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오전 8시40분 이호초등학교. 10여명의 엄마가 학교 도서관에 모였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그림동화책 읽어주는 날. 8시45분이 되자 엄마들은 책을 한 권씩 들고 1~2학년 교실로 흩어진다. 엄마들이 동화를 들려주는 시간은 불과 10여분. 하지만 아이들이 눈과 귀를 모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엄마들은 큰 보람을 느낀다.
애들 그림책이 소설보다 어려워
이호초 도서관 명예사서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활동은 올해로 4년째다. 처음에는 도서관내에서 주 2회 점심시간에 책을 읽어주기 시작해, 지난해부터는 매주 수요일 아침 1~2학년 교실로 찾아가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다. 다들 내 아이에게 책을 더 가까이 하게 해주자는 마음으로 책 읽어주기를 시작했지만 활동을 하면서 엄마들은 자신들이 더 발전하고 있음을 느낀다.
“애들에게 책을 읽어 준다는 게 단순하게 ‘읽어주기만’ 하는 게 아니더라구요. 내가 먼저 열심히 읽어보지 않으면 전달이 잘 안돼요. 이야기를 듣고 애들이 질문을 하면 대답해 주면서 ‘애들이 오늘 이 정도는 얻어가는구나’ 하는 마음에 뿌듯한 마음이 들죠.” (한주연 씨)
“화, 목요일날 도서관에서 책 읽어주면서 아이들 앞에 서는 게 편해졌어요. 처음에는 떨리고 두려워서 연습을 많이 했죠. 다른 엄마들이 하는 걸 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아요. 그림책 대신 슬라이드를 만들어서 보여주기도 하고 그러죠. (김금옥 씨)
책 읽어주는 엄마들은 처음엔 그림책이 쉬운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소설보다 애들 그림책이 더 어려워 연구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활동 초기에는 책 내용이나 상황에 대해 설명도 많이 해주고 교훈을 줘야 한다는 강박감도 들었는데 지금은 읽고 나서 어떤 점이 재미있니? 너희가 주인공이 되면 어떻게 할 거 같니? 이런 질문과 애들 대답으로도 만족할 수 있게 됐어요. 책을 읽어주면서 저도 많이 성장하는 거 같아요.” (박미라 씨)
결혼 전 어린이집 교사였던 류미경 씨는 그동안 주부로만 지내다 10년 만에 다시 아이들 앞에 섰다.
“도서관 활동 하면서 내 자신에 변화를 느껴요. 집에 있으면 그냥 퍼져 있을 텐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 엄마들끼리 모이고 각자 연구도 하면서 움직이게 되니까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자신감이 생겨요.”
숨겨둔 재능도 발휘해요
명예사서 활동을 하면서 엄마들은 숨겨두었던 재능도 발휘하고 있다. 전미화씨는 책을 읽어줄 때 교실 뒤쪽에 앉은 아이들에게도 잘 보이도록 아예 그림책 한권을 그래도 옮겨 그려 커다란 책으로 만들어서 읽어준다. 원래책보다 5~6배는 큰 책이다.
“아이들 기억에 좀 더 남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큰 그림책을 한번 만들어보기로 했죠. 그림책을 읽어줄 때는 글을 읽기에 바빴는데 그림을 직접 따라 그리면서보니 글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가 그림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됐죠. 애들 그림책이 단순한 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셋째아이를 임신 중인 강화연 씨는 책을 읽어주면서 ‘깨어있는 느낌’을 가진단다. “동화구연가는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더 재미있어 할지, 다양한 목소리로 연습을 하죠.” 강 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점심시간에 도서관에서 영어동화 읽어주기도 하고 있다. 임신 중이지만 자신이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책 읽어주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
매월 둘째주 월요일에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교장선생님 훈화 대신 명예사서 어머니가 독서 방송을 들려준다. 한때 배우로 활동했던 엄마가 직접 파워포인트 자료도 만들고 자신이 나레이터가 되어 방송하니까 진짜 방송을 틀어주는 걸로 착각하는 아이가 많다. 또 그달 방송에 나간 책은 도서관에서 꾸준히 대출이 된다고 한다.
“5월에 ‘책의날’ 행사를 할 때는 어머니들이 각반 담임선생님의 캐리커처를 넣은 서표를 직접 만들어 전교생에게 나눠줬어요. 반응이 아주 좋았죠. 대단한 건 학교에서 시키는 게 아니라 어머니들이 자발적으로 아이들을 위해 이런 걸 해보고 싶다고 아이디어를 내시는 거예요. 명예사서 어머니들이 하고 싶다는 일은 교장, 교감선생님도 늘 ‘오케이’ 결재를 해주시고 지원하니까 더 열심히 다양하게 활동을 하실 수 있죠.”(김진희 사서)
이호초 명예사서 어머니들은 지난 6월부터 독서토론 동아리도 하나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면서 책에 매료돼, 엄마들도 더 많이 공부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순태 리포터 atasi22@yahoo.co.kr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