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강함, 무예의 매력이죠”
일산은 스포츠 마니아가 많은 동네다. 동호인 수가 수백 명을 헤아리는 곳도 많다. 그러나 무예를 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유독 일산은 무예수련을 즐기지 않는 곳”이라고.
예로부터 무예는 농경과 종교생활에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땅과 하늘의 기운, 인간을 둘러 싼 자연환경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무예를 즐기는 인구가 적다는 것은, 사람과 자연의 거리가 그만큼 멀어졌다는 뜻일까.
수가 많든 적든 상관하지 않고 조용하게, 그러나 강인한 정신으로 무예 수련을 지속하고 있는 우리 지역의 동호회 두 곳을 탐방했다. 태극권과 선무도를 수련하는 사람들이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부드러운 무예 ‘태극권’
언제부터인가 일산 곳곳에 ‘태극권 동호인 모집’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동호회를 꾸려가는 이는 박완기 (일산태극권동호회 총교련)씨다. 그는 씨는 고교 시절 사마귀권법이라고 부르는 ‘당낭권’에 빠졌다.
“79년부터 배워 10년 정도 했죠. 그러다가 우연히 태극권 명사를 알게 됐어요. 해보니 딱 제 몸에 맞더라고요.”
기를 순환시키는 무예
태극권은 유연한 몸으로 만들어 주는 무예다. 태극권의 동작들은 ‘전사’라고 부르는 ‘몸 곳곳을 빙빙 돌리고 비트는’ 자세를 기본으로 한다. 목, 어깨, 손목, 무릎, 골반을 빙글빙글 돌리는 것이 준비 운동에 포함되어 있다. 서두르는 동작은 없다. 물 흐르듯 천천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앞뒤로 움직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돌린다. 마음을 담은 그릇인 ‘몸’을 천천히 운행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태극권에서는 ‘기를 운행한다’고 말한다. 기를 흡수하여 몸 곳곳으로 돌리는 것, 곧 순환시키는 것이다.
“공기 중에 흐르는 기를 받아서 자기 몸에 돌려주는 것이죠.”
동호회로 널리 알리고파
고요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인다. 앉거나 서서 하는 정적인 운동하고는 다르다. 기를 흡수하면서 자세를 움직이니 혈액순환이 된다. 대부분의 동작들이 무릎을 구부리고 다리를 넓게 벌린 채 이루어지니 자연스레 아랫배로 호흡하게 된다. 복식호흡을 하며 순환이 원활해지면 마음이 편해지고 정신 집중이 잘 된다. 쓰지 않는 근육을 돌려주니 복근운동을 하지 않아도 몸이 탱탱해진다. 박 씨는 류마티스, 허리 질병으로 고생하던 이들이 나아지는 것을 보며 자부심을 느꼈다. 그는 올해 초, 태극권을 알리기 위해 일산 지역에 동호회를 만들었다.
“이 좋은 걸 혼자 알긴 그렇고, 여럿이 하려고 동호회를 만들었어요. 편한 옷 입고 부담 없이 오시면 돼요.”
위치: 일산서구 대화동 2131-5
문의: 031-917-0312
깨달음의 무예 ‘선무도’
“몸을 단련하는데 마음의 힘이 커진다.” 선무도를 지도하는 이승엽 씨의 말이다. 그는 군대에 가서 허리 부상을 입었다. 급성 하반신 마비가 올 만큼 상태는 심각했다. 제대로 걷지 못할 만큼 통증이 심해 이것저것 안 해본 치료가 없었다.
“20대는 저에게 시련의 시기였어요. 몸과 마음이 힘들어 폐인 아닌 폐인이었죠.”
20대에 맞은 시련, 선무도로 극복
어머니의 권유로 선무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발가락을 움직이는 동작에도 힘이 부칠 만큼 힘들었다. 그래도 운동을 하고 나면 숨을 쉴 수 있었다. 숨 조차도 편하게 쉬지 못했던 그였다. 선무도를 하면서 몸이 점차 나아졌다. “내 몸을 내가 움직여서 건강하게 하지 않는 한 건강은 유지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몸이 아프면 의지하게 되고 낫게해줄 곳을 찾아다녀요. 그것은 곧 나태해진다는 뜻이죠.”
그는 선무도를 하며 몸이 건강해졌다. 더 큰 것은 ‘세상 살아갈 힘을 배웠다’는 것이다.
“몸 푸는 요가자세, 동적인 무예동작도 있지만 참선도 합니다. 호흡 수련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음식 양도 줄어들어요. 호흡도 밥이거든요.”
세상 살아갈 힘을 주는 무예
이 씨는 승려가 되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암환자로 병상에서 친구가 된 두 분이 아들과 딸을 부부로 맺어주기로 서로 약속한 것이다. 결혼 후 미얀마로 건너가 ‘출가’의 뜻을 이루었다. 남편의 뜻을 아는 부인이 이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위빠사나 수행을 경험한 6개월은 그에게 소중한 공부의 시간이었다.
그는 복지타운을 만드는 꿈을 품고 있다. 뇌병변과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자녀를 키우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장애아를 낳으면서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져요. 쟤가 왜 저렇게 태어나 내 인생이 이렇게 됐나 원망하죠. 내가 편하면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겨요. 기회가 된다면 장애 부모들과 아이들에게 선무도를 가르치고 싶어요.”
참선과 무예로 집중력 키운다
탄현동 최유정씨는 딸 박영서 양과 함께 선무도를 배운지 한 달 째다. “아이가 고학년이라 운동을 할 필요성을 느꼈어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보려고 알아보다 선무도에 오게 됐어요.”
이 씨는 영서 양에게 “집중력이 좋다”고 칭찬했다. “지금 무예를 하면서 길러지는 마음의 힘이, 언젠가 세상살이가 어려울 때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하면서.
최유정 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운동 강도도 높고 명상은 잘 모르지만, 나를 뒤돌아볼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좋아요.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살다가 나 자신을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좋죠.”
위치:일산서구 탄현동 21-7
문의:031-924-5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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