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 최장규 고양들소리 보존회장

지역내일 2011-06-21

고양의 소리, 그 땀의 노래를 오늘도 부릅니다

 고양들소리는 지난해 고양시 향토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그 전승 가치가 재조명됐다. 수백 년, 아니 그 보다 훨씬 긴 시간동안 삶 속에 녹아 전해오는 우리 지역의 살아있는 소리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고양들소리 보존회 최장규 감독. 30여 년간 고양의 소리를 재정리하고, 전승시키는 게 제 삶이라는 사람, 소리가 곧 생활이라는 이사람. 어찌 보면 번듯한 직장, 단란한 가족을 꾸려 평범한 중년의 삶을 선택하는 게 편하겠지만, 소리 인생에 미련도 후회도 없다는 최장규 씨를 만났다. 

뒷산에 올라가 라디오로 민요를 듣던 소년
 최장규 감독은 유년시절부터 또래와는 다른 취향을 가졌다.
“학교 소풍을 갈 때면 친구들은 가요를 부르고, 춤을 췄죠. 하지만 전 재미가 없더라고요. 민요가 좋더군요. 틈만 나면 라디오를 들고 뒷산으로 올라가 소리를 따라하던 아이였어요”
 소리를 정식으로 배울 수 있는 학원조차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던 어린 시절. 마을 한 집에서 굿판이라도 열리게 되면,  담장 너머로 기웃거리며 꽹과리 소리를 듣고, 같이 흥얼거리는 유별난 놈(?)이었다. 20살이 넘어 정식으로 소리꾼이 되겠다고 했을 때 집안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평범한 인생을 살기 바랐던 부모의 입장으로선 그럴 만도 할 터. 돈벌이도 변변치 않은 소리 인생을 살겠다고 했을 아들을 선뜻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젊은 최장규는 소리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소리가 이미 자기 인생이라는 확신 말이다. 이후 송포 호미걸이의 대가인 예능보유자 김현규 선생을 찾아가 수제자로 입문한다.    
 “김현규 선생님께서 절 보시더니 신기한 놈이라고 하시더군요. 소리한번 해봐 하시더니 ‘그놈 목소리가 벌써 트였네. 하시곤 절 받아주셨어요. 그때부터 제 소리 인생이 시작됐죠”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밤에는 잠을 줄여가며 소리를 하던 사람. 젊은 시절 최장규 감독이다.

어르신들에게 막걸리 대접하며 얻어낸 살아있는 들소리 모음
 고양들소리 전승관 사무실에는 책 한권이 놓여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쓰이는 고양 들소리 교본이다. 하지만 단순한 교재가 아니다. 최감독은 최금복 이금만 선생에게 고양들소리를 사사 받고, 2000년 고양들소리 보존회를 창단했다. 고양의 소리를 모으고자 결심한 그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한다는 말처럼, 들소리 채집에 나섰다. 백석동, 식사동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들소리를 복원하고 정리하기 위해 막걸리 한 통 사들고 동네 어른들을 일일이 찾아가 소리를 부탁했다.
"아 그런걸 뭐하러 해~" 하는 핀잔을 주는 어른들이었지만, 넉살좋게 한 곡조 부탁하며 막걸리를 건네는 그에게 기꺼이 노래를 가르쳐줬다. 일일이 가사를 받아 적고, 라디오로 녹음해가며 틈틈이 고양들소리를 완성해갔다. 그야말로 그의 땀과 젊음이 녹아있는 책이다.
 들소리를 알리기 위해 불러주는 곳 어디든 달려갔다. 자선공연은 물론, 지역 문화재, 공연 등 자비를 들여야 하는 무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덕에 지금은 고양들소리가 지역사회에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고양들소리 정기공연은 물론, 해외 문화재에도 종종 초청되기도 한다. 고양들소리는 농요와 풍물로 이뤄진다. 고양 농요는 주로 일의 능률을 올리고 피로 회복을 위한 노동요가 많고, 메기고 받는 소리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그 풍물 가락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최종 꿈은 고양 시립 농악단을 창단하는 것
 고양들소리 보존회에서는 우리네 농요와 풍악을 배울 수 있다. 지금이야 취미로 소리를 찾는 이들도 있지만,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단원들이 생활이 어렵던 청소년들이 많았다. 직접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입히고, 소리를 가르치면서도 그는 고양 소리 문화의 미래를 꿈꿨다.
" 그 아이들 중에 몇 명은 대학 국악학과에 진학하기도 했어요. 너무 뿌듯하죠. 하지만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번듯하게 소리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고 싶어요"
그래서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어느 감독의 말처럼 또 꿈을 꾼다.
 “고양 시립 농악단을 창단하는 겁니다. 경기 지역에서 안성, 파주, 광주 등에도 시립농악단이 활동하고 있는데, 고양시에만 없습니다. 문화도시 고양시는 무엇보다 우리 뿌리를 먼저 찾고 계승해야 이룰 수 있죠. 시립 농악단이 있다면 좀 더 체계적인 소리 전파는 물론이고, 젊은이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 기회도 마련할 수 있겠죠”
  고양들소리가 도문화재로 지정돼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는 것도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아직도 민속 문화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부족한 터라 그가 꾸는 꿈이 이뤄지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며 아쉬워한다.
올해로 48세.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평범하게 살아왔다면 자식 둘 셋은 있을 중년 아버지로의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북을 들고, 장구를 치며 청아한 목소리를 내는 그는 지금보다 더 어울리는 모습이 없을 것 같다. 소리를 한번 내보겠다던 그의 눈빛은 리포터와 이야기를 나룰 때와의 모습과는 천지차이였다. 몇 년 뒤 혹은 더 긴 시간이 지난 후에 그의 꿈인 시립농악단을 이끌고 무대에서 선창을 하는 그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남지연리포터 lamanua@naver.com
* 호미걸이- 호미씻이라고도하며, 한해 농삿일을 끝낸 후 다음해 농사를 위해 호미를 씻어 걸어둔다는 뜻에서 유래한다. 농사가 끝나고 그동안의 지친 심신을 쉬자는 의미에서 펼치는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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