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전문의, 의학박사, 수필가
남호탁
항문 주변에 뾰루지가 생기는 병을 치루라고 합니다. 이 뾰루지는 통증은 없지만 염증이 생겼다가 사그라지기를 반복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가 염증이 생기면 가벼운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가 염증이 터지게 되면 뾰루지를 통해 분비물이 나오면서 통증은 사라지게 됩니다. 치루로 인해 생긴 뾰루지는 증세의 호전과 악화가 반복될 뿐 완치되지 않는 것이 일반 뾰루지와 다른 점입니다.
치루가 생기는 원인은 항문 안쪽에 있는 치상선 근처의 항문샘에 염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항문 관리를 잘못해서 치루가 생긴 것으로 알고 자책하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든 항문샘에 염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항문 안쪽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뾰루지를 통해 대변과 같이 악취가 심한 분비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경 써서 만져보면 볼펜심처럼 딱딱한 구조물이 항문 안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치루관이라고 합니다.
통증이 적고 큰 불편이 없기 때문에 치루를 방치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만 위험한 생각입니다. 드물기는 합니다만 치루는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치루가 암으로 발전하면 항문의 기능을 살릴 방법이 없고 5년 생존율도 낮습니다. 그 어떤 암보다도 무서운 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치루를 방치할 경우 제2, 제3의 치루가 생겨 나중에 수술을 받자면 수술범위가 커지고 괄약근 손상의 위험도 그만큼 커집니다.
치루는 절대로 저절로 낫는 경우가 없고 약물로도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수술 외에는 치료방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수술과 마찬가지로 병의 초기에 수술을 받는 것만이 가장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치루 치료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치루라는 병은 발병해도 그다지 아프지 않다는 데 문제점이 있습니다. 항문주위농양이나 만성치열을 가진 분들의 경우 심한 통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지만 치루 환자의 경우 그다지 아프지 않기 때문에 차일피일 병원에 가는 것을 미루며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아프지 않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암이 무서운 이유도 암의 초기에는 통증이나 기타 불편한 증상을 유발시키지 않기 때문에 발견이나 대처가 늦어지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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