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점 여자의 세계 청일점 남자의 세계… 편견에 도전장을 내밀다
바야흐로 남녀의 장벽이 없어지고 있다. ''여자가 어디서'', ''감히 남자가 부엌에…''란 말을 던지던 시대를 넘어 세상이 변하고 있다. 금단의 벽을 넘어 여성 운전기사, 남성 미용사에 이어 취미로 축구를 즐기는 주부까지, 남자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혹은 여자들만 하는 직업으로 여겨졌던 벽들이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다. 홍일점과 청일점이 점점 더 흔해지면서 더 활기차지고 있는 이 때, 직업에서부터 취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금단을 벽을 넘고 있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홍일점 축구 ‘강충신’
남자들만의 전유물인 축구에 감히 도전장을 내민 강충신 주부(39),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이란 생각으로 그녀를 만났다. 결론부터 말하면 ‘너무 좋다. 하기를 잘했다.’ 강 씨는 “내 인생에서 축구를 안했다면 아마 후회했을 것”이라며 “남자들만의 운동이라 여겼는데 너무 재미있다"고 털어놨다.
실제 강 씨가 축구를 하게 된 계기는 아들과 더 친해지기 위해서. 유일한 아들이 아빠랑 축구하러 나가는 것을 너무 좋아하고 아빠하고만 속닥속닥 거리는 것 같아서 소외감을 느꼈던 것. 그러던 차 양천구청에서 여자축구회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망설임도 없이 신청을 했다. “처음에는 아들한테 축구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요즘은 아들이 도리어 물어 본다”며 “주말마다 때론 하루 1~2시간씩 아들과 축구하는 재미에 세월 가는 줄 모르겠다”며 미소 짓는다.
매주 월. 수. 금. 토 오전 10~12시까지 해누리 타운에서 축구 연습을 하는 강 씨는 공을 차러 갈 때마다 남편을 대동해서 나간다. 남편이 축구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아내가 축구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남편 유준식(38)씨, "축구를 배우는 사람들이 대다수 주부다 보니 오히려 남자인 제가 불편한 점이 있지만, 아내의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조금씩 코치를 해주기 때문에 다들 부러워한다"고 전한다.
축구의 매력에 빠진 강 씨는 비가 와서 운동을 하지 못할 때가 제일 아쉽단다. 더불어 축구를 하다 다치거나 힘에 부쳐 운동을 쉬는 엄마들 때문에 안타까울 때도 있다고. “얼마 전 김포와의 대결에서 7:0으로 대승을 해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하지만 황사가 부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광명과 경기를 치렀는데 안타깝게 1:0으로 져서 너무 아쉬웠다”는 강 씨, “축구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팀 운동이다 보니 회원들이 빠질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며 “조금 만 더 힘을 내어 연습에 빠지지 말고 함께 열심히 뛰면 좋겠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축구라는 마술에 걸린 강충신 주부는 축구를 어떻게 표현할까? “운동에 남녀 구분이 없지만, 아무래도 축구가 좀 과격한 운동이다 보니 남자들이 주로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알고 보면 골이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소개한다. 앞으로 힘 닿는 데까지 계속 축구를 하고 싶다는 강충신 주부는 작은 소망이 있다. “외국에는 주부 축구단이 국제교류전도 뛰고 대외적인 활동도 많이 하는데 양천 주부 축구단도 외국 선수들처럼 국제교류전을 열었으면 좋겠고 거기서 멋지게 골을 넣어보고 싶습니다.”
◆ 청일점 미용실 ‘신종호 루키콥’ 신종호 원장
미용실 ‘신종호 루키콥’을 운영하는 청일점 신종호(39,목2동) 원장, 그가 미용을 배우기 시작했던 17년전 ‘미용 배우려거든 호적 파가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지금도 많아졌다고는 하나 특히 동네에서는 흔하지 않은 남자 원장, 그가 미용을 배우기 시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7남매를 키우던 아버지께서 그가 중학교 때 돌아가시자 집안 형편은 어려워졌다. 그렇게 고향인 공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신원장은 고2때 용산으로 이사를 한다. ‘너희 70년부터 73년생들은 경쟁이 치열한 시대로 진로를 정할 때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찾아보라’던 사회 선생님의 말씀이 남자로서 미용을 배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신원장.
지금 신원장이 운영하는 ‘신종호 루키콥’은 항상 문정성시를 이룬다. 하지만 지금의 신원장이 있기까지 쉽지만은 않았다.
“미용을 배우고 3년쯤 되었을 때가 고비였는데, 힘든 그때 좋은 선배님을 만나 위기를 넘기고 이자리에 올수 있었습니다”라는 신원장은 그때의 고마움 때문 이었는지 미용을 배우려는 후배들을 누구보다 세심히 챙기고 열심히 가르침을 준다. 그는 후배들에게 말한다. ‘내 일을 즐기자!’ 그의 모토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박준, 박승철 미용샵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자신의 일을 즐기기 위해 5년 전 목2동의 좀 외진 곳에 ‘신종호 웰빙헤어’를 오픈한다. 자신의 경제력에 맞는 소박한 미용실을 열어, 돈에 연연하지 않고 미용을 즐기며 자신의 신념에 맞게 미용실을 운영했다. 그의 샵은 소개로 찾아오는 손님들이 점점 많아지며 이름이 알려졌다. 하지만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찾기 힘들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손님들에게 미안했던 신원장은 열심히 일해 편한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4년후에 지금의 장소로 넓혀 올 수 있었던 것은 ‘패션 창조의 선두주자’라는 ‘루키콥’의 의미처럼 고객들 개개인의 개성을 살린 맞춤 머리 스타일을 제안해주는 헤어 디자이너로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예약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신종호 루키콥’의 명성은 자신의 일을 즐기는 신원장의 신념과 함께 바쁜 중에도 대학에 진학해 꾸준히 연구한 신원장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세아이의 아빠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후배들에게 진정한 디자이너의 길을 코칭해주는 좋은 멘토이기도 한 신종호 원장은 “첫번째 제 꿈은 앞으로 신종호 루기콥 15점을 내는 것이고, 두 번째는 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를 마친 후 대학에서 후배들을 양성하는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 홍일점 버스기사 손선이 기사
서글서글한 눈매로 승객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손선이(52세)기사는 중부운수 13명 여성기사 중 모범적인 베테랑기사. 지난 97년 중부운수에 입사해 올 10월이면 경력 14년을 맞는다고 하니 직업에 남녀구별이 거의 없어진 것이 근래인 걸 감안해보면 선구자인 셈.
결혼 후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미용기술을 배우고 운전면허증도 따며 차근차근 취업 준비를 했다는데, 8톤 트럭 운전, 보험회사, 꽃가게 등 여러 직업을 경험했던 손선이씨.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 혹시 하는 마음으로 대형면허증을 취득했어요. 그러던 중 거리를 지나는 중부운수 버스를 보는 순간 느낌이 좋았어요” 몇 개 운수 회사 취업 고려중 중부운수에 지원해 현재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단다. 당시 여성버스기사는 미미한 비율이었다고.
아침 첫차가 4시 20분이기 때문에 새벽 3시쯤 일어나 씻고 화장하고 집을 나서는데 잠을 못 자고 힘은 들지만 다양한 승객을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는 손선이기사. “어두운 새벽에 출근하다 보니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나오기도 하고 오전 오후가 헷갈리기도 했어요” 여성기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이어서 즐겁게 일한다는 그녀는 운전을 부드럽게 잘한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기분도 좋고 더욱 책임감과 사명감이 느껴진다.
승객들이 건네는 과일, 음료수는 그 어떤 보약보다도 소중하다는 손선이기사는 승객의 사랑을 받는 만큼 보답하고자 노력한다. “친절하게 인사하는 것은 기본이죠. 터미널 같이 정류장이 긴 곳에선 최대한 승객들이 힘들지 않게 가까운 곳에서 내려드리려 노력해요” 여성 특유의 장점을 살려 승객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서고 싶다고.
현재 중부운수 버스기사 380명중 여성은 13명 정도라는데 다른 운수회사에 비해 여성의 비율이 높은 편. 손선이기사는 1일 2교대로 640번 버스를 운전하고 있다. 버스기사가 되고 싶다는 여성들의 문의를 받을 때면 더욱 뿌듯하다는 그녀는 회사 내 친절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여성주간 행사에서 대표여성버스기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남편과 5년 전 사별한 그녀는 미리 경제적 자립의 힘을 길렀기 때문에 사별 후 충격과 슬픔에서 빨리 벗어나올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두 아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며 중부운수에서 정년이 될 때까지 무사고로 열심히 일하고 싶은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래본다.
송정순 이채연 최수연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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