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살 시대, 기대감으로 빛나는 시간이 되야죠”
용인구성도서관에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할머니 선생님이 있다.
엄마손 붙잡고 와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뽀로로’ 이야기에 똘망한 눈을 고정시키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홍경숙(67)씨의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다.
동화책 할머니로, 자원봉사 선생님 ‘퐁퐁이’로 불리며 아이들의 재미난 책 친구가 되고 있는 그이를 구성도서관에서 만났다.
30년 피아노 선생님에서 책 할머니로
매주 금요일 오전, 30분간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너무 짧다며 다짜고짜 아쉬움을 나타내는 홍경숙씨. 불과 몇 해 전까진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온 선생님이었다.
당시만 해도 흔하지 않았던 피아노를 전공하고 평탄한 인생을 살아온 그이. 30년 피아노 선생님으로 살아오면서 아이들은 늘 생동감을 주는 존재였단다.
“30년을 아이들과 만나왔는데 4년 전 은퇴하고 집에 있자니 심심하기도 하고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이 헛헛하더라고요. 그런데 결정적으론 그 해에 넘어져 다리가 두 동강이 났어요. 6개월을 꼼짝없이 누워 있었는데 여러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지요. 그리고 내가 낳기만 하면 이웃을 위해 애써보자 마음먹었죠.”
사람은 계기가 있어야 뛰어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홍씨. 건강을 회복한 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마음과 재능을 나누게 됐다.
도서관의 책 할머니도 그렇게 맡게 된 책무. 하지만 피아노만 알았던 홍 씨에게 동화구연은 다소 생소한 영역. 용인시청에서 주관하는 동화구연 수업을 들으며 기본을 익혔더란다.
“동화 구연 수료하고 어린이집의 책 할머니로 간간히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피아노 제자 중 한명이 도서관에 자원 봉사 모집한다는 얘기를 전하더라고요. 무조건 한다고 했지요.”
아이들의 쏙쏙 흡수하는 맑은 눈을 마주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신이 나서 기꺼이 책 할머니가 되었다는 홍씨.
퐁퐁이 할머니 어서 나오세요
피아노를 전공한 그이의 재능을 알고 또 다른 러브콜도 들어왔다. 용인노인복지관 하모니카 동아리에서 반주 봉사를 맡아 달라는 제의.
“하모니카를 연주하는데 반주자가 있으면 금상첨화잖아요.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악기를 배우고 그걸로 봉사도 다니고 하는데 도움을 줘야지요.”
그렇게 매주 월요일이면 하모니카에 어울리는 근사한 반주로 회원들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홍씨. 화요일과 목요일은 손녀 친구들에게 녹슬지 않은 피아노 실력을 보여주며 레슨을 하고 있어 일주일이 빼곡하다.
그럼에도 그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도서관의 퐁퐁이 선생님. 올망졸망 모여 앉은 아이들이 “할머니 나오세요~”를 외치면 가슴이 콩닥콩닥 설레고 기쁘단다.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행복해요. 엄마 뱃속에서 나온 지 불과 1~2년 된 3~4살 아이들이 눈을 맞추고, 노래 따라 부르고, 이야기에 집중하는 걸 보면 마냥 신기하고 매 순간이 감동이에요. 내가 이 나이에도 이렇게 쓸모가 있구나 싶기도 하고.”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자신이 느낀 감동을 얻을 수 있다며 노인들도 지역사회로 나올 것을 당부하는 홍씨. 하지만 아직까지 노인들에겐 봉사 활동범위가 넓지 않음도 꼬집는다.
“특히 고학력 노인들에겐 본인의 재능을 살리거나 나눌 수 있는 좀 더 다양한 자원봉사 영역이 생겼으면 해요. 더러는 홍보 부족으로 많이들 몰라서 참여를 못하는 분들도 있지만요. 다들 시간이 많아서 주체를 못하고 옛날에 비해 활동력과 에너지도 높은 건강한 노인들이 많은데 지역사회에서 적극 활용해야지요.”
나중에 커서(?) 청소년 상담봉사 할래요
또 가족들의 배려도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기본 베이스. 지역사회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어야 한다는 것. 홍씨 역시 자신을 격려해 주는 남편이 있어 활동에 날개를 달았다. 제때 차려주지 못하는 식사도 알아서 챙겨 먹을 만큼 묵묵한 지원자라고.
내친김에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좋고 좀 더 쓸모(?)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 요즘 홍 씨는 새로운 공부에 매진중이다. 아동심리를 공부하고 있는 것.
“우리가 재수(?) 없으면 100살까지 살 수도 있잖아요. 지금부터 30년을 더 산다고 하면 기왕 사는 거 배우고 익혀서 새로운 삶도 살아봐야죠. 아동심리 공부해서 그걸로 취업도 하고 봉사도 하면 좋을 것 같지 않나요? 웃음”
30대에 입던 옷을 아직도 입을 만큼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홍 씨는 30대부터 하루 3~4시간씩 자가며 공부를 해왔던 터라 배움이 낯설지 않단다. 요즘은 봉사로 나눈 시간을 버느라 자가용 대신 버스를 이용하며 짬짬이 열공하고 있다.
70세가 되는 해엔 피아노 독주회를 열어볼까 계획도 세우고 있다는 그이는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 없이 반짝이는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앞으로 공부를 제대로 해서 청소년들을 위한 상담 봉사를 하고 싶어요.”
TV에 미혼모 이야기가 나오면 비난하기 전에 마음이 먼저 아프다는 홍 씨는 남은 삶을 기대감으로 빛나는 시간으로 맞고 있었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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