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적으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관념에 둘러싸여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란 매우 어려운 노릇이다. 과음의 문제가 있는 사람이나 그들의 배우자 혹은 부모들이 그러한 수가 흔하다.
얼마간 단주를 하고 나면 이내 무언가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수가 흔하다. 앞으로는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을 결심이 확고하다면서, 너무 빨리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수가 흔하다. 꼭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도 무언가 남에게 높게 평가받는 일, 예컨대 도리에 맞는 모범적인 일을 찾아 지나치게 매진하는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예외 없이 겪는 회복의 가장 큰 장애는 조급하게 잘 하려고, 지나치게 애쓴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회복에만 전념해도 충분히 잘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회복한 단주 선배들 또한 그러한 과정을 겪다가 재발한 수가 많아 ‘너무 빨리 일터에 돌아가려고 하지 말라’ 고 조언하지만 이 시기에는 그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은 이제 여유가 있어 그렇지, 일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며 극단적으로 반응하기 일쑤다.
수개월씩 단주하다가 실패를 거듭하던 L씨도 마찬가지였다. 퇴원할 때마다 일보다는 회복에 전념하도록 권해도, 두세 달만 지나면 고집을 부리고 전보다 더 거창한 일을 벌이기를 반복하였다. 그랬던 그가 마지막으로 퇴원한 후로는 5년째 단주하고 있다. 퇴원 후 한 이년 동안은 일하지 않고 단주 모임에 꾸준히 참여하며 회복에 전념한 덕이다. 일보다는 단주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생계를 걱정하지 않게 해 준 배우자의 덕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암이나 심장병 같은 중병을 진단받은 후 회복보다 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년이 아닐지라도 기꺼이 퇴직하고 건강을 되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알코올의존인 사람들은 왜 급하게 일을 하려고 할까?
흔히 생계 문제를 내세운다. 누가 보더라도 그런 정도는 아니고, 가족들 또한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것은 감정적인 이유가 크다. 과음으로 인생에서 큰 좌절을 겪고 느끼는 패배감이나 자존감의 손상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서라도 자존감을 빨리 되찾겠다고 일과 벌이를 서두른다.
‘술을 끊는다는 것은 기적’이고들 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더라도 하루하루 단주의 기적을 만드는 것보다 더 자긍심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 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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