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상태가 되거든 이틀을 넘기지 마라. 소생하지 않으면 엄마, 동생 손잡고 산소 호흡기를 떼거라. 절대 생명을 연장하지 마라. 그리고 죽으면 화장해서 고향에 묻어주고 기일에는 제사 대신 가족이 모여 식사나 해라. 여한 없이 살다간다.”
소설가 이문구 선생은 살아생전 자신의 죽음을 이렇게 준비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과학기술도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다. 그 중 현대의학의 발전은 삶의 질 향상과 평균수명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대의학은 인공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죽음유예현상’을 낳기도 한다.
‘죽음유예현상’이란 노환이든 질병이든 임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의료기술과 약품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 현상은 결과적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다. 나이가 들거나 병이 들면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였던 그 옛날에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오래 살 수 있을까?’를 삶의 중요한 고민거리로 삼았다. 그래서 좀 더 오래살고 싶은 욕망에 불로초라는 것도 나오게 되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자연을 거스르고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다보니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나?’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요즘 노년층의 중요한 고민거리는 ‘품위 있고 아름답게 삶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있어 ‘죽음’은 여전히 부정적이고 어둡고 두려운 존재이기에 미리 죽음에 대비를 해놓지 않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나’에 대한 답이 명쾌할 리가 없다. 특히 죽음이라는 것은 갑자기 찾아오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기에 더더욱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법의학자로 유명한 서울대 이윤성 교수는 “출산, 입학, 시험 등 인생의 각 발달단계에서도 미리 준비를 하고 교육을 하는데, 왜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는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당하는 채로 인생을 마무리하는지 이해가 잘 안된다”고 했다.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준비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혀두는 게 아주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사전의료의향서(事前醫療意向書)다.
사전의료의향서는 죽음을 앞두고 본인 자신의 생명에 대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불가능 할 때를 대비하여, 치료방법에 대해 본인이 직접 작성한 서면진술서를 말한다. 이 사전의료의향서는 본인이 자기 의사에 기초하여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며 대리서명은 허용하지 않는 것이 방침이다.
우리나라 민법상 유언은 의사능력이 있는 17세 이상이면 누구나 단독으로 유언을 할 수 있지만, 사전의료의향서는 원칙적으로 의사능력과 행위능력을 가진 20세 이상 성인만 작성할 수 있다.
사전의료의향서에는 자신의 치료와 방법에 대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심폐소생술을 하거나 인공호흡기사용, 혈액투석 및 수혈 등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연명치료의 시행여부를 밝히는 내용이 있다. 이 의향서의 효력발생 시점은 본인이 뇌사 또는 심각한 질병으로 죽음을 앞두거나, 노환이 심한 경우 등 자신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을 때 적용된다.
또한 사전의료의향서는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는 본인의 의견에 따라 언제든지 내용을 변경하거나 철회 또는 본인이 아예 사전의료의향서의 내용을 완전히 무효화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유효기간도 본인이 정할 수 있으며 결정한 내용을 변경 또는 철회하지 않는 한 효력은 계속적으로 유효하다. 그러나 특정기간, 예를 들면 ‘작성 후 1년까지만 유효하다’고 명시를 했다면 그 기한까지만 유효하며, 의향서의 효력을 지속하려면 지속적으로 기한을 갱신해야 한다.
이 사전의료의향서는 외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10년 전에 시행되었지만 아직 생소한 내용이라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다가 2009년 ‘세브란스 김할머니 사건’이 발생되면서 또다시 그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특히 국회에서도 ‘연명치료 중단 관련법 제정’을 법안으로 상정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 지정 생명윤리정책연구센터에선 ‘사전의료의향서 쓰기 운동’을 문화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올 5월 중순부터 전국 광역시를 중심으로 7개 도시에서 특별세미나(웰다잉 문화와 사전의료의향서 쓰기)를 개최하고 있는데, 울산에서는 6월 1일 오후 2시에 남구 삼산근로자복지회관에서 열린다.
이제, 현재의 나의 삶과 앞으로 닥칠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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