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생 : “선생님, 저 엄청 잘 썼어요. 붙을 것 같아요.”
선생님 : “오, 그래. 수고했다. 그런데 제시문의 논지가 뭐였니?”
학 생 : “논지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하지만 잘 썼어요. 그러면 됐죠, 뭐 ”
안타깝지만 위 학생은 논술시험에 탈락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왜 그런가? 논술 시험의 기본 재료라 할 수 있는 제시문을 이해조차 못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동안 집중적으로 분석한 제시문의 논지는 오래 기억에 남게 마련인데, 위 학생은 기본적인 제시문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제시문의 논점을 정확히 이해하여야 한다.
논술 시험이 ‘작문’, 즉 자유로운 글쓰기 시험이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흔히 논술은 정답이 있는 시험이라고 하는데 이는 거의 맞는 말이다. 제시문에 포함된 논제와 관련된 논점들은 정해져 있으며 이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논술의 출발점이다. 논술시험에서 제기되는 질문 중 80%는 제시문의 주장과 근거를 정확히 찾아내는 능력, 즉 이해력을 갖춰야만 대응할 수 있다. 이해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이다. 하지만, 논술에 도움이 되는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최근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독서량이 풍부한 학생들은 많다. 그러나 그러한 학생들도 논술 제시문을 분석하라면 무척 곤혹스러워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제시문의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파스칼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광기에 걸려 있다. 따라서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미쳤다는 것의 또 다른 형태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광기’라는 타자성의 역사를 기술해야만 한다. 바로 이 타자성을 통해서 인간은 지배적인 이성의 작용 속에서 자신의 이웃을 감금하고, 비(非)광기라는 냉혹한 언어를 통해서 서로를 인지하고, 서로 교통한다. 또한 우리는 이 언어가 진리의 영역에 확실히 정착하기 전에 이성과 공모하는 순간을 규정해야 한다.
위 글은 모(某) 대학에서 출제된 논술 제시문의 일부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선두주자인 미셀 푸코의 글인 만큼, 웬만큼 공부한 성인의 입장에서 보아도 난해한 개념들로 이루어져 있다. 문제를 풀기위해 주어진 지문에서 일정한 정보를 찾는 읽기 방식에 익숙한 학생들은 제시문의 각 단어에 내포된 심층적 의미를 깨닫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독서량이 풍부한 학생들일지라도, 다소 우월하긴 하나 별반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독서량 자체는 많다고 해도 이들이 읽은 도서의 목록을 확인해 보면, 의미파악이 쉬운 소설 등에 편중된 경우가 많다. 물론, 독서량이 부족한 것이 학생들의 탓만은 아니다. 학교에서의 독서는 수행 평가와 연계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수능, 내신 대비에 여념 없는 고등학생에게 여유 있게 책을 읽을 시간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여 읽기 때문에 이미 읽었다는 책도 그 의미를 물으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논술에 대응하기 위해 고등학생에게 필요한 독서의 방식은 무엇인가? 다독(多讀)보다는 정독(精讀)이 해답이다. 다독은 배경지식을 형성하는 측면에서 더 우월함은 분명하나, 실현가능성은 높지 않다. 독서량이 충분하지 못한 학생들의 부모님은 늦게라도 많은 책을 읽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이제까지 책을 멀리해온 학생이 느닷없이 독서에 매달릴 리 만무하다. 또한, 강요에 의해 읽은 책에서는 한 줌의 지식조차 얻어내기 어렵다.
나는 학생들에게 ‘한 권의 책만 읽으라’ 고 권하고 싶다. 단, 어려운 책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논술 제시문에는 동, 서양의 고전이 많이 등장하는데, 특히 서양 고전의 비중이 높다. 서양의 고전 중에서 한 권을 선택하고 읽는 분량은 학생의 자율에 맡기되 일정한 시간을 부여한다. 하루에 단 한 장을 읽더라도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매우 크다. 이 때, 각 단락의 요지를 정리하는 과정을 더하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텍스트의 글자 하나하나를 쫓아가는, 축자적(逐字的)인 읽기가 아니라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읽기이기 때문에 심층적 사고의 과정은 자연스레 작동하게 된다. 처음에는 책을 읽는 속도가 매우 느리겠지만, 점진적으로 향상됨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읽기 방식은 언어 영역의 비문학 지문을 독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보통 언어 영역에서 시간이 부족한 학생들의 경우 비문학 지문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사고력이 수반된 읽기 방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논술을 잘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잘 읽어야 한다. 올바른 읽기 방식을 통해 글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논술의 시작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압구정국어논술전문학원 한상면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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