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해줄 사람하고 결혼 했어야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바람에 불행한 것 같아.”
언젠가 아내가 내게 했던 말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뿌듯함과 미안함이 동시에 일었다. 나를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사실이 새삼 뿌듯함을 일으켰다면, 아내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대목에선 숙연해질 수밖에.
리눅스 운영체제의 고안자인 리누스 토르발즈는 “세상의 모든 가치와 제도, 하물며 물건조차도 3단계의 과정을 거쳐 발전하게 되는데, 그 3단계는 곧 ‘생존-구조화-유희(재미)’”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세상 모든 것은 유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마련이라는 거다. (<리눅스*그냥 재미로>중에서)
예로 든 게 얄궂게도 ‘섹스’다. 애초엔 생존을 위한 것이었지만 점차 사회구조화의 단계로서 결혼제도라는 게 생겨났으며, 현재는 재미를 위한 행위일 경우가 더 많다는 거다.
문학에선 어떨까. 이만교의 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다. 소설은 한마디로 ‘결혼은 욕망의 산물이지만 또 다른 욕망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는 투다. 결국 욕망의 관점에서 보면 결혼은 미친 짓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네 삶을 어찌 욕망의 관점에서만 본단 말인가.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보다 엽기적인 결혼관을 선보인다. 이른바 ‘폴리가미’다. 소설은 일부일처제의 사슬을 거부하는 여성과 사는 마초의 애환을 담고 있다. 멀쩡한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아내, 그 앞에서 낡아빠진 도덕과 보편가치를 역설하며 혹은 발버둥치거나 혹은 신음하며 투정부리고 있는 남편의 초라한 모습은 어쩜 그리도 결혼제도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던지.
진화심리학자 로버트 라이트는 “모든 아내는 남편의 외도를 참아낼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남편들은 아내의 외도를 참지 못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라고 말한다. “대개의 남자들은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부양투자’를 하게 마련이고, 그로 인한 보상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배우자의 일탈을 견뎌내지 못하게 된다”는 거다.(<도덕적 동물(The Moral Animal)>에서)
또한 라이트는 “섹스든 권력이든 어떤 목적에 타성이 생기면 이것은 사실상 중독이 되는 과정으로, 이런 것들을 기분 좋은 것으로 만드는 생물학적 화학약품에 점점 더 의지하게끔 한다”며 섹스와 권력을 동일시하고 있다.
결혼에 대한 남녀 간의 생각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들이다. 남성은 대개 결혼을 ‘권력 혹은 섹스’로 인식하는 반면, 여성은 그것을 ‘생활 혹은 삶’으로 여긴다는 얘기다. 따져보면 남성이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여성이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지 못하는 마초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몇 가지 글들을 일별하면서 새삼 드는 생각은 결혼은 결코 환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실은 끊임없이 개선이 필요하며, 새로운 충전을 요구한다. 이제라도 내 아내의 헛헛한 마음을 달래줘야겠다. 아내의 선택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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