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들-‘해밀아동청소년상담센터’ 박현주 소장

지금 이곳은 즐거운 숨터, ‘라온’으로 들어가는 길!

지역내일 2011-07-14 (수정 2011-07-14 오후 9:43:08)

“아빠가 말을 안 하고 있는 걸 화가 난 것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많아요.” 무엇이 문제일까. 모 개그프로그램처럼 ‘대화가 필요’한 부모자식 사이, 오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그때부터 관계는 수습불가다. 그렇다면 어떤 대화를 해야 한단 말인가. 어느 정도 수준과 깊이를 가져야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내게 박현주 소장이 넌지시 묻는다. ‘대화’와 ‘의사소통’의 차이가 뭔 줄 아느냐고. 청소년을 향한 굳건한 사랑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금 청소년들에겐 통(通)하는 대화가 필요해~
“막힘없는 대화가 의사소통이죠. 대화는 하고 있지만, 서로의 마음이 닫혀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지금 청소년들에겐 그런 의사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정서적인 교감이 얼마나 이뤄졌느냐에 따라 청소년기의 반항은 가벼운 감기몸살처럼 지나간다. 홧김에 ‘집을 나가라’고 했다 치자. 말 끝나기 무섭게 정말 나가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잘못했다고 부모에게 용서를 비는 아이가 있다. 어느 쪽이 햇살 같은 유년기를 보내왔는가는 충분히 짐작이 된다. 정서적인 교류 없이는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상담이 필요한 아이들 대부분은 부모와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부모 이전에 부부관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원가족의 문제에서 비롯되죠.” 그는 TV프로그램처럼 부모가 달라지니까 아이가 달라지는 경우를 현장에서 수도 없이 봐왔다. 성공여부는 특히 아빠의 적극적인 지원에 달렸다. 가부장적인 환경이 만들어낸 엄하고 과묵한 아빠세대가 자녀들에게 체벌자, 말 안하면 화난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가족의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가는 것, ‘행복한 청소년’을 만들기 위한 박 소장의 숙제는 그렇게 10년을 이어져오고 있다.  


우연히 스친 장애 친구와의 인연이 나의 삶을 바꾸다
그 중 절반은 병원에서 아동심리상담사로 보냈다. 자폐아, 발달장애아들이 상담을 거쳐 세상 속에 조심스레 발을 딛기 시작하면서 그 아이들의 청소년기도 보듬고 싶어졌다. 도움 받을 만한 곳도 마땅치 않고,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었던 마음이 ‘해밀아동청소년상담센터’를 만들게 했다. 아이들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고.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좋아했지만, 특히 장애가 있던 아이들에게 막연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교회 초등부 시절 인근 고아원 친구들이 예배를 드리러 왔었는데, 그 중 한 아이가 선생님 말씀도 잘 안 듣고, 옆에서 누군가 항상 거들어줘야 뭘 하더라고요. 왜 그 모습이 강하게 인상에 남았는지... 나중에 알았죠. 그 아이가 청각장애아인 줄.” 어느 날 문득 돌이키게 됐던 그 때 그 순간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고민 끝에 대학원에서 아동심리치료를 전공, 상담자의 길을 선택했다. 특히 놀이치료 쪽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석?박사 과정에선 부모교육도 공부했다. 상담은 끊임없는 수련의 연속. 빡빡한 일정 중에도 아직도 배우고 공부 중이라는 그는 “그래서 가족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털어놨다.


청소년을 위한 쉬어가는 공간, ‘라온숨터’의 탄생
그런 그가 얼마 전 또 일을 냈다. 수원에서는 최초로 심리상담카페 ‘라온숨터’를 오픈했다. 주변의 반대도 많았다. 관리가 잘 되겠느냐부터,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벅찬데, 왜 일을 벌이느냐까지... 그는 조심스레 가슴 아팠던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의 아픈 과거로 상처를 받은 아이가 있었어요. 가출도 밥 먹듯이 하고, 수업일수가 모자라 학교에선 유급이 되고, 음주, 흡연에 절도까지, 상담을 하면서 어느 정도 좋아진다 싶었는데, 아이의 어머님이 치료를 중단했죠. 이미 아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은 거예요.” 그래도 마음 붙일 데가 여기였던지, 아이는 닫혀있던 센터 앞에서 아침까지 내내 쪼그리고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청소년이 갈만한 곳도 없고, 장애를 가진 가족들이 어디 가서 편하게 차 한 잔 마실만한 공간도 없다.
‘라온숨터’는 이들을 위한 공간이자 누구든지 세상에서 잠시 쉬어가는 장소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차와 컵을 선택하고, 간편 심리검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가볍게 책도 보고, 보드게임도 할 수 있다. 카페 이름 그대로 ‘즐거운 숨 쉬는 공간’, ‘즐거운 삶의 시작’이 여기서 비롯된다.   


비온 뒤 맑게 갠 하늘, ‘해밀’을 기다리며~
“저를 걱정해서 지인들은 웬만하면 상담에 제한을 두라고 하죠. 하지만 제 생각은 그렇지 않아요. 아이들의 삶 전체가 바뀔 수도 있는데, 어떻게 저 편하자고 선을 그을 수가 있겠어요.” 다행히도 그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는 상담원들을 만나 박 소장은 요즘 행복하다. 그리고 요즘 그들과 함께 꿈도 꿔본다. 첫 번째는 ‘라온숨터’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활동들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활성화되는 것이다. 상담을 통해 잘 자란 아동, 청소년들이 비슷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또 다른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주고, 일반인들도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며 부모들이 일상의 어려움을 서로 이야기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곳. 이런 다양한 활동이 확장돼 ‘라온숨터’가 발달장애나 학교 부적응 학생들이 보다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 대안학교로 성장하는 것이 두 번째 꿈이다. 하지만 가장 바라는 큰 꿈은 이렇다.
“제가 상담을 안 하는 날이 오는 거죠.”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센터이름이 달래 ‘해밀(비온 뒤 맑게 갠 하늘)’일까. 서로 어깨동무한 채 인생의 비를 거뜬히 맞고 나면 아픔이 씻긴 말간 하늘 위로 가장 눈부신 해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는 오늘도, 내일도, 아니 늘 그런 눈부신 해를 기다리는 해바라기다.


오세중 리포터 sejoong7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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