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배우는 예술, 이것이 진짜 감동이다
지난해 5월, 경기도 청소년 예능대회 무대에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전공자들이 대부분인 대회에서, 춤이라고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전부인 학생들이 14개 팀 가운데 3등을 한 것이다.
“시대회에서 최우승한 것도 놀라운 일인데 3등을 했으니 너무 어이가 없었죠.”
우선영 씨는 예술강사지원사업으로 김포시 통진중학교(교장 김동석)에 파견된 강사다. ‘어이없다’는 말로 운을 뗐지만 그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추진하는 예술강사지원사업은 연극, 영화, 국악, 무용, 만화 애니메이션, 공예, 사진 등 8개 분야의 전문 강사를 학교에 지원한다. 강사들은 신청하는 학교에 가서 630시간의 수업을 진행한다. 우 강사는 무용예술강사로 통진중을 비롯한 전국의 중고등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무용으로 각종대회 수상
“다른 팀들은 수십 만 원 짜리 옷이며 화장이며 다 준비했는데 저희는 달랑 실내화에다가 옷 만 오천 원짜리 빌려 입고 갔거든요. 빵 하나씩 먹고 돌아왔는데 3등을 했다는 거. 정말 놀라웠죠.”
학교에 예술강사가 오기 전에는 무용을 배워본 적 없는 아이들이 시 대회와 도 대회에서 굵직한 상을 타니 사람들은 놀랐다. 그러나 이는 우연히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김포 통진중학교는 가야금 합주단, 록 스타반, 영화반이 있을 만큼 다양한 예술체험 활동에 적극적이다. 창의적 활동을 중시하는 김동석 교장의 교육철학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술강사사업을 담당한 김성기 교사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교사들이 가르치기 어려운 고급문화를 아이들이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생각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학교는 많은 것이 시험을 통해 결정 되죠. 잘하는 아이들부터 순위를 매기지만 이 사업은 잘하는 아이들만 무대에 올리지 않아요. 못해도 같이 올린다는 것이 중요하죠.”
춤으로 새로운 세상 만난 아이들
예술전문 강사, 적극적인 학교장과 담당교사의 지원이라는 세 박자가 맞으니 학생들이 마음껏 춤출 수 있었다. 지난해 3월에 대전 충남대에서 열린 전국예술강사 발대식에 초대받아 모든 참가자들이 어우러지는 춤판을 벌였다. 자신감을 얻은 학생들은 자체적으로 동아리를 꾸려 대회에 참가했다. 3학년 남학생들이 ‘통진남무단’이라는 이름으로 시대회와 도대회, 4H대회, 방과 후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올 4월에는 서울광장서 열린 ‘세계 춤의 날’ 행사에도 참가했다. 무대에 오르고 상을 받는 경험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의 자신감도 커졌다.
“탈춤이 신기하게 사람을 즐겁게 해줘요. 하나의 움직임이 동작이 되고 무대에 서게 해주고. 그래서 즐거웠어요.” (2학년 전혜린)
“자랑할 게 생겨서 좋아요.” (3학년 한송학)
“무용을 하고나서 제가 좀 더 특별해진 느낌이에요.” (2학년 한영택)
“다른 나라 민속춤을 배우면서 문화도 배울 수 있었어요.” (2학년 정주리)
상을 받은 것은 아이들뿐이 아니었다. 우 강사도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문화관광부 장관상과 김포교육장상을 받았다.
무용수업의 재미, 동아리로 이어져
예술관련 레슨을 전혀 받지 않은 아이들이라 더 즐겁게 다가왔던 것일까. 통진중에서 무용 수업은 무용이론과 창작, 한국 민속무용과 외국 민속무용을 가르치는 기본교과 수업과 방과 후 동아리로 진행된다. 방과 후 수업은 정규수업에 포함되지 않지만 우 강사는 헌신적으로 가르친다.
“궁금한 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꼭 바다 같아요. 전공자들 가르치는 것과는 또 다른 행복감이었어요.”
김성기 교사는 예술강사 프로그램으로 예술교육의 본질을 보았다고 말했다. “예술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아마추어 정신으로 무대에 선다는 것이 중요하죠. 기본기 안 된 소박한 아이들이 즐겁게 무대에서 춤을 추니 보는 사람까지 즐거워지는 거죠.”
그는 또 석박사 이상의 고급 예술인들이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이들의 감수성과 창의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문화결핍 해결해야 다음 세대 풍성해질 것
아쉬운 점도 있다. 예술강사들은 한 해 수업 평가를 통해 다음 해 등락이 결정된다. 강사들의 고용문제가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것도 향후 풀어가야 할 과제다. 또 예술강사들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일은 처음인 경우가 많아 학교나 학생들에게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통진중은 기본교과 수업 외에 강사를 중심으로 동아리가 꾸려졌으니 성공적인 사례로 주목받을 만하다.
“영양결핍이 생기면 영양제를 먹는데 문화적인 결핍은 눈에 안보이니까 잘 모르죠. 필요 없다고 제쳐놓을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잖아요. 이 아이들이 문화체험을 많이 해야 사회가 점점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아이들만큼이나 초롱한 눈을 빛내며 던진 우 강사의 한마디가 가슴에 남는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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