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충도 병풍 중 가지
지난 5월 강릉에서 신사임당의 얼을 기리기 위한 ‘제 20회 강원여성문예경연대회’가 열렸다. 동양자수와 시 부문의 장원을 포함해 원주지역 여성 5명이 입상의 영광을 안았다. 특히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주제로 겨룬 동양자수 부문에 장원을 차지한 김기순(52) 씨는 잊혀져가는 동양자수의 전통을 잇고, 자수의 아름다움을 알리는데 앞장서 그 의미가 크다.
●가족의 도움으로 이룬 수상의 영예
김기순 씨는 ‘강원여성문예경연대회’와 인연이 깊다. 3년 전에는 같은 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김 씨는 “자수 경연대회는 대회에서 제시된 자수기법을 모두 사용해 작품의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해요. 제한된 시간 내에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30여 가지의 자수기법에 능통해야 합니다”라며 장원을 수상하게 되어 기쁘다고 전한다.
김 씨가 자수를 처음 접한 것은 20년 전이다. 지인의 권유로 우연히 시작했는데,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인마냥 처음부터 자수가 재미있고 좋았다고 말한다. 체계적으로 자수를 배우고 싶어 새벽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자수기법과 매듭, 전통규방(손바느질)까지 빼놓지 않고 익혔다.
실크공단에 명주실을 사용하는 동양자수는 재료비가 많이 든다. 자수기법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끊임없는 연습이다 보니, 의욕과 비례해 비용은 늘어갔다. “그만둘까 고민도 했었어요. 왜 돈 안 되는 길을 가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고요. 그럴 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이 매듭사업을 하는 언니와 형부, 남편이에요. 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수상의 영광도 없었을 겁니다.”
●바늘과 실로 그리는 한 폭의 그림
공단 천에 명주실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자수는 그 섬세함과 아름다움만큼이나 인내와 정성이 필요한 작업이다. 작은 바늘로 꼼꼼하게 수를 놓다 보면 어깨며 목이 아플 만도 한데, 김 씨는 한 번 바늘을 들면 세 시간은 꼼짝 않고 수를 놓는다. 김 씨는 “몸이 고단한 시기는 지나갔어요. 지금은 완성된 자수가 보고 싶고 궁금해서, 수를 놓을 때마다 신나고 기대하는 마음이에요. 남들은 지루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해집니다”라며 자수를 바늘과 실로 그린 그림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나라의 동양자수는 아름답고 우아한 것이 특징이다. 자수 전문가들이 옛 자수의 복원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세계 최고의 동양자수의 전통과 맥을 잇기 위해서다. “자수를 배우려면 이음수부터 시작되는 자수의 기본 수법을 차례대로 배우고 연습해야 해요. 땀수가 촘촘하고 올이 고와야지 들쑥날쑥하면 안 되거든요. 여러 가지 문양을 직접 많이 놓아보고, 색채나 명암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자수의 아름다움 알리는 전통규방문화원이 꿈
김 씨의 작업 공간 한 켠에 멋스럽게 펼쳐진 여섯 폭 자수 병풍이 눈에 띈다. 초충도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자수가 한 폭의 그림이다. 김 씨는 2년 뒤에 있을 작품 전시회를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경연대회 작품은 전시 때문에 강릉에 있어요. 도라지꽃인데 나중에 보여드리고 싶네요. 지금은 아름다운 자수를 널리 알리고 싶어 전시회를 준비 중이에요. 궁극적으로는 자수와 매듭 박물관인 전통규방문화원을 여는 게 꿈이랍니다.”
자유시장 1층에서 ‘술람미 아트공방’을 운영하기도 했고, 시민문화센터에서 5년 동안 매듭과 규방공예를 강의했던 한 김기순 씨. 작품 활동과 서울시 창작아케이트 강의로 바쁜 일정에 시간을 내서, 9월부터는 원주지역 수강생들을 모집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작년 대한민국 한지대전 공예부문 대상 작품인 ‘꽃가마’의 술이 김 씨의 솜씨다. 야무지고 꼼꼼한 자수와 매듭 작품을 수 없이 만들어낸 김 씨의 손은 그녀의 작품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문의 : 010-5035-0880
홍순한 리포터 chahyang3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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