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천, 밸런싱 아티스트 변남석씨

지역내일 2011-05-24 (수정 2011-05-24 오전 2:01:47)

자연에서 얻은 돌, 비상(飛上)의 영감을 얻다


 


연초록으로 한껏 물을 머금은 탄천은 5월의 푸름을 전하는 전령사 같다.
마치 수채화 배경처럼 펼쳐진 탄천의 개울가, 징검다리 앞에서 이색적인 작업에 열중인 사람이 있다. 탄천 돌쌓기 예술가 변남석(50)씨다.
쉼 없이 흐르는 개울 물 속에서 크고 작은 돌을 집어 중심을 잡고, 그렇게 작업에 열중인 그를 지켜보고 있자니 세속의 경계를 초월한 듯 고요함마저 느껴진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돌 탑 쌓기는 콜럼버스의 신대륙만큼이나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8년의 시간동안 돌을 쌓으며 ‘밸런싱 아티스트’란 새로운 직업을 만들게 된 그의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우연히 시작한 돌쌓기, 직업을 만들다
“춘천의 비선폭포에 놀러갔는데 너무 더워 물속에 들어가 놀았죠. 바닥에 돌이 있길래 무심코 집어 쌓아봤어요. 해놓고 보니 아름다운 여인상 같더라고요.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사진을 찍었고 뭔가에 홀린 듯 볼 때마다 좋았어요.”
그때부터 그의 인생에 돌이 들어왔다. 돌이 보이면 무조건 주워서 쌓았다. 그것도 모자라 집에 가져와 쌓기 연습에 몰입했다. 크고 작은 제각각의 돌들이 쌓여 언제나 새로운 모양과 형상을 담은 상(像)이 완성되었다.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렸다.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이 뜨거웠다. 그런 피드백은 새로운 재미를 자극해 주었다.
내친김에 성남시청에 허가를 얻어 지정 작업 공간 (이매동 탄천 징검다리 앞)도 마련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신록의 탄천, 수풀이 우거진 탄천, 낙엽 속의 탄천과 하얀 설중의 탄천은 모두가 그의 돌탑을 받쳐 주는 근사한 배경이 되어주었다.
이쯤 되자 탄천을 오가는 사람들도 그가 쌓아놓은 진귀한 돌탑을 보며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연인들의 약속장소가 되었고 운동하는 사람들의 반환점이 돼가며 탄천의 또 다른 명물이 되었다.
탄천에 널려있던 이름 없는 돌들이 그의 손을 거쳐 멋스런 이름을 갖춘 작품과 사진으로 재탄생 된 것.


돌을 쌓으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아티스트로
하지만 우연처럼 번득인 영감만으로 돌이 쉽게 쌓아질리 없었을 터.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될 때까지 하면서 ‘백번연습’이란 별칭까지 얻을 만큼 무서운 집념의 시간도 필요했다. 탄천 외에도 백운대 정상, 을왕리 바닷가, 남한산성 등 영토(?)를 확장해가며 돌을 쌓고 또 쌓았다.
“이 작업을 하기 전에는 실내 스키장을 운영했어요. 그러다가 우연찮게 돌쌓기 아티스트란 나만의 영역을 찾은 거죠. 제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인생 후반 답을 찾았고 그래서 운이 좋은 사람 중 하나죠.”
워낙 타고난 스포츠맨이었던 그는 이동 중 중심잡기 같은 운동도 많이 해왔다.
인라인, 제트스키, 자전거 등 제대로 중심을 잡으려면 상당한 수준은 필수, 고정된 장소에서 중심잡기인 돌탑은 어찌 보면 준비된 그에게 제대로 어울리는 옷이었다. 
이쯤에서 돌 쌓기의 원리는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결국은 중력을 이용한 중심잡기예요. 4년 전 분당 정자초에서 방과후 중심잡기 클래스를 운영했는데 산만한 아이들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뿌듯했어요. 나중엔 돌 뿐 아니라 계란을 깨지 않고 모서리로 세워보기도 했죠.”
중력과 자기 확신, 하나를 놓고 밸런스를 잡아 또다시 올리고 작은 돌 위에 큰 돌을 세우는 입체적인 힘의 분산. 8년을 해왔지만 여전히 전율이 느껴지는 성취감을 준단다.
“뻔히 보면서도 본드로 붙인 것 아니냐, 사진보고는 포토샵 아니냐고 묻는 분들도 많으세요. 그런데 저는 그런 재미난 반향들이 즐거워요.”


인생후반 답을 찾은 행복한 사나이
나이 들어 남이 안하는 내 것을 찾아서 기쁘다는 그.  지금은 지자체 행사나 돌쌓기 테마공원 조성, 사진 전시회, 책 준비로 연일 바쁘게 보내고 있다. 덕분에 방송 출연도 수차례, 동네에선 이미 인기스타의 반열에 올라와 있다.
“스타킹에 출연해 냉장고와 자동차를 세워 봤어요. 돌쌓기의 기본 원리도 결국은 중심 잡기거든요. 그런데 타 방송에서는 다른 요구를 하는 거예요. 주전자를 세워봐라, 정수기를 세워봐라 뭐 그런 식이죠. 방송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에 집중하는 거고. 저한텐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어요.”
돌을 쌓다가 냉장고도 쌓을 뻔한 웃지 못 할 에피소드 덕분에 일본에서도 촬영을 왔고 돌쌓기 장면을 수차례 찍어 탄천을 널리 알리는데도 일조 했다며 자부하는 그.
현재 모 케이블 재능 경연대회에 출전, 수많은 참가자 중 본선진출에 성공했다며 낭보를 전해준다.
“작업을 하고 재미난 사진이 나오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죠. 제 페이스북에는 펜들도 엄청 많답니다.”
돌 쌓기 아티스트로 기업체 연수도 하고 퍼포먼스를 하면서 강연도 나가고 싶다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히는 그.
돌을 쌓으며 희망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그는, 인생 2막을 유쾌하게 열어젖힌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선 오늘도 탄천 하늘을 비상하는 돌을 쌓았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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