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지를 받아든다. 눈앞에 펼쳐진 빽빽한 활자들, 듣기문항 끝나고 답안지 작성 시간 빼면 대략 48분, 33문항의 저 밀림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한단 말인가? 출제원리를 알면 그 짐은 훨씬 가벼워 질 것이다.
1. 주제유형이 70% 이다.
33개 문항 중 주제유형이 23개이다. 다시 말해서 듣기를 틀리지 않았다면 주제문 파악을 잘하면 일단 80점은 확보된다는 얘기다. 주제 유형이 다수를 차지하지 않으면 50분 안에 33문항을 ‘국민기본교육과정’을 이수한 자가 푸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 실험을 해보자. 과제 1) 5분 안에 세계 도시 100개 외우기 2) 5분 안에 10개국의 도시 10개씩 외우기 어느
쪽이 실현 가능한가? 이와 같이 대표성이 결여된 항목은 제한된 시간 안에 다루기가 힘들다. 자, 이제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주제/제목/요지/요약문 같은 고전적인 문제는 아예 열외로 하겠다. (사실 위 네 가지 유형에서 하나라도 틀리는 학생 중에 90점을 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무관한 문장 고르기는 ‘주제문에서 벗어난 문장 고르기’, 빈칸 완성은 ‘주제문을 직접 채우던가 아니면 이용해서 채우기’, 다단장문은 ‘각 단락의 주제문을 파악해서 순서 배치하기’ 와 같은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은 틀림없이 남극대륙의 ‘화이트아웃’을 걷어줄 것이다.
2. 문항 배치의 원리
필자가 고등학교 재학할 때 모의고사를 치르면 꼭 긴장이 돼서 처음에는 어떤 문항을 먼저 처리해야 될 지 난감했다. 심지어 자신 있어 하던 영어와 수학에서도 그랬다. (결과적으론 학력고사에서 영어, 수학, 물리, 화학, 독일어에서 만점이 나왔지만) 그럴 때는 꼭 이용했던 방법이 있다. 일단 풀릴 것 같은 문항부터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시험지를 앞에서부터 뒤까지 거의 20번은 왕복을 해야 하는 수고가 뒤 따른다.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뉴욕에서 유학할 때 ‘Test and Measurement’ 과목을 수강할 때의 일이다. 훌륭한 문제지는 ‘사실적 이해’와 ‘추론적 이해’가 골고루 섞이도록, 그리고 ‘고난이도 문항’과 ‘중/저 난이도 문항’이 섞이도록 출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록 같은 조에 속한 미국인 영어교사 아주머니의 출제 실수와 표준편차 계산 착오로 유일하게 ‘B’를 기록한 과목이었지만 나의 고향 ‘파주’에서의 실천을 세계적인 도시 ‘뉴욕’에서 이론으로 승인 받는 뜻 깊은 순간이었다. 자 그럼 답이 나왔을 것이다. 18번부터 50번까지 너무나 얌전한 양처럼 진행하는 수험생은 출제자의 배려를 무시하는 것이다.
3. 정답 배치의 원리
정확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택지의 빈도가 골고루 등장해야 하는 것은 상식수준의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형별로 후반의 선택지 (즉 ④⑤)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유형들이 있다. 도표 / 내용(불)일치 / 무관한 문장 고르기 등이 대표적인 유형이다. 물론 약간의 예외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러한 유형들의 특성상 10초 만에 정답이 보이면 전체적인 평균과 급간 점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급할 때는 다름대로 활용의 가치가 있는 팁일 것이다.
맺음말
현대 수능 외국어 영역은 수험생이나 강사진과 출제위원들의 반전이 꼬리를 물며 예측불허로 치닫고 있다. 그러한 혼란 속에서 진정한 실력을 키우는데 본 칼럼이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마선일 원장
마선일영어전문학원장
서강대 졸(영어 영문학 B.A.)
뉴욕, Long Island University(TESOL M.A.)
전 EBS 강사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