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사 - 걷기에 빠진 치과의사 이정래

호흡법 공부하다 대금 연주자, 걷기연구가 되다

지역내일 2011-06-26 (수정 2011-06-27 오전 8:43:23)

 




인터뷰 전부터 치과의사 이정래(55세)가 ‘괴짜’라는 소문은 진작부터 듣고 있었다. 강동구청 부근에 자리한 치과를 찾았을 때 벽면 한쪽을 꽉 채우고 있는 800여 마리의 나비 표본 액자가 눈길을 끌었다. 이원장이 전국을 돌며 직접 잡은 나비로 만든 액자다.




빡빡한 진료 스케줄을 비집고 잠시 틈을 내 이원장과 자리를 마련했다. 치과의사, 걷기 연구가, 대금 연주자, 곤충 수집가 이 원장을 호칭하는 다양한 직함들이다. “중학교 때 쿵푸 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무술 배우겠다며 너나없이 도장에 등록하는 붐이 일었지요. 나를 지도하던 사범이 무술은 힘이 아니라 기 즉 호흡으로 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의아했죠. 당시 심취했던 무협지에도 똑같은 구절이 나왔어요. 어린 마음에 내 평생의 화두는 ‘호흡법’이라고 다짐했죠.” 이 원장은 어릴 때부터 자신은 ‘꼴통’ 기질이 다분했다며 과거를 추억, 인생스토리를 풀어낸다.




 




절에서 2년 살며 ‘자연’에 눈뜨다




대학입시에서 실패 후 아버지와 불화가 생겼고 집에서 쫓겨났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마땅히 갈 곳이 없자 전국의 사찰을 떠돌았다. 그러다 운 좋게 충남 마곡사의 작은 암자에 거처를 마련했다.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2년이었죠. 사실 대학입시 준비하러 절에 들어갔던 건데 일주일 만에 공부는 작파했어요.” TV는 물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짜기 절에서 그는 ‘자연인’으로 사는 매력에 푹 빠졌다.




“절 마당에서 우연히 풍뎅이를 발견했어요. 인간이 벌레라고 하찮게 여기는 풍뎅이를 꼼꼼히 들여다보니 새로운 게 보였죠. 정확한 대칭구조를 가진 날개를 절묘하게 몸속에 접어 넣는 원리가 기가 막혔죠.” 그때부터 곤충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틈만 나면 산으로 들로 풍뎅이와 나비를 채집하러 다녔다. 동물학자 파브르처럼 곤충의 생태와 특징을 꼼꼼히 연구하며 기록으로 남겼다.




대금과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호흡법을 공부로만 접근하니 재미가 없었어요. 우연히 절에서 대금 연주를 들었는데 바로 이거다 싶었죠. ‘소리’ 때문이 아니라 소리를 만들어 내는 ‘원리’에 주목해 대금을 배웠어요. 대금 연주에 빠져들면서 호흡법의 원리와 이치를 하나하나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대금 불고 곤충 수집하는 치과의사




그 뒤 기계공학과에 진학했으나 3년 만에 그만두었다. “내 인생을 바꿔준 대금과 곤충을 포기할 수 없었죠.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고 다시 입시를 준비해 치대에 들어갔어요.” 20년 넘게 치과의사로 살면서 환자들 사이에서 나름 실력도 인정받고 중국에 분점을 낼 만큼 경영수완도 발휘했다. 게다가 뭔가에 빠지면 끝장을 보는 성격 탓에 대금 연주자로 자리도 굳혔다. 전주대사습대회, 전국 국악경연대회 등지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고 국악 무대에도 여러 차례 섰다.




전문 곤충 채집가로서도 입지를 다져 지금까지 수집한 풍뎅이만 2만 마리가 넘는다. “아프리카나 아마존 등지에서 희귀 곤충을 전문적으로 채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처럼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해 풍뎅이를 모았죠. 돈만 송금했다 떼인 경우도 허다했어요. 곤충 채집 콜렉터로서 노하우를 몽땅 담아낸 결정체가 저기 걸린 풍뎅이 표본 액자입니다.” 그의 연구실 벽면에 걸려있는 액자는 그동안 수집했던 곤충 가운데 희귀종 수백 마리만 엄선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각각의 특장점과 채집 경로에 대한 스토리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척추를 움직이며 걷는 ‘내추럴 워킹’ 고안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집념 덕분에 이 원장은 대금 30년, 곤충채집 20년, 여기에 등산 10년, 요가 10년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쌓았다. 등산에 매료된 뒤에는 산행에 나섰다 하면 10시간을 훌쩍 넘길 만큼 강행군을 했다. 맨발 등산도 즐겼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걷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독창적인 걸음걸이법인 ‘내추럴 워킹’을 고안한 뒤 자신만의 걷기 이론을 정리한 <도마뱀처럼 걸어라>란 책도 펴냈다.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걷는 잘못된 걸음걸이의 후유증이 나이 들어 성인병을 일으킵니다. 인간은 척추동물인데 곧게 세우고 걷는 것은 자연을 거스리는 거죠. 내추럴 워킹은 걸을 때 척추를 움직이도록 합니다.” 그가 알려준 대로 팔과 어깨를 교차시켜 흔들며 걷는 게 어색하다고 말하자 “자꾸만 하다보면 익숙해져요.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릴 때 효험이 있습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내추럴워킹에서 이름을 따서 인간을 ‘호모네이와 (homo naw)''라고 이름 지을 만큼 걷기에 푹 빠져 지내는 이 원장은 현재 개정판 책을 펴내기 위해 집필 중이다.




치과의사로서 다양한 분야 연구자로 자신이 해보고 싶을 걸 두루 해 보며 치열하게 살고 있는 그는 역시 괴짜 르네상스인이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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