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해도 안 돼!” “난 공부 잘 하는 아이가 아니니까...” “난 원래 그래” “왜 내게만 이런 일이...”
많은 학생들이 생각하는 ‘나’이다. 하지만 해서 안 되는 사람은 없고, 처음부터 공부 잘 하는 사람도 없으며, 원래부터 게으르고 부족한 사람도 없다. 또 누구에게나 시련은 있기 마련이다. 이 말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라면 이를 증명해보인 다음 두 학생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길. 중학교 평균성적 45%로 자율고에 진학해 최상위권에 도전하는 전우석군과 많은 환경 변화 속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키운 장은영양이 바로 그 주인공. 이 두 학생은 늘 ‘하면 된다’는 긍정의 힘을 믿었으며, 가족 또한 이를 부정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이들을 감싸 안았다.
목표 세우니 공부 저절로 돼
-배재고 1학년 전우석 군
전군의 중학교 졸업 성적은 45%. 자율고인 배재고에 진학 가능한 50%를 겨우 넘긴 성적이다. 고등학교 한 학기를 보낸 현재 전군은 1등을 꿈꾼다. 도대체 전군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변화의 중심을 들여다봤다.
“주요 과목 외에는 시험 칠 때 공부를 한 기억이 없어요. 심지어는 내일 시험을 치는데 책을 학교에 놔두고 오는 경우도 있었죠. 그렇다고 주요과목을 정말 열심히 한 것 같지도 않아요. 목표나 진로 계획이요? 물론 없었죠.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10~30%를 오락가락하는 정도. 하지만 사회나 윤리, 기술‧가정, 한문 등의 성적은 60점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군은 자신의 중학교 시절을 ‘3無의 시기’였다고 말한다. 목표가 없었고 계획도 없었으며, 공부 또한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2학기 때. 자율고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1학년 때 성적이 워낙 좋지 않아 상의 50%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자율고 지원가능 커트라인을 넘기 위한 공부가 변화의 시작이 됐다.
목표가 생기자 작지만 자신만의 계획을 세워갔고,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 공부도 하게 됐다. 힘들게 상위 45%라는 성적을 거머쥔 전군은 자신의 희망 학교인 배재고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진학 후 전군이 변했다. 우선 수업시간에 충실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수업의 중요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수업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수업이 재미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죠. 수업 시간에만 열심히 집중했는데 공부가 쉬워지기 시작했어요.”
수업시간의 집중은 전군을 자연스럽게 ‘예습하는 학생’으로 만들었다.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계획표도 세우기 시작했다. 주 단위로 계획을 세워 자신이 실행한 계획을 체크해 나가기 시작한 것. 체크된 항목이 많아지면서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도 생겼다. 자투리 시간을 쪼개 공부하는 재미도 알게 됐다.
지난 6월 교내학력평가에서 전군이 얻은 성적은 영어와 수학 전교2등. 처음 받아본 성적이었다.
이제 그에게는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당연히 1등이 목표죠. 공부를 하다 보니 자꾸 욕심이 생겨요. 해 보니까 안 되는 게 없더라구요.”
남들이 말하는 ‘겨우 자율고에 진학할 성적’에서 이제 전교 1등을 꿈꾸는 전군. 전군은 “가족의 한결 같은 믿음이 없었다면 결코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을 것”이라 말한다.
“항상 어머니께서 제게 믿음을 주셨어요. ‘넌 하면 돼’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제게는 가장 소중한 에너지 자원이죠.”
다양한 환경 변화, 나를 더 성장시켰어요
- 한영고 3학년 장은영
은영양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캐나다로 이민, 모범적인 이민생활을 해 나가던 학생이었다. 초등학교(1~8학년) 졸업 후 바로 고등학교(9~12학년)로 진학하는 캐나다 교육과정상 9학년으로 진학한 장양은 고등학교 과정 역시 열심히 자신의 맡은 역할과 공부를 충실히 해나가고 있었다. 갑작스런 일이 터진 것은 그때였다.
“이민에 문제가 생겨 1주일 안에 귀국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제 겨우 이곳 생활에 익숙해졌는데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무엇보다 캐나다보다 훨씬 수준 높고 경쟁도 치열한 우리나라서의 공부가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은영양은 포기하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잘 적응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잘 해 낼 거야’라는 믿음을 갖고 최선을 다했다.
“우리나라에서 계속 살 지 아니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갈지 몰라 두 가지 경우 모두들 대비해야 했어요. 우선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꾸준히 공부하며 검정고시 준비를 했습니다. 한국말 구사도 어색했고 기본 단어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일반 고등학교를 진학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또 캐나다로 다시 갈 경우를 대비, 영어공부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를 9개월. 결국 장양은 캐나다로 다시 갈 수 없게 됐다. 하지만 허투루 보내지 않은 ‘9개월’ 덕분에 장양은 1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반계고(한영고) 2학년 이과로 편입할 수 있었다.
한영고에서 처음 치른 2학년 3월 모의고사. 반에서 10등이라는 성적을 얻었다.
“정말 만족스러운 성적이었어요. 더 못 할 줄 알았거든요. 꾸준히 고1 공부를 꾸준히 하며 고2학습에 대비한 것이 유효했던 것 같아요.”
예상 밖의 성적은 장양을 더 희망적인 미래로 이끌었다. 부족한 언어와 수학, 과학에 더 집중한 결과 2학년 말에는 전교 30등 권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진로에도 변화가 생겼다. 2학년 2학기 때의 C40 청소년 모의회의 참가는 이제까지 생명과학 쪽으로만 국한시켰던 장양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외교 쪽으로 진학,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오랜 고민 끝에 3학년 진학 시 문과로 진로를 바꿨다.
갑작스럽게 진로가 바뀌었지만 장양은 걱정 대신 차분히 공부하는 쪽을 택했다.
“겨울방학을 이용해 언어와 수학, 그리고 사탐 공부를 많이 했어요. 집중적으로 한 책에다 모든 필기를 압축해 놓고 그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공부했습니다. 인터넷 강의와 EBS교재, 그리고 수능 기출문제도 빠뜨리지 않았어요.”
그 결과 지난 4월 모의고사에서 전교 9등까지 성적이 오른 장양.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언수외탐 원점수가 100점 정도 향상됐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나쁜 방향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무엇이든 생각한 대로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저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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