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즐거움은 순간에 사라지지만, 가치 있는 일은 영원히 남습니다
“처음 홀트나 명현학교를 찾아 장애아동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겠다고 했을 때, 사실 부모님들이나 학교 측에서 얼마나 오래 할 수 있겠느냐 별 기대를 안했다고 합니다. 와서 몇 번 선심 쓰듯 하다 흐지부지 형식적으로 끝내는 그런 단체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5개월 쯤 접어들자 이제 제 진정성을 믿어주십니다.”
지난 해 12월 경기고양장애인태권도협회를 설립하고 사회의 약자인 장애인들에게 무료로 태권도를 지도하고 있는 고복실 협회장. 그는 “앞으로 장애인선수들로 구성된 태권도시범단을 만들어 전 세계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고 한다.
봉사는 ‘부메랑’과 같아, 나눈 것보다 더 큰 행복으로 반드시 되돌아옵니다
경기고양장애인태권도협회는 장애인들의 체력증진과 건전한 여가생활을 통해 심신을 수련시켜 우수한 경기자 및 지도자 양성과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를 위해 고 협회장은
정신지체 특수교육기관인 고양시 명현학교와 지난 3월25일 업무협약을 체결했으며, 4월 1일에는 영국 Filton College Mou와 협약식 체결, 6월 16일 홀트학교와 협약식을 가졌다. 이뿐 아니라 정식으로 협약을 체결하진 않았으나 경진학교, 주간복지기관, 기쁨터 등에 무료로 사범을 파견해 1주일에 1~2회 2시간씩 운동을 가르치고 있다. “저 자신도 장애인 태권도 심판교육 자격증과 장애인태권도 3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사범들 모두 체육학과로 유명한 대학 출신으로 다수의 장애인 교육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습니다. 교육의 질 또한 어디 내놓아도 우수하다고 자신합니다.”
협회 출범 이후 6개월 여, 고 협회장의 사비로 협회를 이끌어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터. 왜 굳이 힘든 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수십억이 있다 한들 그 사람이 꼭 행복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또 움켜쥐고 있다고 해도 죽을 때 빈손으로 가는 것은 누구나 똑같습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큰 부자는 아닙니다.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먹고 살만한 정도지요. 사실 사무실 운영이며, 사범들이 움직이는데 매월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갑니다. 앞으로 이 문제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제 사리사욕을 채우면 그 즐거움은 순간에 그치지만, 가치 있는 일은 역사로 남는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단단한 체격의 고 협회장은 겉으로 보기엔 전혀 표가 나지 않지만, 그 자신 지체 2급 장애를 갖고 있다. 그가 서른다섯 살이던 1994년 말, 주교동 자율방범초소에서 자율방범 부대장으로 봉사활동 중 군사훈련용 폭음탄을 처리하다가 왼쪽 손목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장애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어쩌면 운동으로 이겨냈는지도 모른다”는 그는 사고 이전부터 단련해온 태권도에 더 몰입했다. 2007년 국제 클럽 오픈 태권도대회 주먹격파 3위 수상, 국제 클럽 오픈 태권도대회 손날격파 1위 수상, 국제 클럽 오픈 태권도대회 MVP 수상, 2009년 국제 왕중왕 격파대회 손날격파 2위 수상, 춘천오픈 국제 태권도 대회 주먹격파 3위 수상, 2010년 한국 실업 태권도 연맹 최강전 주먹 격파 1위 수상 등 인지도 있는 각종 대회를 휩쓸다시피 했다. “장애인 체육대회에 초청도 받았지만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내가 왜 장애인대회에 가야하는가 마음속으로 애써 더 부정했어요. 사실 수많은 대회에서 비장애인 이상의 실력을 보여 ‘격파왕’으로 인정받기도 했고요.”
그런 그가 장애인을 위한 태권도 봉사에 뜻을 품게 된 계기가 있다. “어느 날 격파시범을 보이고 무대를 내려오는데 휠체어에 앉아있던 뇌성마비 장애우가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하면서 힘겹게 박수를 치는거예요. 알고 보니 당신 참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라는 말이었대요. 그때 가슴이 뭉클했지요. 어쩌면 그때 마음속에 내재되어있던 ‘나누는 삶’에 대한 동경이 구체화되었다고 할까, 어릴 적 제게도 그런 스승님이 계셨거든요. 시장에서 호떡을 팔면서 무료로 태권도를 가르쳐주던...저도 그 때 스승님처럼 장애우들에게 너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희망을 주고 싶었어요.”
장애로 인한 심신의 불편, 태권도 통해 극복할 수 있기를
장애인은 신체적으로 나와 달라 도와주어야 할 사람, 약한 존재라는 편견에서 100% 자유로운가? 솔직히 그렇지 않다. 그런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고 협회장은 “장애인이 태권도를 한다고 하면 아마 대다수 불가능한 얘기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장애인들은 습득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고 또 조금 더딜 뿐입니다.”
그는 스포츠 활동은 오히려 비장애인보다 장애인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운동을 하기 위해선 체육관을 찾아가야 하는데 장애인들에겐 그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태권도가 재활의 목적도 있지만 운동량이 적은 장애아들의 비만예방에도 큰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효과 덕분에 명현학교, 홀트학교의 아이들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볼 때 무엇보다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지난 4월 협회를 방문한 영국 Filton College 국립대학교 케빈하믈린 총장과 부학장 일행에게 지적, 지체, 시각, 농아, 틱, 자폐 등 장애별 태권도 교육법을 전수한 일. 효과적인 태권도 교육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케빈하믈린 총장은 고양시장애인태권도협회가 추천한 장애학생들에 대해 어학연수로 1년에 30명을 받아들이기로 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특히 이번 협약에는 태권도 장애인의 경우에는 인원수 제한과 관계없이 무조건 장학생으로 받아 기숙사비의 절반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어 오는 10월까지 학교에 체육관을 건립해 고양시 태권도 장학생들에게 시설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장애인들이 3년 과정을 마치게 되면 본인들이 원할 경우 법과 규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영주권과 시민권도 받을 수 있도록 상호협조하기로 했다.
“앞으로 장애태권도인의 활동 기회를 확대시켜, 우리나라 태권도가 세계에 알려진 것처럼 장애인 태권도 역시 대한민국 대표 국기임을 알리는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는 고 협회장. 이런 노력들은 혼자만의 힘으론 벅차다. 그가 바라는 것은 장애인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자치단체나 교육 관련 기관의 지원과 관심. 그리고 따뜻한 격려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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