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사 - 자연요리전문가 박상혜

요리와 연애하는 여자 ‘슬로푸드 장인 꿈꾸다’

지역내일 2011-06-06 (수정 2011-06-06 오전 11:16:12)

“식용유에 고추, 양파, 귤껍질을 넣어 만든 맛기름은 볶음 요리할 때 쓰세요. 음식 맛이 훨씬 맛깔스러워져요.” 송파여성인력개발센터 조리실. 사찰음식 전문가 박상혜씨는 갖가지 천연조미료 만드는 법을 차근차근 일러준다. 웰빙 음식에 관심 많은 새댁, 창업을 준비 중인 50대 주부, 건강식을 배우러 온 환자 보호자 등 갖가지 사연을 가진 수강생들의 열기가 뜨겁다. “요리 틈틈이 미묘한 맛의 차이를 느껴보라고 항상 단계별로 다 맛보라고 해요. 배운 것을 혀에 새겨가야 훨씬 더 오래 기억하죠.” 조리법뿐만 아니라 체질별 좋은 요리와, 음식궁합까지 조목조목 짚어주기 때문에 그의 강의는 인기가 많다.
 사찰음식, 약선요리,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마크로비오틱 전문가 박상혜. 그는 송파를 비롯해 제천, 영통 등 전국을 누비며 강의를 다닌다. 대학에선 학생들도 가르친다. 회원수 1만명이 넘는 인기 온라인카페 ‘사찰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cafe.daum.net/templecooking)’ 주인장이며 책도 여러 권 쓴 요리작가다.
 미쳐야 미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 ‘요리’에 미친 박상혜는 매일 요리와 연애하며 산다.
그가 운영하는 <자연음식연구소 공양간>에는 각종 버섯류를 비롯해 나물과 과일 등 온갖 먹거리를 종류별로 말려서 보관하는 유리병이 수백 개 있다. “인삼 꽃도 좋은 천연조미료예요. 요즘 한창인 파주 인삼 꽃을 왕창 사다 말렸어요.” 재료 욕심이 많은 그는 맘에 드는 제철 특산품을 발견하면 지갑을 털어 사온다. 이렇게 부지런 떨어 마련한 재료들은 요리할 때 소중한 조미료가 된다.
 



30대에 늦깎이로 요리 공부
 지금은 웰빙붐을 타고 사찰음식이 건강식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10여년 전만해도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미개척 분야였다. 충남 대천이 고향인 그는 젊은 시절 병원에서 의무기록사로 11년간 일했다. “환자들에게 양 복용법부터 피해야 할 음식들을 찬찬히 설명하는 일을 맡았어요. 오랫동안 이 일을 하다 보니 건강식에 욕심이 났어요. 고민 끝에 인근 대학의 호텔조리학과에 입학해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지요.” 어릴 때부터 손끝이 야물고 음식 만드는 걸 즐겼던 그는 낮에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고달픈 주경야독 생활을 하면서도 마냥 신이 났다. 전문대를 졸업 후 공부 욕심이 더 나자 아예 병원에 사표를 던졌다.
 “당시 제 연봉이 4천만 원이었어요. 적지 않은 연봉을 포기하고 월 25만원 받는 조리학원 강사로 일하며 학업에 매달렸어요. 부족한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새벽까지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지요.” 요리 매력에 흠뻑 빠진 그는 6년 만에 대학원까지 마치고 이론과 실기로 탄탄하게 무장한 ‘요리 전문가 박상혜’로 변신했다.




‘사찰음식 전문가’로 인생좌표를 정하다
 “어렸을 때 몸이 약해 몇 년간 절에서 생활한 적이 있어요. 스님들 따라 나물 캐러 다니며요리하는 법을 어깨너머로 배웠지요.” 그때 경험을 더듬어가며 사찰요리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각종 장아찌며, 재철 재료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사찰음식 레시피를 온라인 카페에 올리기 시작했고 점차 입소문이 났다. 2003년 처음 출전한 세계음식박람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 “요리 대회에 나가려면 재료 준비부터 요리에 어울리는 그릇이며 테이블 세팅 등 돈이 많이 들어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참가비 마련이 쉽지 않았죠. 가지고 있던 금반지를 몽땅 팔아서 출전했지요.” 이를 계기로 각종 요리경연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요리와 연애하는 여자
 자신감을 얻은 그는 좋은 식재료를 구하러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 배낭하다 짊어지고 곤드레, 방아잎 등 자연산 나물을 찾아 전국의 농가를 수소문하고 곳곳의 사찰을 다니며 새로운 요리법을 배웠다. “1백여 권 되는 요리관련 스크랩북은 제 보물 1호예요. 직접 찍은 사진부터 신문이나 잡지에서 모은 자료들이 담겨있지요.” 10년 넘도록 꼼꼼히 모아 놓은 자료들은 박상혜표 요리의 아이디어 창고다.
  숨 돌릴 틈 없이 강의 일정이 빼곡하지만 요리에 푹 빠져 사는 현재의 삶이 무척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연요리는 손이 많이 가요. 하지만 정성을 들여 조리한 음식을 여럿이 나눠먹으며 속내를 털어놓다 보면 끈끈한 유대감이 생기죠. 선물용으로도 좋구요. 이게 요리의 매력이죠.”
 사찰음식점을 낼 계획이 없냐고 넌지시 묻자 “여러 곳에서 제안을 받아요. 하지만 음식이 돈을 따라가게 되면 맛이 변질될 수 있다는 게 제 소신이에요.” 뼈 있는 답이 돌아왔다.
 ‘자연요리 마에스트로 박상혜’가 되기 위해 그의 공부는 늘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엔 약선요리에 관심이 많아요. 약초를 활용한 자연 요법이 발달한 인도에 가서 꼭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 요리와 사랑에 빠졌다는 박상혜는 요리 장인의 꿈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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