 않다. 게다가 교사월급으로 뒷받침할 여력이 없다는 것을 아들에게 솔직히 이야기했고, 현재는 지역의 국립대에 진학했다”며 “사람들은 일선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막무가내로 서울입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사실은 진학상담은 여러 가지로 이루어진다. 그 아이의 경제력, 고교의 생활지표, 성적까지 통합해서 상담을 벌이지만 아이들을 이해시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고백한다. 더불어 굳이 서울을 향하여 가지 않더라도 취업을 할 수 있는 각 직장마다의 지역 쿼터제를 시행하는 길만이 아이들과 가정을 함께 살리는 길이라고 따끔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범현이 리포터 baram8162@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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