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썩어서 암에 걸린거야”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파주 운정3지구 … 스스로 목숨 끊은 윤씨는 마을 후배
“이젠 어떤 말을 해도 믿지 못하겠어. 정부나 LH나 매일 거짓말이야.”
안장옥(59)씨는 힘들게 입을 뗐다. 퀭한 눈. 한눈에 병색이 깊다는 것을 알아챌 정도로 그는 힘겨워했다. 안씨는 간암말기다. 지난해 12월 병원에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기적적으로 2개월을 넘겼다.
그는 ‘공원묘지 일산공원 관리부장’이라는 명함을 내밀었다. 고통스러운 항암치료가 이어지고 있지만 오늘도 직장에 나왔다. 일을 해 이자를 갚기 위해서다. 빚을 갚는 것은 포기했다. 매월 320만원에 달하는 이자를 갚기 위해 힘겨운 몸을 이끌고 나온다. 수년간 병을 앓아온 아내를 생각하면 더욱 힘을 내야 했다.
안장옥씨는 경기도 파주 운정3지구 주민이다. 그는 40년동안 공원묘지를 지키며 이 마을에서 살아왔다.
얼마 전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윤 모(49)씨는 어릴 때부터 알아온 마을 후배다. 윤씨는 자신의 집에서 300여m 떨어진, 안씨가 근무하는 공원묘지 언덕에 차를 세우고 고향을 바라보며 농약을 마셨다. 그의 유서는 남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유서는 2장이었다. 하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나머지 한 장은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졌다. “제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네요. 빨리 보상해주세요. 또 다른 희생자가 없게.” “지금까지 너무 괴로웠습니다.” 윤씨는 매월 900만원의 이자를 갚아야 했다.
안장옥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금융권 부채 3억2000만원에 사채가 3500만원이다. 보상금이 나온다는 말만 믿고 대출을 받고 이사를 했다. 하지만 나온다는 보상금은 3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고 이자만 계속 늘어났다. 이사해 새로 지은 집은 경매가 진행 중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윤씨처럼 부채가 10억원이 넘는 사람이 운정3지구에 195명이다. 운정3지구 토지수용대상자 1706명 중 1045명이 받은 대출과 사채는 모두 합쳐 1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들은 수년간 고스란히 이자를 물고 있다.
운정3지구는 파주시 교하읍 695만m²에 주택 3만2000채를 짓는 신도시 사업이다. 2007년 6월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돼 2009년 하반기부터는 보상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운정3지구의 비극은 군사보호구역이라는 천형에서 비롯됐다. 주변으로 이사를 하려면 군사동의를 받아야 하고 동의를 받는 절차는 1~2년이 걸린다. 이 때문에 보상금이 나온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우선 대출을 받아 새로운 땅과 집을 구입해야 했다.
하지만 약속된 2009년 하반기가 돼도 보상금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LH는 2010년 7월 사업을 전면 중단했다.
안씨는 이때부터 시간만 나면 청와대가 있는 서울로, LH본사가 있는 분당으로 달려갔다. 밤마다 술을 마시며 타는 가슴을 달래야 했다. “속 썩어서 암에 걸린거야. 병원에 가보니까 말기도 지났데.” 97kg이었던 몸무게는 곧 67kg이 됐다.
걷는 것도 힘겨운 안씨지만 아직도 그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있는 ×만 살고 없는 사람은 죽는 세상이야. 죽기 살기로 싸워야지.”
윤여운 기자 yuyo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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