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율 100%인 아날로그 방송 들어보실래요?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비좁은 차도와 좁달만한 골목 사이로 사람들이 촘촘히 모여 사는 동네다.
길을 걸으면 사람들의 어깨가 자꾸만 다가올 만큼 좁은 사이길, 기껏해야 60여 점포가 모여 물건과 인정을 함께 파는 상대원시장. 흑백필름처럼 30년 시간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동안 동네 어귀 나물 파는 할머니와 생선꾸러미 엮은 아저씨들이 모여 그렇게 장(場)을 이룬 곳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장 통을 지나는 이들 모두가 고만고만 사는 모습이 비슷해 그저 ‘우리동네 시장’이라 불리는 이곳.
그 시장 통, 좁다란 골목에 들어서자 이제는 명물이 된 라디오 방송국에서 따끈한 풍악(?)이 울려나온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경이 된 시장방송 DJ의 오후 음악프로다.
이름하야 ‘원다방방송국’, 다방이라고 하지만 커피와 쌍화차가 없는 순수한 라디오방송국이다. 상대원 시장의 사랑방이자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아날로그 방송국. 이곳에서 행복한 DJ를 맡고 있는 장미라(50ㆍ상대원동) 국장을 만나보았다.
즐거운 사랑방, 동네 방송국
“처음 상대원 시장을 살려보자고 뜻을 모은 사람들이 무엇을 할까 고심하다가 라디오 방송국 얘기가 나왔고 그렇게 겁 없이 달려들어 시작한 게 원다방 방송국이에요.”
2008년 9월 개국, 장미라 국장도 이듬해 4월부터 합류해 어찌어찌 방송국 전체를 책임지는 높은 자리(국장)까지 맡게 됐단다.
방송국이라고 해봐야 달랑 마이크 몇 대, 음악 틀어주는 컴퓨터와 기계가 전부.
게다가 이렇다 할 현판도 없이 좁은 골목 어귀, 비스듬히 기울어진 건물 3층에 소박하게 자리한 이곳이 시장 상인들의 웃음과 슬픔, 기쁨과 노여움을 품어주는 공간이 되고 있었다.
3년 동안 시장 상인과 이곳을 오가는 손님들에게 익숙하게 고정된 주파수(?), 매일 낮 2시부터 5시까지 원다방의 청취율은 100% 다.
“뭐 주파수라고 할 것까지도 없어요. 스피커 선이 시장 곳곳에 달려 있는 단순한 구조예요. 사람들이 일부러 라디오를 틀지 않아도 그냥 때 되면 DJ가 이야기를 시작하고 음악도 들려주고 사연도 들려주는 식이죠.”
하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들리기 시작한 방송에 결혼한다, 돌 잔치한다, 회갑이다…기념일 사연을 올리는 건 기본, 좋아하는 싯구, 노래신청 등 아날로그적 손 편지 사연이 쉼 없이 전해져왔다. 방송국에 사람이 없으면 문틈에도 꽂아 놓고, 때로는 방송도중 즉석인터뷰가 펼쳐지기도 하는 등 편하고 즐거운 동네 방송국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2명의 DJ, 이 음악을 들려주세요
“원다방이라고 하고 왜 차를 안파냐고 하세요. 원다방은 동네에 유명했던 다방 이름이에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상대원동 하면 공식처럼 떠오르던 곳이라 상징적인 이름을 따와서 붙인거죠. 방송국도 상대원동의 상징이 되자는 의미에서요.”
장 국장의 바람처럼 원다방방송국에서 하는 일은 이미 상대원동의 상징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행사는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동네 음악회. 시장 앞 길가에 마이크를 세우고 우리 동네 명가수를 뽑는 ‘노래자랑’은 상인들과 동네 주민이 한데 어우러지는 축제다.
길을 가던 주민도 한곡, 콩나물 팔던 아줌마도 한곡, 약주 걸친 할아버지도 한 곡, 그렇게 시끌벅적 재미난 잔치로 마무리 되는 상대원시장의 진풍경 중 하나.
이렇게 사람 사는 재미와 유쾌한 수다가 오가는 원다방엔 현재 12명의 DJ가 시간과 요일을 오가며 마이크를 잡고 있다. 시인, 작가, 기자, 작곡가 등 쟁쟁한(?) 동네 인사들이 원다방 방송국을 책임지고 있는 것. 물론 차비도, 밥값도 없는 순수 무료 봉사다.
하지만 시장 사람들의 유쾌한 피드백, ‘DJ님’이라는 애교섞인 애정이 덤으로 전해지니 행복하게 마이크를 잡는단다.
행복한 아줌마 DJ의 즐거운 시낭송
장미라 국장 역시 본업은 시를 쓰는 시인이자 어린이 책을 쓰는 작가다. 등단을 통해 정식 데뷔한 그이가 방송국과 DJ를 겸하고 있는 것은 이 일이 주는 은근한 보람 때문. 매주 목요일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줌마DJ’ 로, 사정으로 다른 시간대 DJ가 빠져 땜빵(?)으로 마이크를 잡는 손길도 이젠 익숙하다 못해 자동으로 척척이다.
“저도 아이들 키우고 시 쓰면서 평범하게 살았는데 우연치 않게 이 일을 시작하면서 자꾸만 또 다른 일들이 덤으로 찾아오더라고요. 지금은 주변 이웃들과 원다방에 모여 시낭송회도 주기적으로 하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시 모임이 만들어졌고 일주일에 3번 치매병동과 너싱홈, 노인보건센터 등으로 ‘시(詩) 치유’ 봉사도 나가고 있다.
“치매 어르신들 눈빛은 힘이 없으세요. 그런데 저희가 시를 들려주면 마음으로 교감을 느끼고 와요. 시를 통해 감동을 받은 할머니 한분은 시를 직접 쓰셔서 지금은 80편까지 쓰기도 하셨어요.”
그렇게 시가 갖는 힘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면서 ‘재미나는 시낭송’ 공연도 하고 있다는 장미라 국장. 아직은 미성년인 두 아들들에게 엄마가 하는 일이 교과서의 훈화보다 일상의 배움이 됐으면 한다는 소박한 희망을 품고 있다.
부정하게 바쁜 게 아니라 그래도 동네를 위해, 조금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소박한 바쁨과 보람. 그것이 장미라 국장을 라디오 DJ로, 즐거운 시낭송 작가로 유쾌한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힘이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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