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인터뷰/ 서초구 ‘아름다운 가족’ 표창 심청지씨

“굴곡진 인생도 가족이 준 선물이죠”

지역내일 2011-06-23

지난 5월, 서초구에서는 가정의 달을 기념해 지역사회에 모범이 되는 사이좋은 고부, 효자, 효부 등에 대한 표창수여식이 거행됐다. 우리의 미풍양속인 경로효친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한 이 행사는 1996년부터 지금까지 14회에 걸쳐 총 704가족에게 ‘아름다운 가족상’을 수여한 바 있다. “몇 번이나 사양했는데 통장님이 간곡히 권유하는 바람에 효부상을 받게 됐다”며 겸손해하는 심청지씨(68)를 만나 그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봤다.


 ‘효부상’ 사양했지만 거듭된 권유 받아들여


심청지씨를 보는 순간, 드라마 ‘전원일기’의 김 회장 부인으로 출연한 탤런트 김혜자씨가 떠오른다. 자그마한 체구에 단아한 표정, 조용조용한 말투 등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극중에서 보여준 김혜자씨의 삶과 도시와 농촌이라는 배경만 다를 뿐 그 외의 것들은 그의 삶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연로한 시할머니가 또다시 정신이 흐려져 밥상위에 올라온 반찬을 놓고 생트집을 잡자 김 회장 부인은 묵묵히 반찬을 다시 만들어온다. 큰아들 용식으로부터 효부상을 받게 됐다는 말을 들은 김 회장 부인은 다음날 직장으로 용식을 찾아가 자신은 제대로 시어머니를 모시지 못했다고 울먹이며 상을 사양한다.’ 한국 드라마 사상 최장기간 방영됐던 ‘전원일기(효부상)’의 한 코너 스토리다. “저도 김회장 부인과 똑같은 심정입니다. 경제적으로는 많이 힘들었지만, 그저 온가족이 건강하게 살아온 것만도 다행스런 일이지요. 이런 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지 부끄럽기만 합니다.”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던 그가 입을 떼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인터뷰 도중 언뜻언뜻 비치는 눈물이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그의 기나긴 시간들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시할머니 수발 26년의 세월


서울이 고향인 심씨는 스물일곱이 되던 해, 직장에서 만난 남편과 7년 교제 끝에 결혼했다. 한국전쟁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딸 다섯 중 셋째였던 그는 어머니와 함께 집안의 가장노릇을 해야 했던 상황이어서 그 당시로서는 좀 늦은 결혼이었다. “시집을 와보니 시할머니와 시어머니, 시동생 둘, 시누이까지 온 식구가 한방에서 생활하고 있었지요.” 남편 역시 아버지를 한국전쟁에서 잃고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신혼초기에 시어머니께서 ‘이제부터는 네가 맏며느리로서 시할머니는 네가 모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후 아흔을 넘어 돌아가시기 전까지 26년 동안 시할머니를 수발했다. 그런 가운데 아들과 딸, 두 아이가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으로 일하다 일반 회사로 자리를 옮긴 남편은 책임감이 강한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심씨 가족은 방 두 칸짜리 전셋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고, 그 또한 틈틈이 부업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 때는 전세기간이 6개월이어서 1년에 두 번씩 이사해야 했고, 특히 식구가 일곱이나 되니 집을 얻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다”고 그는 회상한다. 서울에서 방을 구할 수 없었던 그들은 지금의 경기도 하남시에 논을 사서 그 한 쪽에 블록을 쌓아 조그만 집을 지었다. 그러나 비만 오면 집에 물이 차오르고, 특히 장마철엔 집이 휩쓸려 내려가는 등 더 이상 살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부평의 한 회사에서 남편에게 월급을 올려주겠다고 제안해와 그곳에 살면서 전세방을 전전했다.


 


삶의 버팀목이 되어준 아이들


서울로 다시 상경한 그들은 시유지를 사서 10평짜리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7년여를 그렇게 살다가 땅 판돈에 융자를 얻어 드디어 신당동에 단독주택을 마련했다. 아이들은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고, 시동생과 시누이는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해 분가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과외는커녕 문제집조차 제대로 사주지 못했는데 공부를 잘해줘 너무나 감사하다”며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고 말했다. 남편이 중동지역으로 해외근무를 떠나고,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서초구 양재동에 전세를 끼고 어렵사리 다세대주택을 장만했다.
아들은 서울공대 컴퓨터공학과에 수석 입학함으로써 장학생이 되었다. 이어 두 살 터울인 딸아이도 한양공대 2년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어느덧 42세가 된 아들은 그 후 국비장학생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결혼해 IBM에 근무한다. 딸아이도 전문직 여성으로 일하면서 아들 하나를 낳고 잘 살고 있다.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모든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그는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주말농장에 나가 상치, 깻잎, 고추 등을 심고 가꾼다.


“작년에 시어머니께서 낙상하시는 바람에 거동이 불편하시거든요. 하루 종일 집에서 저랑 같이 있으니까 오히려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 요즘엔 데이케어 센터에 다니십니다.” 시어머니(94)가 돌아오실 시간이라며 서둘러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그가 떠난 자리에 그가 남기고 간 40여 년의 세월이 석양의 그림자처럼 길게 남아있었다.


사진 김태헌 작가(세가 스튜디오)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