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란 책으로 처음 만난 한비야. 가난과 병으로 찌든 난민촌 아이들을 가슴으로 품는 그녀의 삶은 많은 울림을 주었다. “봉사하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인생의 좌표를 ‘의사’로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고요.” 동대부속여고 장수진 양은 흉부외과 의사가 꿈이다. 메디컬 드라마의 영향 때문이냐고 넌지시 묻자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다 의대를 꿈꾸죠. 입학 후에는 성형외과나 피부과처럼 돈 많이 버는 과를 선호하지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를 상대로 돌보며 24시간 긴장의 연속인 흉부외과나 신경외과는 찬밥신세죠. ‘봉사’가 제 삶의 화두기 때문에 저는 꼭 흉부외과의사가 될 거에요.” 야무진 답이 돌아왔다.
‘현재를 즐기며 미래를 준비하자’
장양의 좌우명은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 고교시절은 대학을 위해 대학생이 돼서는 취업이 당면과제, 직장인이 된 후에는 승진 걱정. 이렇게 ‘미래의 걱정’ 때문에 현재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당차게 말한다. “현재를 즐기며 미래를 준비하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입시 공부에 치이는 단조로운 고교시절도 다채롭게 즐기려고 애쓴다. 전교부회장을 맡고 있는 장양은 학생회 활동을 하며 생각이 깊어졌다. “1박2일 임원수련회의 모든 프로그램과 진행을 학생회에서 직접 짜요. 레크리에이션, 체육대회 그리고 숙식해결까지 멋진 수련회를 위해 아이들끼리 머리를 맞대죠. 조직 관리하는 방법,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노하우 등을 필드에서 생생히 배울 수 있지요.”
얼마 전에는 서울시교육청에서 각 학교 학생회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캠프에 참가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되었다고.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등 재기발랄한 젊은 강사들이 학교 축제를 기획하는 법부터 실행 노하우를 다채롭게 강의했다. “인근 학교 학생들끼리 조를 짜서 함께 팀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옛날 방식을 답습하지 말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법, 그리고 반대 의견에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노하우 등 ‘리더’의 자질을 폭넓게 연마할 수 있는 인상적인 캠프였어요.” 동대부여고 박재원 교감은 “성적도 뛰어나지만 또래 학생에 비해 리더십이 탁월해요. 뺀질이부터 냉소적인 아이까지 각양각색의 학생들 마음을 움직여 시너지를 낼 줄 알죠”라며 그동안 지켜본 수진양에 대해 귀띔한다.
1학년 때부터 다니고 있는 서울시 영재교육원에서의 다양한 경험도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화학올림피아드 수상자부터 뛰어난 학생들이 많이 와요. 때문에 늘 긴장하게 되고 느슨해지려는 마음도 다잡게 되죠.” 연구 주제를 정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고 토의하며 팀별로 결과물을 발표하는 영재교육원 프로그램 덕분에 실력도 쌓이고 학문하는 자세도 많이 배웠다고 말한다.
‘자만심이 와르르’ 실패 통해 배우다
‘엄친딸’인 장수진양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을 물었다. “중3 여름방학 때 과고 입시 준비를 시작했어요. 대치동 전문학원에 등록했는데 소위 수재 소리 듣던 아이들이 죄다 몰려 있더라고요. 그 아이들이 피터지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많이 받았죠.” 사실 수진양은 벼락치기로 공부해도 늘 전교 10위권 성적을 유지했기 때문에 내심 머리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수재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자만심’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때부터 처음으로 새벽 2시까지 독하게 공부했어요.” 결과는 불합격. “좌절감이 꽤 컸어요. 하지만 그때 절실하게 느꼈어요. 항상 열심히 노력해야 하고 잘될 때 자만하지 않고 잘 안될 때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실패가 약이 된 셈이죠.”
수진양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강철의 연금술사’, ‘포켓몬스터’ 같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만화부터 프로이트 정식분석한 입문서까지 다양하게 섭렵했다. “책 읽을 땐 배경지식까지 꼼꼼히 살피는 편이에요.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를 보며 화학의 재미를 맛보았고 역사 만화을 읽으며 시대 흐름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죠.” 어휘력과 상식, 매끄러운 글솜씨가 독서를 통해 다져진 셈이다.
열혈 엄마를 둔 덕분에 어릴 때부터 피아노,바이올린,플룻,단소,미술,수영,발레,컴퓨터, 중국어까지 다양한 예체능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큰 도움이 되더라구요. 기분이 울적할 땐 피아노를 치거나 수영장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고 와요. 공부만 아는 ‘범생이’는 매력이 없죠. 전 팔방미인 소리를 듣고 싶어요.”
‘흉부외과 의사’는 내 인생의 좌표
욕심 많은 강양은 ‘흉부외과’란 꿈을 향해 다부지게 나아가고 있다. 복지관에서 봉사활동도 꾸준히 하고 틈틈이 원서로 된 의학사전도 펼쳐본다. 외과의사인 아빠가 레지던트 시절에 쓴 수술기록을 찬찬히 읽어보며 궁금한 부분은 집요하게 질문하면서 의사란 직업의 세계를 배워나가고 있다. “제 멘토인 한비야처럼 살고 싶어요. 봉사하는 삶 그리고 용기 있게 인생을 개척하고 싶어요.”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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